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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 최고의 축구 감독 '맨유' 알렉스 퍼거슨

하마사 2013. 5. 17. 22:33

 

21C 최고의 축구 감독 '맨유' 알렉스 퍼거슨
선수들 모든 것 파악, 화장실 습관도 꿰뚫어
완전한 조직 통제, 탁월한 동기부여 능력
끝없는 도전 정신으로 한 시대 풍미한 리더


	조정훈 스포츠부장 사진
조정훈 스포츠부장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감독석에서 쉬지 않고 껌을 씹는다. 껌을 씹으며 리듬을 타는 게 작전 구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퍼거슨 감독은 한 경기에 10개 정도의 껌을 씹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근한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퍼거슨 감독이 감독석에서 '껌 씹는 모습'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올해 72세인 퍼거슨 감독이 이번 주말 웨스트브로미치와 치르는 원정 경기를 끝으로 은퇴하기 때문이다. 맨유 명장(名將)의 마지막 경기를 보려는 팬들의 열기가 뜨거워 티켓 가격이 500만원을 넘어섰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퍼거슨 감독은 맨유의 역사, 그 자체였다. 1986년 그가 처음 감독으로 부임하던 당시 맨유는 2부 리그로 떠밀릴까 봐 전전긍긍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27년간 '퍼거슨 시대'를 거치면서 달라졌다. 우승컵을 38개 들어 올린 맨유는 직원 1인당 매출이 7억원을 넘는 초우량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 모든 게 '브리콜뢰르(bricoleur) 스타일' 리더인 퍼거슨 감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브리콜뢰르는 한정된 재료와 도구를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인재를 일컫는 말이다. 퍼거슨 감독은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10차례), 국제축구역사통계재단 '21세기 최고의 감독'에 선정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의 성공 요인을 '조직과 자신의 정체성 일치, 강력한 카리스마, 소통 강화, 정보 취합 능력, 완전한 조직 통제, 위기 상황에서 원칙 고수, 새로운 목표를 향한 끝없는 도전' 등 7가지로 분석했다.

퍼거슨 감독이 남긴 일화를 되짚어 보면 그 성공 비결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는 맨유에 부임하자마자 서포터들은 물론 홈 구장에서 유리창 닦는 인부까지 만나 인터뷰를 했다. 구단이 추구하는 가치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었다.

'왼발의 달인' 라이언 긱스가 프로 생활 23년간 맨유만 지킨 것도 퍼거슨 감독 때문이었다. 긱스는 유소년 시절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치며 축구를 포기하려 했다. 방황하던 긱스를 찾아와 용기를 심어준 사람이 바로 퍼거슨 감독이었다. 긱스는 "1군 사령탑인 퍼거슨 감독이 직접 찾아와 다독여주고 아버지처럼 내 고민도 들어줬다"며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고 했다.

1999년 5월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0―1로 뒤진 채 전반이 끝난 뒤 퍼거슨 감독은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이 경기가 끝나면 우승컵은 너희의 딱 2m 앞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에서 진다면 만질 수도 없다. 그라운드에 모든 걸 쏟아내라"고 주문했다. 맨유는 후반 추가 시간에 2골을 뽑아내며 대역전 드라마를 썼다.

그는 선수들의 화장실 습관까지 꿰뚫고 있을 정도로 철두철미했다. 자신에게 반기(反旗)를 들거나 팀워크를 해치는 선수는 아무리 유명한 스타라도 과감하게 내쳤다. 그렇다고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마지막 홈 경기에선 팬들에게 "새 감독을 믿고 지지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은퇴를 결심한 것도 47년 전 결혼한 이후 가족을 위해 평생을 바친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요즘 우리 사회는 지도층 인사들의 성 접대 논란과 성추행 의혹 사건 등으로 어수선하다. 청소년들에게 뭘 보고 배우라고 해야 할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이번 일요일에는 고3 수험생인 아들에게 책은 잠시 접어두고 밤 12시부터 열리는 퍼거슨 감독의 은퇴 경기를 보라고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한 시대를 풍미한 지도자의 먹먹한 울림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큼 훌륭한 인생 공부도 없을 테니까.

 

-조선일보, 2013/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