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갈은 무서운 동물이다. 주로 메마른 사막에 사는 전갈은 구부러진 꼬리에 있는 독침을 사용해 자신을 방어한다. 총 1000개로 알려진 전갈의 종 중 몇 종의 독은 매우 지독해 심지어 다 큰 어른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물론 몸이 작은 생쥐들에게 대부분 전갈의 독성은 치명적이다. 그런데 얼마 전 전갈에게 독침을 쏘이고도 아픔을 느끼지 않는 생쥐가 소개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미 서부에 사는 식충성 생쥐인 '그래스호퍼 쥐(Grasshopper Mouse·Onychomys torridus)'는 전갈을 무서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쥐들이 두려워하는 전갈을 잡아먹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그래스호퍼 쥐는 어떻게 통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이 쥐는 전갈 독을 억제할 수 있는 특정 이온채널(Nav1.8)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치료 불가능한 통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먼 미래에 작은 희망이 될 수도 있는 연구결과다.
- 전갈의 독침에 찔리고도 통증을 못 느끼는 그래스호퍼 생쥐.
만약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HSAN-4(Hereditary Sensory and Autonomic Neuropathy-4)라는 유전병을 가진 환자들은 통증과 온도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팔이 부러지거나 발에 동상이 걸려도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 음식을 씹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 혀가 물려 피가 나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상적 삶과 행복을 위해 아픔은 필수라는 말이다.
아픔과 통증을 통해 문제의 심각함을 알려주는 것은 신체뿐만이 아닐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자살률, OECD 최상의 우울증 환자 비율, OECD 최하위 수준의 행복지수. 수천만 명으로 구성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역시 어쩌면 이런 통증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치명적인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는지 모른다. HSAN-4 환자같이 이런 신호들을 계속 무시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우리들 공동체의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2013/10/29
'설교 > 예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인 삶의 질 100점 만점에 53점 (0) | 2013.11.07 |
---|---|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건네진 성경 (0) | 2013.11.01 |
어머니의 입 (0) | 2013.10.28 |
[2013 춘천마라톤] 100여m 남기고 압도적 스퍼트… 쿠갓, 한 발 차이로 정상에 (0) | 2013.10.28 |
길을 잃은 인생 (0) | 2013.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