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가정

손주 돌봄 십계명

하마사 2013. 7. 21. 16:09

16세기 조선 사대부 묵재(默齋) 이문건이 손자 수봉을 손수 길렀다. 묵재는 16년치 육아일기 '양아록(養兒錄)'을 남겼다. 손자가 문살을 붙들고 걸음마를 애쓰다 한 발짝 뗐다. 할아비는 손자 뺨을 비비며 끌어안는다. 벌레가 손자를 물자 "차라리 나를 물어" 하고 호통친다. 코흘리개 손자가 공부를 게을리하던 날 회초리를 든다. "때리기를 멈추자 한참 엎드려 우는데 늙은 것 마음도 울고 싶을 뿐이라." 손자 수봉은 훗날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다.

▶할아버지·할머니 육아일기가 서점에 쏟아진다. 은행원을 하다 명퇴한 남자가 두 손자를 키운 이야기 '네가 기억하지 못할 것에 대하여'를 냈다. "손자가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 장난감을 부러워하면 그 아이에게 애걸해 손자도 갖고 놀아보게 했지요." 예전엔 체면상 절대 못할 일이다. 전주에 사는 할머니는 쌍둥이 손주를 일곱 살까지 기른 뒤 '별난 할머니와 별난 쌍둥이'를 썼다. "손주 잘 키우려고 유치원에서 하는 부모 교육도 들었다"고 했다.


	만물상 일러스트

▶충북 사회서비스지원센터가 '행복한 손주 돌봄 가이드북'을 냈다. 조부모가 손주를 올바르게 돌보는 방법을 담았다. 첫째는 아이의 안전이다. 다치거나 아프면 안 된다. 조부모·부모 역할 분담도 분명히 하고 새로운 아이 돌보기 요령도 익혀야 한다. 아이를 맡긴 자식도 할 일이 있다. 출퇴근 시간이 칼 같아야 한다. 무엇보다 "물질로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 옛날식 아이 돌보기도 존중해야 한다. '손주 돌봄 십계명'이다.

▶영국에는 손주 둔 노인이 1400만명이다. 그중 넷에 하나는 손주를 돌보며 산다. 미국은 다섯 살 안 된 아이 30%가 조부모 손에서 큰다. 오바마 대통령도 외할머니가 8년을 키웠다. 영·미 '조부모협회'는 회원들에게 "능력의 한계를 넘지 말라"고 충고한다. 너무 피곤하면 멈추고, 친구 만날 시간을 내라고 한다. 손주 돌보는 것이 "의무감 때문이면 그만두고 기쁨이라면 하라"고 했다. 손주에게 돈이 들어가면 반드시 부모에게 말하라고 했다.

▶속담에 '애 봐준 공(功)은 없다'고 했다. '한 다리가 천리'다. 애 키워줘 봤자 부모 건너 할미 은공은 모른다. 일본은 조부모 손에 크는 아이들 비율이 10% 남짓이다. 우리는 맞벌이 가정 아이들 67%가 조부모 손에 자란다. 손주 키우는 한국 할머니는 하루 아홉 시간 중노동에 시달린다. 자식은 저녁에 퇴근해 부모에게 '제대로 얼굴을 뵈며 인사하기'부터 지킬 일이다. 할머니·할아버지는 무조건 참지만 말고 솔직하게 다 털어놓으시고요.

 

-조선일보, 201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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