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들녘·왕피천·소나무숲과 102년을 한자리에…
줄곧 과부의 찬란한 치마폭 같은 바다를 연상했다. 쪽빛 치마폭 같았던 그 울진의 바다와 왕피천의 ‘순수(純水)’는 뭔가 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열망이 되어 20대의 우리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1980년대 초반 교회 대학부 친구들과 그 오지 울진을 찾기로 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기억을 떠올려 봐도 좀처럼 명확해지지 않는다. 다만 한수산의 소설 ‘부초’의 광대 연인의 사랑이 깃든 소백산 자락을 거쳐 울진 쪽빛 바다에 닿았을 때 우리는 그저 서러웠을 뿐이다. 나이 때문이었으리라.
그 시절 우리의 그 설움은 대예배 직후 이어진 대학부 예배에서도 성경 한 구절, 찬송 한 소절에서도 음울하게 드러나곤 했다. 시대적 정황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지난 19일 울진시외버스터미널. 국지성 폭우가 무섭게 내렸다. 터미널 건너편 시내버스정류장에서 들이치는 비를 피하며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 행곡침례교회에 가는 차를 기다렸다. 주일예배 시간에 맞춰야 하다보니 조바심이 났으나 읍내 버스정류장의 아취를 놓치기도 아쉬웠다.
시골버스는 왕피천을 따라 태백산맥 등마루를 오르기 위해 숨을 고르며 나아갔다. ‘울진·삼척=공비 출몰지역’으로 각인되어진 두메산골은 이제 ‘전원마을’의 어감으로 변했다. 고을을 이룬 이래 문명의 진보와 퇴보가 거듭됨에도 세상의 요동과 관계없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이들이 여기 있었다.
동해와 닿는 왕피천 하류를 치올라 십리나 갔을까. 논 한 바닥에 종탑과 십자가가 불쑥한 행곡교회가 빗물 흐르는 차창 너머로 다가왔다.
‘1908 행곡교회’. 문명의 퇴보를 겪던 20세기 초. 한반도의 이 외진 곳에 행곡교회를 통해 복음이 전해졌다는 사실은 그 무렵의 동력과 동선을 헤아려 해석하기엔 합리적이지 않다. 울진은 1895년 현에서 군으로 승격됐고 울진면은 1979년에서야 읍으로 승격됐던 한적한 곳. 행정상으로 1963년까지 강원도 땅이었다.
대한기독교침례회사에 따르면 행곡교회는 1905년 공주 성서신학원을 졸업한 손필환 문서선교사의 포교로 울진지역 첫 교회가 됐다. 캐나다 출신 선교사 말콤 펜웍으로부터 예수를 영접한 손 선교사가 왜 이 멀리 울진까지 와서 포교를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손 선교사는 1907년 겨울 충남 공주교회에서 개최된 침례교 총회격인 대화회(大和會)에 울진 출신인 전치규 전치주 남규연 남규백 등 8명의 성도와 함께 참석한 기록으로 보아 펜웍처럼 선교를 위해 울진 오지까지 일부러 들어갔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102년이 지난 오늘, 행곡교회는 여전히 마을의 십자가로 남아 복음을 전한다.
이날의 말씀은 ‘나오미의 귀향’. 추석을 나흘 앞둔 주일이었다.
“나오미처럼 믿음의 고향을 떠나 영적인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10년 만에 쫄딱 망해 돌아온 나오미는 고향으로 머리를 둔 순간 며느리 룻과 함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육신의 고향이 그리워 찾아오는 추석입니다. 영혼의 고향을 갖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김형욱(59) 목사의 쩌렁쩌렁한 설교가 시간이 갈수록 굵어지는 빗소리를 가늘게 했다. 30여명의 성도는 말씀을 경청했다. 강단 오른쪽 교육관(옛 예배당) 한옥 지붕과 그 앞마당의 100여년 수령의 모과나무가 늦장마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주일 아침이었다.
예배가 끝나고 성도들 대개는 집으로 가지 않고 교육관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상(床)이 펴지고 교제의 상차림이 이어졌다. 콩나물에 미역을 넣어 무친 반찬과 담백한 된장국만으로도 풍성했다. 열어놓은 미닫이문 밖으로 모과나무, 그 뒤로 황금색으로 바뀌는 논, 또 그 뒤로 수백년 됨직한 송림 그리고 은어가 오르는 왕피천이 펼쳐지니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다’(눅 12:15)는 말씀이 들어온다.
장상국(72) 장로는 “내가 예수를 처음 알았을 때(66년)만 해도 교회 앞길은 달구지나 지나다니는 시골 길이었다”며 “성류굴 쪽 집에서 이곳 교회까지 산 넘고 논둑을 지나는 먼 길인데도 찬송을 부르며 너무나 즐겁게 다녔다”고 술회했다. 쌀과 난방용 나무를 헌물하던 시절 이야기. 장 장로는 군 제대 후 피골이 상접할 만큼 깊은 병에 들었으나 “교회 다니면서 육신의 병을 고친 일을 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옛 얘기가 나오자 정헌호(46·근남면번영회 사무국장)씨가 “1800년대만 하더라도 교회 뒤쪽으로 왕피천이 흘렀다는 기록과 증언을 보았다”며 “하류 지역이라 울진 어느 지역보다 논농사가 잘돼 비교적 풍요로웠던 지역이라 교회도 들어설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말을 이었다. 해외 생활 등을 하다 오랜만에 아버지를 따라 출석한 이현정(26·국제변호사)씨가 교회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이근원씨는 울진원자력본부에 근무하며 이 교회를 섬긴다.
