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보일세라… 양반마을 한켠으로 꼭꼭 숨어 버린걸까?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북 경주 양동마을. 조선시대 상류 주택을 포함해 양반 가옥과 초가 160호가 집중된 마을로 중요 민속자료이기도 하다. 무첨당 관가정 향단 등 보물 건축물이 셋이나 된다. 또 중국 고대 역사서 ‘통감속편’(국보 283호)을 이 마을 손씨 가문이 소장하고 있다. 지난 주일 아침. 이 마을을 둘러싼 설창산 단풍이 기와와 초가지붕에까지 내려왔다. 세계문화유산 지정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관광객은 이른 아침인데도 구름처럼 몰려 차량 통제가 힘들 정도였다. 수백년 양반 마을은 ‘아웃 도어’ 신발에 흙길이 파이고, 그들이 떠드는 소리에 체통 지키기가 어려워 보였다.
■ 경주 양동교회 가는 길
지난 1일 고속철도(KTX) 신경주역이 개통되면서 양동마을은 서울 기준으로 반나절 관광지가 됐다. 서울역에서 신경주역까지 정확히 2시간2분이 걸린다. 역 앞에 양동마을 입구까지 가는 좌석 및 입석 버스가 시간당 2∼3대꼴로 있다. 30∼40분 거리. 마을 입구가 양동초등학교 앞. 양동교회는 이 초등학교 뒤에 있다.
새마을·무궁화호 등을 이용하면 경주역에서 내리지만 역 앞에 대중교통편이 많다. 한국 제일의 고도답게 교통편이 좋고 안내가 잘돼 있어 찾는 데 어려움이 없다.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65-5 양동교회(054-762-4152).
같은 시각 마을을 마주하고 오른쪽 비탈에 위치한 고가 이향정(二香亭) 안채. 1695년 이 집을 지은 이범중(조선후기 학자·1708∼?)의 후손 이동헌(59) 장로 가족이 분주하다. 모친 정연갑(79) 권사, 처 이태숙(56) 권사, 서울서 친정나들이 온 딸 신애(31)씨와 그의 어린 1남1녀 등이 주일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것. 신애씨의 남편은 서울 신일교회 음재광 부목사다.
하지만 관광객은 안채 사정을 모른 채 넓은 안마당까지 들어와 고건축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쏟아낸다. 여기저기서 고급 디지털카메라의 셔터 누르는 소리가 새들을 쫓는다.
이 장로 가족은 가을햇살을 듬뿍 받으며 걸어서 교회로 향했다. 행락객은 성경을 든 가족 일행이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지 한번 더 쳐다본다. 대체 이 고풍스러운 양반 마을에 걸어서 다닐 정도로 가까운 곳에 교회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눈 밝은 사람이 찾아도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마을 안내 팸플릿과 표지판 어디에도 교회 표식은 없다.
오전 11시. 시편 146편으로 ‘예배의 부름’이 시작됐다. 양동마을 양동교회(정효도 목사) 주일예배가 행락객과 차량의 번잡스러움을 뒤로 하고 경배의 찬송, 성시교독, 신앙고백 등으로 이어졌다. 이 장로가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감사 기도를 올렸고, 정 목사는 ‘은혜의 원동력’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50여명의 교인은 창문 하나 없는 철근콘크리트 예배당에서 말씀을 받았다.
양동교회 찾기란 보물찾기와 같다. 분명 마을 안에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 2007년 마을 한복판에 있던 교회가 지금의 마을 입구로 나앉으면서부터다. 경주시가 2005년 무렵부터 추진한 마을 원형복원 사업에 따라 꼭꼭 숨어야 하는 카타콤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하얀 벽에 붉은 지붕을 인 작고 아담한 교회였어요. 철제 종탑이 있었고요. 우리 어머니 세대가 앞 형산강가에서 모래로 블록을 찍어 손수 날라 지은 교회였습니다.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던지 91년 글래디스 등 두 차례 태풍에도 견뎠어요. 물에 잠겼는데도 헐기 직전까지 금 하나 가지 않았어요.”
이 장로가 평생을 함께했던 옛 예배당은 경주시, 문화재청, 마을 여론에 밀려 2007년 양동초등학교 뒤쪽 강가에 자리 잡았다. 교회 설립 50년 만의 일이었다. 정 목사는 그때의 일을 차분하게 얘기했다.
“교회가 마을 경관에 저해된다는 이유였습니다. 한옥 교회를 짓겠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허가를 안 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마을을 떠나 한 4㎞ 떨어진 안강읍으로 이전하면 어떻겠느냐는 얘기도 들었죠. 교회가 모든 걸 양보해도 그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교인과 임직이 기도를 참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뜻이 있어서 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이전을 반대하며 더 버티면 정부나 시로부터 많은 걸 얻을 수 있지 않겠냐고 부추겼지만 정 목사는 “교회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잘랐다. 그리고 시골교회 교인들은 농사로 모은 성전건축 기금과 이전 사업비 등을 합쳐 교회 설립 50주년 기념 헌당을 했다.
