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박신애집사와 최우백교수

하마사 2013. 5. 24. 17:55

 

부모로부터 받은 신앙의 유산,‘축복’으로 살아가는 인생

 

◇박신애 집사, 최우백 집사 가정

-부모가 서로 믿고 사랑해서 얻은 딸, 신애(信愛).
그 이름처럼 하나님과 사람들을 믿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박신애 집사는 엄격한 아버지로부터 철저한 신앙훈련을 받았다. 그래서였을까? 어려서부터 전도를 하기 위해 전교부회장에 출마하고, CCC활동을 하며 또한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남달리 사모했다. 별빛이 아스라하게 빛나는 이른 새벽녘, 내 기억으로는 서너 살 때인 것 같다. 그때 나는 대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새벽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대화들은 주로 엄마가 읽어준 성경이야기를 되새기며 하나님께 응석을 부리는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린 나이에도 예수님을 그토록 사모했던 것은 내가 생각해도 축복 받은 일이었다. 3대째 믿어 온 모태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들이 이런저런 시련을 거치고 어렵게 만났다는 예수님을 나는 아무 어려움 없이 어려서부터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부산 수정교회 권사였던 외할머니와 대를 이어 수정교회 장로로 섬긴 아버지 박경수 장로, 어머니 유선희 권사의 딸 박신애 집사는 선교하고 구제하는 것에 가장 우선 했던 아버지의 신앙으로 하늘 나라에 저축된 복을 현재 찾아 쓰고 있다고, 이자가 너무 많이 붙어서 찾아 쓰고 찾아 써도 끝이 없다 고백한다. 박신애 집사는 물론 여동생과 남동생 역시 신실한 신앙의 가정을 이루었다. 특히 남동생은 할머니 때부터 섬겨온 부산 수정교회의 담임목사인 박제목 목사다.

-박신애 집사는 1982년 2월 큰이모의 소개로 남편 최우백 집사를 만나 1984년 12월 9개월 된 아들 정환이를 데리고 먼 이국 땅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남편은 서울공대 공업화학과를 졸업하고 대전에 있는 국방과학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첫인상만으로도 진실하고 성실한 청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였고, 하나님과의 구체적인 만남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하나님 저 사람이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 짝이라면 그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갖게 해주시고, 본인 스스로 세례를 받겠다는 말을 하게 해주십시오」하고 기도했다. 그 후 대전대흥침례교회에서 안종만 목사님을 통해 침례를 받았다. 10월 수정교회에서 구영기 목사님의 주례와 안종만 목사님의 축복기도 속에 가정을 이루었다. 미국으로 건너와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남편은 공부를 참 열심히 했다. 그러나 우리 뜻대로 졸업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믿고 남편이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도록 기도했던 것이다. 기도하는 것 말고는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드디어 눈물로 드린 기도가 응답되었다. 연구박사 자리를 주셨고 프로젝트 또한 상상치도 못할 만큼 많이 주셔서 축복의 대로가 열리는 것을 눈으로 목도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남편은 그 힘든 연구를 기도와 믿음으로 완수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연구 결과로 지금 신약이 개발되었고, 에이즈로 죽어 가는 사람들, 절망 중에 있는 불치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 부모님의 사위를 위한 「하나님 우리 사위가 훌륭한 과학자가 되어서 인류를 위해 공헌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또 노벨상을 받아 나라와 민족을 빛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주십시오」라는 기도 덕분이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남편을 보며 학생의 성실함이 어떤 것인지 남편을 통해 알 수 있었다는 박신애 집사는 그녀 역시 그 성실함을 본 받아 성실히 기도하였으며 기도의 결실로 그녀 또한 학생의 길을 갈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유학을 가서 오르간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에서 후진을 키우며 순모임을 통해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 싶다는 10년 전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시기 위해 진행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앨라배마 대학의 워렌 허튼 교수의 제자가 되었으며, 머써 대학 음대에 입학하게 되었고 한인교회 오르간 반주자로 사역하게 되었으며, 2년 만에 종교음악(오르간) 석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웨스터민스터 콰이어 대학 오르간 연주 석사과정 역시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

-어렸을 때부터 철저한 계획안에서 걸음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 그분께 오르간 연주를 통해 영광을 돌리고 싶다는 박신애 집사, 평생의 믿음의 본을 보이며 기도해 주신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부모님의 기도는 이 땅에서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며 고백하는 박신애 집사는 삶의 중턱에 와 있는 인생의 길에서 여기까지 그녀의 삶을 그려오신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에 감사하며 나머지 인생도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인생으로 그려주시리라 확신하고 있다.

...“학업을 다 마치고 교회에서 반주자로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먼 이국 땅에서 체험한 사랑의 울타리를 이제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복음으로 생명을 불태우는 선교사님들을 위해 펼치고 싶다. 지금까지도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사례비 전액을 선교사님들에게 보낼 것이다. 또한 부모님께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 위해 평생을 교회에서 가까운 곳에서만 사셨던 모습을 본받아서 나도 열심히 새벽기도를 하며 기도의 씨를 뿌리고 봉사하는데 앞장서도록 힘쓸 것이다. 나의 할머니가 그러했고 나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나 역시 그렇게 섬기고 싶다. 아들 정환이와 딸 인경이 역시 믿음의 대를 이어 열매를 맺는 인생을 그려가리라 믿고 감사드린다. 야베스의 기도처럼 우리 가정에 복에 복을 더하시고, 지경을 넓혀 나가시며,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선포하는 간증들이 내 자녀와 자손들을 통해 넘쳐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힘든 휴학 시절, 많은 기도의 능력과 대대로 이어온 신앙 유산의 축복을 체험하고 평생 하나님을 찬양하는 반주자로 부름 받은 박신애 집사의 인생에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인생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기도로 준비되어지고 진행되어지고 또한 마무리되어지는 인생이 이 땅에 가득하길...
/김선영 기자

 

-한국기독신문, 2003/2/8

 

*박제복목사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최우백교수에 대한 글을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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