교회역사/한국교회역사탐방

[국민일보선정 아름다운 교회길] (9) 인천 중구 영종도 인아교회

하마사 2014. 3. 11. 17:29


섬교회 20년 상전벽해… 옛 공동체의 기억은 아스라이

‘기억을 이해하기 위해 신경세포(뉴런)를 이해하고 뉴런들 간의 연결인 시냅스를 통해 어떻게 다른 종류의 기억이 신경회로상에서 저장되는가를….’

세계를 향한 문 인천국제공항. 그 영종도 공항신도시 안에 있는 인아교회를 찾아가면서 읽은 에릭 켄달의 저서 ‘기억을 찾아서’의 한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2000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에릭 켄달. 유대인으로 뇌과학의 권위자이다.

‘기억을 찾아서’는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를 이용해 영종도를 오가며 들춰보리라 생각하고 가방에 넣었던 책. 그러나 책 서문을 제대로 읽기 전에 열차는 공항신도시 운서역에 도착해버렸다. 5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해무에 쌓인 섬은 섬이되 세계적 공항 배후 신도시였으며, 신도시되 분명 섬이었다. 고속 열차에서 내려 대형마트 방향을 따라 5분 정도 걷자 현대 건축미학의 맵시를 자랑하는 ‘아펜젤러기념 인아교회’가 나왔다. 분당이나 일산 신도시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풍경. 중산층의 안락함이 교회를 중심으로 묻어났다.

2부 예배까지 보는 안락한 일상 속의 교회…눈에 보이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안정된 세포체이다. 다만 뉴런 간의 연접 부위 시냅스(synapse)는 보이지 않았다. 인아교회라는 뉴런을 더듬으면 압축 성장한 한국 개신교사의 시냅스를 확인할 수 있다.

1990년 6월 서른 살의 노신래 전도사가 신불도라는 인천 앞바다 작은 섬에 도착했다. 영종도에서 서쪽으로 7㎞. 70여호 마을 사람은 거의 농사를 지었다. 연안 가까운 바다에서는 조기 삼치 도미 등이 잡혀 더러 어업에도 종사했다. 해안선 길이 5.9㎞, 면적 2.86㎢.

영종도에 국제공항이 생긴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러나 인천 월미도에서 배를 타고 영종도에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40∼50분간을 영종-신불 간 이어진 비포장 제방 도로를 따라 섬 교회에 부임하는 목회자에겐 기도 제목밖의 일이었다. 사모는 돌 지난 아들을 안고 있었다. 섬 선교를 위해 그렇게 떠나는 아들이 자랑스러운 아버지 노승국(당시 60세·은퇴) 목사의 축복기도가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섬에 내렸을 때 성전 115㎡(35평), 사택 42㎡(13평) 크기의 허름한 교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영종제일감리교회. 인아교회 옛이름이다.

“몇몇 나이 드신 교인만 출석하는 섬마을 교회였습니다. 해떨어지면 일찍 잠들어 캄캄하고요. 125㏄ 교회 오토바이로 심방을 다녔지요. 섬 교인들이 ‘목사 안수 받으면 떠나실 거죠’라고 물을 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전도사가 인아교회 노신래 목사다. 21년 사역 동안 섬마을교회는 신도시의 번듯한 교회가 됐다. 강남이 30여년 사이에 상전벽해가 됐다면, 이곳은 20여년 사이에 천지개벽했다.

지난 6일 주일예배. 노 목사는 ‘열두 돌을 쌓는 의미’라는 설교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하나님이 여러분 인생에 하나도 개입해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해서는 안 된다”며 “예수님을 되새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재현하는 믿음을 쌓아나가시길 바란다”고 선포했다.

본당은 신도시 교인 수준에 맞는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한다. 우리 전통색인 감색과 옥색을 현대적으로 접목해 예배 참석자의 안정을 꾀했다. 외관 역시 노출콘크리트와 적삼목으로 마감해 미감을 느끼도록 했다. 교회건축의 대가 정시춘이 설계했다.

“제가 설교하다 목이 메어 침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원주민과 함께했던 시간과 돌아가신 권사님 등 교회 어른들이 생각나서입니다. 한국전쟁 무렵 주로 황해도를 빠져 나와 신불도에 정착한 분들이셨어요. 오직 믿음만으로 살아온 선한 이웃이었습니다.”

그렇게 담임 목사가 목메어 하면 대개의 교인은 어리둥절해 한다. 아파트 문화에 익숙한 교인이 95%이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신불도 출신의 원(原) 교인. 원교인에게 목사의 침묵은 기억의 이해이자 공유다.

그 기억, 국가가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면서 섬마을공동체와 신앙공동체는 역(逆) 창조의 혼돈에 빠져든다. 노 전도사 부임 두어해 지나서다. 신불도와 이웃한 영종도 삼목도 용유도 4개 섬 사이의 바다를 매립해 ‘영종도’라는 하나의 섬으로 만들고, 그 큰 섬에 지금의 인천국제공항을 건설했다.