성도의 교제는 당시 약국을 하던 김홍일 집사가 첫 신식결혼식을 지금 교제를 나누는 교육관에서 하던 얘기로 이어졌다. 한복차림의 신부가 면사포를 쓴 것이 고작이었지만 말이다.
교육관은 1934∼83년 본당으로 쓰였던 한옥 ㅁ자 건물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에 홀처마 구조에 51㎡ 넓이로 2006년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따라서 이 건물은 남녀예배석의 구별, 예배석 구별 해제에 따른 강대상의 위치변경 등으로 한국 교회건축사에 남는 귀한 사료이다. 건립 당시 해체되던 울진 읍성의 병영 건물을 매입하여 대들보 등을 삼음으로써 이 지역 한옥 건축의 흔적도 보존하고 있는 셈이 됐다. 행곡교회에서 세운 죽변면의 용장교회 또한 등록문화재로 그 무렵의 한옥형 교회를 대표하고 한다.
그러나 수고 중 낙을 이루던 이곳도 근·현대사의 참화만은 피해가지 못했다. 이 교회 출신으로 침례교 3대 감목이었던 전치규 목사가 44년 2월 함흥형무소에서 순교했고, 전병무 목사와 남석천 성도는 49년 공비들의 손에 총살당했다. 침례교 순교자 21명 가운데 3명이 이 교회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 기독교 역사는 한국 불교에 비해 짧다. 하지만 이 짧은 기간 행곡교회 교인과 같은 복음의 전령이 새로운 문물과 제도를 슬기롭게 받아들여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이 한적한 교회는 가까운 미래 어느 날 ‘처치 스테이’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영성 공간이 될 것으로 믿는다.
울진=글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사진 곽경근 기자
■ 근처 맛집
울진에서 불영계곡 방향으로 우회전하면 초입에 다소 시골스러운 이름의 돼지고기 장작구이 전문점 ‘저팔계 장작초벌구이·막국수 식당(054-783-0070)’이 눈에 들어온다.
700도가 넘는 센 불에 초벌구이를 한 고기의 육즙은 살아 있고 기름이 빠지면서 참나무향이 고기에 그대로 배어 코를 자극한다. 초벌구이를 한 고기와 밑반찬이 한상 가득 나오면 상 가운데 재벌구이를 위해 본격적으로 참숯불을 피운다.
이 집은 소백산 기슭에 위치한 돼지농장에서 공급하는 쑥을 먹여 키운 암퇘지 생고기를 취급하는데 육질이 특히 부드럽고 잡냄새가 나지 않는다. 고기 외에 모든 음식은 안주인이 책임진다. 울진 성류굴 입구에서 평생 식당을 하며 지역에서 손맛을 인정받은 시어머니에게 노하우를 그대로 전수 받았다. 고추장아치, 김치, 쥐포무침, 쌈무, 샐러드 등 밑반찬도 어느 것 하나 정갈해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 6개월간 숙성시킨 후 이 식당만의 비법을 첨가해 만든 검정색을 띄는 된장과 된장찌개, 새콤 달콤 매콤한 소스 역시 입맛을 돋운다. 식당 인근에서 농사를 짓는 노모가 공급해주는 친환경 야채류 또한 상차림에 톡톡히 한 몫 한다.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면 원래 막국수가 전공이라는 주인부부의 말을 믿고 막국수와 메밀국수도 후식으로 나눠서 먹어 볼 만하다. 돼지고기 200g 8000원. 막국수 5500원.
■ 행곡교회 가는 길
울진읍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불영계곡 입구행 버스를 타고 10분 남짓 가서 행곡1리에서 내린다. 바로 소나무숲이 보이고 그 뒤로 교회가 있다. 울진까지는 자가용의 경우 서울을 기준으로 강릉-울진, 또는 원주-풍기-울진길이 좋다. 동서울터미널서 울진행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 경북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 102번지(054-783-4252).
■ 따라 걸어 보세요
행곡교회길 산책은 행곡교회나 민물고기생태체험관을 기점으로 잡아 왕피천 다리를 오가며 즐기는 것이 좋겠다. 체험관을 기점으로 하는 것은 주차가 편하고 자녀 동반시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 교회를 마지막으로 들르는 것은 교회문화재 및 성지 답사를 통해 교회길 산책의 하이라이트를 이룬다는 점에서도 권할 만하다.
1㎞ 지점의 구미마을은 동구의 수백년 된 은행나무와 향교, 자연 명소 주천대가 볼거리. 주천대 산길을 끼고 내앞마을로 향하는 길도 강변 산책의 묘미가 있다. 내앞마을은 왕피천 자연석을 이용해 축조한 담이 아름다운 곳. 정이품송과 같은 ‘처진 소나무’와 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에 나왔던 대나무길도 이 마을에 있다. 마을 어떤 곳이라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림이 된다. 총 4㎞, 도보 1시간.
곽경근 선임기자
-국민일보, 20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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