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사람

대한민국 시험관아기들의 代父 문신용 서울대병원 교수

하마사 2013. 5. 11. 10:19

28년간 불임부부에 3만5000명 ‘보물’ 선물… 은퇴 앞둔 文信容 서울대병원 교수
"줄기세포 치료기술은 없어요, 아마 100년 안엔 불가능할 겁니다"

35세, 열정만 갖고 미국行
83년 시험관아기 처음 만든 美 존스 박사 무작정 찾아
2주 문전박대 끝에 팀 합류… 부지런하고 일처리 빨라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별명

1985년 첫 시험관아기 성공
일본·싱가포르에 이어 아시아에서 세번째 개가
베이징의과大·필리핀 등 각국 의료진 기술 배워가

생명공학에 기적은 없다
줄기세포, 만들 수는 있죠 원하는 세포로 분화도 돼요 하지만 인체 이식법 몰라요
좋은 기계부품 만들었지만 끼울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

황우석, 제지했어야 했는데…
당시 청와대·科技부총리에 ‘안된다’ 얘기했는데 안믿어
그 사람은 과학자가 아닌 신앙부흥운동가 됐어야…

종교계의 과학 견제 필요
인간복제·기형아유산… 神의 영역 범하지 마라는
그런 압력들이 있어야 사회가 淨化되지 않을까요


	한국의 첫 시험관아기를 1985년 탄생시킨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문신용 교수
한국의 첫 시험관아기를 1985년 탄생시킨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문신용 교수(서울대 인구의학연구소장)가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학교를 떠난다. 한국 생명공학의 부침(浮╱)을 체험하고 목격한 문 교수는 지난 6일 서울 동숭동 인구의학연구소에서 “생명의 한계를 알고, 가능한 정도까지만 노력하면 삶도 과학도 더 정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김연정 객원기자
미국의 시험관아기 시술법을 공부하고 싶다며 1983년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를 탄 서른다섯 살 청년이 있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젊은 의사 문신용(文信容)은 버지니아주(州) 노포크 종합병원을 찾아가 '존스 박사님'을 애타게 찾았다. 미국의 시험관아기를 처음으로 만든 하워드 존스 박사는 이 키 작은 한국의 청년이 누구인지도 모를뿐더러, 외부인에겐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문신용은 2주를 졸라 시험관아기 연구실 한쪽에 자리를 얻었다. 연구실엔 현미경이 가로수처럼 늘어서 있었다. 그는 병원의 연구 자료와 장비 설명서를 통째로 외우고, 현미경의 일련번호까지 적으며 한국의 시험관아기를 준비했다. 사람들은 그를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라고 불렀다. 연구실에 가장 먼저 나오고 일 처리가 빨라 붙은 별명이었다.

1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병원 산부인과에 자리를 잡은 '닥터 문'은 1985년 10월 서울대병원 장윤석 교수, 오선경 박사와 함께 한국의 첫 시험관아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쌍둥이 남매 천희, 천의다. 아시아에서 일본, 싱가포르 이후 세 번째 성공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태어난 시험관아기는 약 5만명. 이 중 3만5000명 정도가 문 교수와 제자들의 손을 거쳤다. 중국의 가장 큰 시험관아기 연구팀인 베이징(北京) 제3의과대를 비롯해 스리랑카·태국·파키스탄·네팔·필리핀·몽골의 연구팀이 와서 문 교수팀의 기술을 배워갔다.

'한국 시험관아기의 아버지' 문신용(65)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서울대 인구의학연구소장)가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학교를 떠난다. 미국행 비행기에 무작정 몸을 실은 지 30년, 첫 시험관아기가 태어난 지 28년 만의 은퇴다. 지난 6일 서울 동숭동 서울대 인구의학연구소에서 만난 문 교수는 "30년 전 렌즈 깨진 현미경을 고쳐 써가며 시험관아기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인큐베이터는 문이 너덜너덜한 걸 간신히 붙이고 때우고…. 그런데 그동안 내가 그토록 부러워한 '현미경이 가로수처럼 늘어선 연구실'이 만들어졌으니, 떠나는 마음치고는 참 좋네요."

문 교수는 30년 동안 영광과 좌절 사이를 오갔다. 그는 시험관 아기에 이어 1990년대 한국형 염색체 진단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2001년엔 인간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내며 한국 생명과학을 이끌었다. 그러나 2006년 '황우석 사태'가 나면서, 과학기술부 세포응용연구사업단 단장으로 황우석팀과 공동연구를 했던 문 교수도 불명예와 도의적 책임을 피하지 못했다.