“제일 아쉬웠던 건 옛 교회를 보존하지 못한 겁니다. 문화재위원조차 건축적 보존가치가 있다고 평가했어요. 수백년을 살아남은 건축이 ‘양동마을’이 됐듯이 세월이 흐르면 교회 건물도 문화재가 되는 거 아닙니까. 이것이 역사 유산이고요. 오늘만 보는 여론이 무섭더군요.”
동네 사람을 붙잡고 물어야만 찾을 수 있는 양동교회는 삼각자를 세워 땅 속에 박아 놓은 모양이다. 마치 벙커를 연상케 한다. 건축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흑벽돌과 노출콘크리트로 현대 건축의 미학을 살리려 애썼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만행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독일 남부 도시 디하우의 ‘화해의 교회’ 같다. 이 교회는 수난의 기억을 넘어 용서와 화해를 주제로 지어진 노출콘크리트 건물이다.
그러나 양동교회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 숨겨진 교회다. 마을 정비 사업을 이유로 가뜩이나 낮은 반지하 형태의 교회를 사업 주체가 소나무 등 아름드리로 마치 방풍림을 쌓듯 감춰버렸다. 그루당 300만원, 총 1억원의 조경 비용을 단지 교회 조경을 위해서 쓰는 교회 건축 사상 유례없는 일이 벌어졌다. 때문에 양동마을에선 53년 된 교회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신 분들이라 전도가 쉽지 않습니다. 문중 제사도 쉼 없고요. 하지만 이제는 바깥 분들 돌아가시면 출석하시는 안주인 교인이 꽤 됩니다. 최근 유교 전통이 완고하신 어르신 두 분이 세례 받고 별세하기도 했습니다.”
정 목사는 “밖에서 교회 다니던 분들도 정작 마을에 살게 되면 집안 어른 눈치 보느라 나오지 않는 독특한 정서”라고 덧붙였다.
다행인 점은 선비 정신이 살아 있어 경청은 한다는 것이다. 이 마을 출신 이진동 여전도사가 50년대 말 천막교회를 세웠을 때 마을 어른들은 헛기침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나 쫓아내진 않았다. 그 정서는 오늘날까지 양동마을 주민이 가진 덕목이다. 10년 전에 비해 교인이 배가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장로와 손수혁(63·신라공고 설립자 겸 교장) 장로는 이 마을의 양대 명문가 손이면서도 덕목을 뛰어넘어 구원의 확신으로 예수를 믿고, 지혜로 하나님의 몸인 교회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다.
“이제야 하나님 뜻을 알게 됐습니다. 이처럼 몰려드는 관광객에게 문화선교를 하라고 예비하신 겁니다. 갤러리 운영과 음악회 등을 통해 전도할 겁니다. 마을교회에서 세계교회로 내놓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 근처 맛집- 토속음식 전문점 ‘거림골식당’
“양동마을은 볼거리는 많은데 먹거리가 전혀 없네.”
양동교회 장세주(75) 집사는 20여년 전 이곳 양반촌을 찾은 관람객의 스쳐가는 소리를 들었다. 어려서부터 친정에서 큰손님을 많이 치러 봤고 양반집에 시집와서는 문중 대대로 내려온 반가 고유의 음식 비법도 익힌 터라 체면을 중시하는 남편을 끈질기게 설득해 반년 만에 마을 입구에 토속음식점인 거림골식당(054-762-4201)을 차렸다.
음식 맛은 장맛이라고 하는데 이 식당은 초입부터 집안 마당까지 온통 옛 향기가 배어 있는 제각각의 된장 항아리로 촘촘하다. 매년 가을이면 인근 마을에서 최고 품질의 햇콩을 구해 오랜 경험으로 발효시켜 된장과 청국장을 만든다. 여기에다 신선한 야채와 손맛을 더해서 끓여낸 된장찌개, 청국장찌개는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을 낸다.
대체적으로 경상도 음식은 짜고 매운 편이다. 하지만 이 식당은 소금을 적게 넣어 찌개는 물론 김치 등 밑반찬까지 삼삼하면서 시원하다. 찌개와 함께 나오는 반찬 중에 보리 쌀 밀 콩 등 곡식을 갈고 쪄서 찹쌀가루에 무 가지 고추 박 죽순 우엉 버섯 부추 등을 넣고 버무려 발효시킨 ‘집장’은 단백질이 풍부하고 소화가 잘돼 예전에는 머슴밥상에는 내놓지 않았다고 할 정도다.
콩가루를 섞어 즉석에서 면을 뽑아 끓여낸 고소한 칼국수(4000원), 양념장이 특별한 잔치국수 그리고 다소 투박해 보이지만 며느리 이영옥 집사와 함께 빚어낸 한과 약과 쌀엿도 별미.
된장찌개, 청국장찌개는 각 6000원, 파전 7000원. 된장(㎏당 1만5000원)은 벌써 항아리가 동나 내년 분 예약을 받고 있다.
경주=글 전정희 기자·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jhjeon@kmib.co.kr
-국민일보, 201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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