대역사를 위해 공동체 해체가 불가피했고 그 대가로 원주민에겐 토지보상비 등이 주어졌다. 교인과 주민은 들떴고 가나안 땅을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누미노스(종교적 황홀경)한 상황에 이르렀다. 한데 뭉텅뭉텅 주어지는 보상비라는 황금은 순수를 훼손하기 시작했다. 주민은 물론 교회도 보상을 받아 가이주단지로 옮겼다. 아브라함시대 이집트의 풍요가 주어진 듯했다. 그 사이 포크레인은 조상 대대로 이어온 집과 초가 기도처로 시작한 교회를 순식간에 부쉈다.

“교회가 보상비라고 받은 돈이 몇 천 만원이었습니다. 섬 교회일 때는 큰 돈이지만 공동체를 떠나야 하는 입장에선 한탄이 절로 나오는 적은 액수죠. 김복내 장로(작고) 등 몇몇 교인과 교회를 지키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어요.”

30여명 남짓한 교인도 보상비를 쥐고서 자식에게, 부동산업자에게, 세상적 유혹에 시달렸다. 갯벌에서 굴을 따서 나누던 인심은 사라지고 뭐든지 계산하는 잇속이 마음마다 들어앉았다. 1960년대 중반 영종도 운서교회의 기도처로 시작한 영종제일감리교회는 그렇게 무너지는 듯했다. 영적 피폐였다.

“교회가 어디로 가야 될지 가늠이 안 됐습니다. 애초 신불도 교회 땅은 어느 교인의 개인재산이었기 때문에 보상 받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천막교회에서 시작해야 할 형편이었어요. 교인 일부도 고향을 떠나는 상황이었고요. 그러나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교인 부부가 노 목사를 찾았다. “목사님, 토지보상비로 받은 십일조를 바칩니다. 사랑하는 교회의 제단이 이어져야 합니다.” 노 목사는 “은혜에 놀라 감사 기도가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노 목사는 이를 계기로 고비를 교인과 헤쳐 나갔다. 감리교단과 교단 지방노회에서도 아펜젤러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일부 교회건축비를 지원했다. 땅은 천지개벽했으나 교회는 천신만고 끝에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

그러나 압축성장에 따른 후유증은 원주민과 원교인에게 아직도 계속된다. 그대로 살았으면 평온한 삶이었을 그들은 자식들의 성화에 얼굴이 어둡다. 이제는 몇 푼 남지 않은 주머닛돈을 보는 것이다.

“원주민의 상처를 치유하는 목회를 해왔습니다. 물질이 신앙을 돈독히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물질이 있더라도 나누지 않으면 평화가 없어요. 이 기억을 저장해 오늘의 교인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운서교회 기도처, 영종제일감리교회, 인아교회로 연결되는 신앙의 신경회로. 이 믿음의 기억이 저장되지 않으면 파편화된 세포체일 뿐이고 그렇게 된다면 그 세포체가 멸하도록 창조하셨다. 신앙의 선대를 기억하라.

영종도=글 전정희 기자·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jhjeon@kmib.co.kr

■ 인아교회 가는 길

서울역 서쪽 옛 서부역 자리에 공항철도 역사가 있다. 인천공항행 직통열차와 일반열차가 있는데 반드시 일반열차를 타야한다. 영종도 운서역 하차. 운서역에서 멀리 보면 롯데마트가 보이고 그 옆쪽으로 인아교회가 있다. 인천광역시 중구 운서동 2787-3 인아교회(032-746-3721).

■ 근처 맛집 참치전문점 ‘야바다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차로 5분 거리인 인천시 중구 운서동 전화국 뒤편에 참치전문점 ‘야바다다’ (032-752-7400)가 자리 잡고 있다. 인아교회에서는 걸어서 5분 거리.

‘장사의 기본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라는 이 식당의 이용철 대표는 처음 온 손님에게도 오래된 단골 고객처럼 따뜻하고 친근하게 다가서는 재주가 있다. 회요리는 강남의 유명한 참치횟집에서 솜씨를 익힌 외아들 윤식씨가, 주방은 전남 영광 출신의 솜씨 좋은 부인 신정숙 권사가 책임지고 있다. 참치전문점의 성공비결은 질 좋은 참치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인데 눈썰미 좋은 아들 윤식씨가 등급별로 가장 뛰어난 참치를 거래처에서 직접 골라 온다.

윤식씨는 참치 회를 맛있게 먹는 방법은 기호에 따라 적당히 또는 완전히 녹은 회에다가 고추냉이(와사비)를 조금 얹힌 후 간장을 살짝 찍어 먹어야 참치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단다. 참치의 느끼함은 김이나 무순, 락교절임, 초생강 등으로 입맛을 조절하면 된다. 담백한 속살 쪽에서 시작해 지방이 많은 뱃살 쪽을 먹는 것이 순서. 리필되는 회를 부지런히 먹다 보면 안주인이 정성껏 준비한 튀김, 참치구이, 초밥 및 북어국, 김말이를 충분히 먹지 못할 정도다.

공항 종사자와 동네 가족단위의 손님이 즐겨 찾는다. 가격은 다랑어 종류와 등급, 부위에 따라 1만9000원(1인기준)에서 5만원까지 다양하다. 4인 가족이 중간 정도 수준의 참치를 10만원 정도면 즐길 수 있다.

글·사진=곽경근 선임기자

-국민일보, 20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