문 교수는 은퇴 후 서울 삼성동 선릉역 부근에 생식의학·유전학 연구소를 만들 계획이다. 문 교수 성(姓)의 영문 앞글자를 따서 'M 여성 클리닉'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연구한 결과를 정리해 환자들에게 베풀고 싶어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의 많은 후배 의사가 합류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오고 있어요. 일단은 병원이 커가는 속도를 보고 결정하라고 대부분의 후배를 돌려보냈어요."

한국 생명과학 역사의 오르내림을 목격하고 이끌고 체험한 문신용 교수에게 생명과학의 전망을 물었다. "줄기세포 치료는 100년 안에, 적어도 우리 세대 안에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저나 기자 양반이 살아 있는 동안 그런 치료는 불가능하다는 거죠." 차갑고, 단호한 답이었다.

◇"줄기세포 치료, 100년 안에는 안 된다"

―배아줄기세포 치료의 가능성을 확고하게 부정하시는군요.

"황우석이 한창 잘나갈 때 그 팀의 캐치프레이즈가 '꿈은 이루어진다'였어요. 스포츠 경기라면 근사해 보이겠죠. 하지만 과학은 달라요. 끝에 한마디를 꼭 붙여야 해요. '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라고. 특히 '세포'라고 하는 건 진짜 어려운 거예요. 트랜지스터를 갈아 끼워서 라디오를 고치는 것과 다르다고요."

―환자나 가족들에게도 똑같이 말하시나요.

"어쩔 수 없지요. 저도 환자와 가족에게 '지금은 안 된다'고 말할 때마다 마음이 매우 아파요. 그분들이 어깨가 축 처져 진료실을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 며칠 동안 잔상이 지워지지가 않아 마음고생을 해요. 그러나 헛된 희망은 환자와 가족에게 두 번 상처를 줄 뿐이에요."

―인간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도, 치료까지 그렇게 오래 걸릴까요?

"줄기세포를 만들 수는 있어요. 그것을 신경세포같이, 원하는 세포로 분화시키는 것도 이제 가능해요. 그런데 환자의 몸 안에 만들어진 세포를 이식하는 방법을 전혀 몰라요. 동물에 해보니까 (세포가) 다 죽는 거야. 좋은 부품을 만들었는데 제대로 기계에 끼워 넣을 방법이 없는 셈이에요. 줄기세포 치료에 돈이 아주 많이 들더라도 병이 낫기만 하면 좋겠죠. 하지만 그런 줄기세포 치료 기술이 존재하지가 않아요. 은퇴를 기회로 이 말을 남기고 싶어요. '줄기세포 치료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의학이다. 당분간은 안 된다'라고."


	1985년 10월 한국의 첫 시험관아기가 태어나던 순간. 아기를 들고 있는 사람이 문신용 교수다.
1985년 10월 한국의 첫 시험관아기가 태어나던 순간. 아기를 들고 있는 사람이 문신용 교수다. 문 교수는“‘이렇게 생명이 탄생하는구나’싶어 신기했다”고 말했다. /문신용 교수 제공
―'장밋빛 미래'가 갑자기 흙빛이 되는 기분인데요.

"이 세상에서 제일 안 되는 게 사람과 세포 가르치는 일이에요.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하지, 배운 대로 절대 안 해요. 세포도 똑같아요. 억지로 어떤 일을 하게 할 수가 없어요. 모든 생명체와 세포에는 '부여된 역할'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부여된 역할(permissive role)'은 문 교수가 만든 말이자 생명에 대한 그의 신념이다. '날 때부터 주어진 역할이 있어서 이를 도저히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

―부여는 그런데 누가 하는 건가요.

"'자연'이라고 할 수밖에는 없을 것 같아요. 철 따라 피는 꽃 다 다르고 동물은 수명이 제각각이죠. 잔디밭도 파란 순이 먼저 나는 곳이 따로 있어요. 그 대신 빨리 올라오는 잔디는 먼저 마르죠. 왜 어느 꽃은 봄이 아닌 가을에 피는지, 왜 어느 동물은 백 년을 살고 며칠 만에 죽는 종(種)도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생물은 자연에서의 위치와 역할이 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데, 그걸 선택할 수가 없고 부여받는 거죠. 억울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모두의 역할이 같다면 자연은 유지되지 못할 겁니다."

