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만약 아픔이 없다면?

하마사 2013. 10. 30. 12:35

 

전갈은 무서운 동물이다. 주로 메마른 사막에 사는 전갈은 구부러진 꼬리에 있는 독침을 사용해 자신을 방어한다. 총 1000개로 알려진 전갈의 종 중 몇 종의 독은 매우 지독해 심지어 다 큰 어른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물론 몸이 작은 생쥐들에게 대부분 전갈의 독성은 치명적이다. 그런데 얼마 전 전갈에게 독침을 쏘이고도 아픔을 느끼지 않는 생쥐가 소개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미 서부에 사는 식충성 생쥐인 '그래스호퍼 쥐(Grasshopper Mouse·Onychomys torridus)'는 전갈을 무서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쥐들이 두려워하는 전갈을 잡아먹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그래스호퍼 쥐는 어떻게 통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이 쥐는 전갈 독을 억제할 수 있는 특정 이온채널(Nav1.8)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치료 불가능한 통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먼 미래에 작은 희망이 될 수도 있는 연구결과다.


	전갈의 독침에 찔리고도 통증을 못 느끼는 그래스호퍼 생쥐.
전갈의 독침에 찔리고도 통증을 못 느끼는 그래스호퍼 생쥐.
그런데 도대체 아픔은 왜 존재할까? 가시에 찔렸을 때 느끼는 따가움, 불에 올려져 있는 냄비를 실수로 만졌을 때의 뜨거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느끼는 마음의 아픔…. 통증을 느끼는 우리에게 아픔은 반가울 리 없다. 하지만 '정상적인' 진통과 통증은 생명체에게 핵심적인 역할을 해주고 있다. 생명체들은 아픔과 통증을 통해 몸과 마음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기름이 떨어져가는 자동차 게시판에 불이 깜박이듯, 신체는 우리에게 아픔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피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라"고 강하게 충고하는 것이다. 결국 통증의 핵심은 신체가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충고를 제대로 이해하고 문제의 원인을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는 데 있다. 손이 따가운데 발을 피해서도 안 되고, 뜨거운 물에 통증을 느끼는 손은 지금 이 순간 치료해 주어야 한다.

만약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HSAN-4(Hereditary Sensory and Autonomic Neuropathy-4)라는 유전병을 가진 환자들은 통증과 온도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팔이 부러지거나 발에 동상이 걸려도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 음식을 씹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 혀가 물려 피가 나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상적 삶과 행복을 위해 아픔은 필수라는 말이다.

아픔과 통증을 통해 문제의 심각함을 알려주는 것은 신체뿐만이 아닐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자살률, OECD 최상의 우울증 환자 비율, OECD 최하위 수준의 행복지수. 수천만 명으로 구성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역시 어쩌면 이런 통증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치명적인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는지 모른다. HSAN-4 환자같이 이런 신호들을 계속 무시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우리들 공동체의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2013/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