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에 맞선 나, 도와줄 생각 않고 구경만하던 군중… 참 외롭더군요"
참수 테러범 설득, 추가 희생 막은 '영국의 아줌마 영웅' 전화 인터뷰…
그녀는 1남1녀의 어머니였다
인간에 실망했던 시간, 드라마 보는듯한 표정으로 다들 사진·동영상 찍어댔죠…
급박한 순간 기지 발휘, 테러범들 보면 언제나 메시지 남기고싶어하잖아요…
전쟁영웅의 손녀, '죽음은 언제나 도처에 있다 두려워마라, 그럼 살 것이다'…
그녀는 뒷모습으로도 말을 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쥔 사내 앞에서 조끼에 손을 넣고 등을 꼿꼿이 세우며 상대를 응시한 한 여인의 뒷모습은 강건하고 설득력 있었다.
- 테러범과 이야기를 나누는 로요-케네트./트위터 캡처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아줌마'에서 일약 '국민 영웅 엄마'로 발돋움한 그녀를 찾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전화로 물었다. 사건 당일 아들 생일잔치를 위해 런던으로 가는 중이었다던 그녀는 "다음에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되더라도 똑같이 할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오랜 기간 학교 선생님으로 일해서인지 굉장히 또박또박한 말투였다.
- “우리 아이들은 제 삶의 희망입니다. 이들이 언제나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아줌마 영웅’으로 뜬 잉그리드 로요-케네트가 딸 페워니를 안고 활짝 웃고 있다./본인 제공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았느냐"는 말에 그녀는 한사코 "난 그다지 용감하지 않다"고 겸손해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전 고작 십여 분이었어요. 그런데 저희 할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4년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신 분이죠. 그분과 비교하면 전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의 증조할아버지는 영국의 국내 정보 전담 정보기관인 MI5 출신이다. 또 할아버지는 영국 공군의 대위로 복무했다. 전쟁 뒤 공훈을 인정받아 영국 왕 조지 6세로부터 공군 수훈 십자 훈장(Distinguished Flying Cross)을 받았다고 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무용담을 자주 들었어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항상 당신을 죽이려 했고, 매일 죽음과 싸워야 했다고요. 할아버지는 항상 '죽음은 언제나 도처에 있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럼 살 것이다'고 제게 말씀하셨죠. 그게 용기라고 가르쳐주셨어요." 그녀는 "주눅이 들지 않는 배짱(guts)을 물려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이 도착하고 총성이 오가는 순간에도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범인들이 체포되는 장면을 끝까지 지켜봤다고 했다.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던 그녀는 "한국에도 전쟁에 참여한 위대한 애국자가 많지 않으냐"고 물었다. 지난 2007년까지 7년간 뉴질랜드에서 영어 강사를 하면서 한국인과 무척 친하게 지냈다고 했다. "한국에도 저희 할아버지 같이 용맹한 분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우린 전쟁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언제든 테러와 보복 살인, 강도 등 위협에 놓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범죄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권리를 주장하세요.(Don't be scared by these people. Stand up for your rights!)"
◇모성 본능(maternal instinct)
그녀는 "본능적으로 행동했다"고 말했다. "유소년 스카우트 선생을 수년간 맡으면서 아이들에게 '리더십'을 가르쳤어요.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먼저 가서 도와줘야 한다고요. 교통사고를 당한 듯 보이는 이를 발견하고 버스에서 내린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죠." 하지만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건 '살인의 흔적'이었다. "앉아서 시체를 살펴보고 있는데 저를 향해 다가오는 한 남성의 손이 눈에 띄었죠. 검은 점퍼를 입은 사내의 한 손엔 권총이, 다른 손엔 식칼과 도끼가 들려 있었어요."
그때였다. 또 다른 본능이 그녀를 일으켰다. 바로 모성 본능이었다. "인근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라 아이들이 많았거든요. '아이들보단 내가 다치는 게 낫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문을 보면서 그런 사람들(테러리스트)은 언제나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죠. 조용하게 '무엇 때문이냐' '억울한 건 내가 다 들어주겠다'며 대화를 유도했죠."
그녀는 '엄마의 힘'을 믿었다고 했다. "살인범이 저희 아이들 또래였거든요. 그들의 엄마, 선생님이 돼 보자고 생각했어요. 엄마란 건 말이죠, 아이들에게 의사도 돼야 하고, 선생님도, 친구도 돼야 하고, 모든 걸 해야 하잖아요. 전 세상에서 '엄마'가 가장 어려운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강하고요."
"두렵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긴장도 두려움도 전혀 없었어요. 아마 진땀이 났다면 상대가 절 공격했을지도 몰라요. 할아버지께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패배하는 것. 적들은 너의 나약한 모습에 쾌감을 느낀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거든요." 하지만 그들이 거기서 살인을 멈출 것이란 건 장담할 수 없었다. "잔인하게 사람을 죽였지만 한 명으로는 만족하지 않는 듯 보였어요. 관심을 끌고 싶어했고, 다른 희생자를 찾는 듯 보였어요. 그들이 다른 데 눈길 돌리지 못하도록 계속 말을 걸었죠."
그 유명한 '뒷모습' 사진 이야기도 했다. "둘 중 그나마 소심해 보이는 사람이었어요. '당신이 주도한 게 아니란 거 안다. 그 손에 있는 그거 나한테 달라'고 말했을 때 찍힌 것 같아요." 자극을 안 하려고 '칼' '흉기' 같은 단어를 안 썼다고 했다. "그들의 마음을 완전히 돌리기엔 10분, 15분이란 시간은 너무 짧았지만 '승산 없는 싸움'이라는 제 말엔 동의한 듯 보였어요."
사건 현장에서 멀지 않은 버스 정류장엔 이 상황을 전혀 모른 채 그녀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두 아이, 아들 바질(23)과 딸 페워니(25)가 있었다. 아이들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았을까? 만약 잘못되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평생 엄마를 원망하며 그리워할 텐데…. "일분일초도 아이 생각을 안 한 적이 없어요. 아이들 사진을 항상 갖고 다니거든요. 제 전부니까요. 어떻게 해서라도 집엔 꼭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범인들이 군중 반응에 동요하지 않고 나와 계속 대화하게끔 노력했죠."
- 뉴질랜드서 7년간 영어강사 하며 한국인과 인연도 로요-케네트는 전화에서“뉴질랜드에서 친했던 한국인 모두에게 안부 좀 대신 전해달라”며 크게 웃었다. 한국 학생들과 2005년쯤 찍은 사진./본인 제공
살인자에 맞선 이가 그녀란 걸 세상에 가장 먼저 알린 사람은 그녀의 아들 바질 바라다란(Baradaran)이었다. 그는 트위터에 '대단한 아줌마'라고 떠도는 사진에 "끝장나게 용감한 우리 엄마다!"고 글을 올렸다. '인생 최악의 생일을 맞을 뻔했다'고 여전히 가슴을 쓸어내리는 바라다란에게 평소 엄마의 모습이 어떤지 물었다. "원래 모성 본능이 무척 강하신 분이에요. 전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랐어요. 엄마는 저를 낳으신 뒤 바로 아버지랑 헤어졌거든요. 22년 전 홀로 되신 뒤부터 저랑 누나를 키우려고 정말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수퍼마켓 종업원, 옷가게 점원, 학교 선생님, 번역 아르바이트….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티 한번 안 내신 분이에요." 그는 브레히트의 희곡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 이야기를 꺼내며 "희곡 속 기회주의적인 주인공과는 정반대로, 진정한 의미의 억척 어멈이 바로 우리 엄마"라고 말했다.
사건 당일도 비슷했다. '일이 생겨 좀 늦겠다'는 엄마의 덤덤한 문자를 받고는 그런 사건에 휘말렸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나중에 엄마를 만나자마자 엄청 화를 냈어요. 누나는 엄마를 보고는 펑펑 눈물을 쏟아냈고요. 대체 제 정신이었느냐고, 남들 안 하는 그런 무모한 짓을 왜 나서서 했느냐고, 정말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느냐고 막 소리를 쳤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엄마가 정말 자랑스러워요. 살면서 느낀 가장 극적인 해피엔딩이에요. 가장 기쁜 생일 선물을 주신 거죠. 세상에서 제일 멋진 엄마예요."
그에게 "또다시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엄마를 보내주겠느냐"고 물었다. "솔직히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아요. 이 모든 사건이 여전히 꿈같아요. 비록 엄마는 '그 사람들이 나를 해치지 않을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고 말씀하셨지만, '제발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릴 거예요."
◇모든 이의 영웅
그 '10분'은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영국의 신문·방송에선 그녀를 톱뉴스로 다뤘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사건 다음 날 "그녀가 우리를 구했다"며 칭송했다. 그녀가 영어 선생으로 일했던 뉴질랜드에서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과 인근 프랑스·독일 등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다. "어떻게 알았는지 각국에서 이메일과 편지가 와요. 사람들이 무척이나 친절해졌고, 어딜 가도 절 알아보고, 사진을 찍자고 요청해요. 갑작스러운 관심이 너무 얼떨떨합니다."
'10분'은 그녀를 스타로 만들었지만, 인간에 대해 무척 실망한 시간이라는 설명도 했다. "칼이 무섭진 않았어요. 하지만 절 쳐다만 보던 50~60명 군중 속에서 굉장히 외로움을 느꼈죠."
그녀는 슬펐다고 했다. "사람들은 마치 인기 드라마라도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연방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어댔어요. 그렇게 처참한 광경을 보고도 수습하겠다고 나서기는커녕 '이 사진 팔면 돈 좀 되겠다'는 태도였죠. 화가 났어요." 잠깐 목소리를 높였던 그녀는 "이것도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라며 "인생이란 원래 이렇게 외로움과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 뒤 발생 장소의 이름을 따 '울위치의 천사'라는 별명이 붙은 그녀는 일주일이 지난 29일 영국 군인 리 릭비가 살해된 현장을 찾아 추모를 올렸다. 핏빛으로 물들었던 도로는 추모하는 이들이 보낸 수천 개의 꽃다발로 뒤덮였다. 그녀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애도하는 모습을 보니 심장이 쿵쾅대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가 영웅인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이 영웅적이지 않게 보였을 뿐, 누구든 영웅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당신도요."
-조선일보, 20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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