―운명론인가요?

"글쎄요. 생명이라는 것은 연장이 안 돼요. 평균수명은 늘어나도 최고 수명을 늘리기는 어려워요. 인간은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요? 130살?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는 안 될 거예요. 노력해서 되는 거면 수행하는 스님이 제일 오래 살아야지. 채식하고 공기 좋은 곳에 머물고 스트레스 덜 받고…. 그런데 아니잖아요."

―수명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고 보세요?

"나이가 들면 결국은 유전적으로 결정돼 있는 병이 나오게 돼 있다는 거죠. 병 중엔 이런 게 있어요. 아주 정확하게 유전의 법칙에 따라 다음 세대에 발현되는 게 있고, 세대를 건너뛰어서 진행되는 게 있고, 다음 다음 다음 세대에 나오는 게 있고…. '나'는 결정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무엇을 부여받았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갑자기 줄기세포를 갖고 대자연의 법칙을 넘어서서 가겠다? 그건 아니지요. 생명공학에 기적은 없어요."

―시험관아기도 한때 '기적 같은 기술'로 여겨졌잖아요.

"줄기세포로 치료가 안 된다는 건 아니에요. 과학이 무르익어야 하고 준비하고 연구하는 기간이 필요한데, 그게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니라는 거죠. 1980년대엔 시험관아기를 위한 과학적 여건들이 무르익어 있었어요."

―첫 시험관아기가 태어났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놀라웠죠. '이렇게 생명이 탄생하는구나' 하고 신기했어요.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배아가 되고, 이걸 자궁에 이식하면 임신을 하고…. 그런데 여전히 시험관아기를 시도해도 안 되는 사람이 40%가 넘어요. 기계학, 전자공학 이런 거는 사람이 명령하는 대로 진행이 되고 실패했을 땐 원인이 명확하잖아요. 이놈의 생명체는 안돼요."

―폐결핵·장티푸스·소아마비같이 인간이 정복한 질병도 많은데요?

"그건 약(藥)으로 잡는 거지. 세균을 발견했고 세균을 죽이는 약을 찾아내서 감염을 막는 거죠. 감염에 의한 질병은 거의 정복을 했어요. 바이러스나 수퍼박테리아 정도가 해결이 안 되죠. 저도 그런 의학 발전을 보면 깜짝깜짝 놀라요. 그런데 세포를 바꾸거나 고치는 기술은 여전히 거의 없어요. 도마뱀은 몸이 잘려나가도 다시 자라는데, 인간은 몸 한 부위가 잘리면 재생이 안 되잖아요. 도마뱀 몸에서 일어나는 세포의 재생 방식을 알아내서 똑같이 해봐도, 사람 세포는 그대로 움직이지를 않아요."

―그런데 교수님도 한때 줄기세포 치료의 가능성을 믿었던 것 아닌가요. 황우석 박사와 함께할 때요.

"누구보다 내가 큰 희망을 갖고 있었지 않나 싶어요. 나는 시험관아기를 했으니까. 세포가 인간이 되는 걸 눈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아, 이것만 뽑아서 만능 세포가 만들어진다면…. 그래! 가능성은 있겠다' 싶었죠. 이론적으로 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론은 이론인 거죠. 현실적으로는 안 되는 거예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 내 머릿속을 훑고 지나 떠날 때쯤 황우석 사태가 터진 거죠."

◇과학이 정치와 섞이자 '사기극'이 됐다

줄기세포 치료 이야기가 황우석 사태 당시의 이야기로 넘어가자 문 교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험악한 단어도 나왔다. 문 교수는 "그 사람은 과학을 하지 말고 미국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는 에반젤리스트(evangelist·신앙 부흥 운동자)가 됐어야 한다"고 했다.

―왜 그렇게 모두가 속은 거죠?

"과학이 과학으로 가야 하는데, 당시엔 과학하고 정치가 믹스된(섞인) 부분이 있었어요. 그 출발점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내가 여태까지 알고 지낸 사람 중에 제일 친절한 모습을 보인 인간이 황우석이에요. 항상 만나면 90도로 허리 굽혀 인사를 했어요. 하지만 불행히도 그 속마음은 알 수가 없었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겐 '생명공학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면 세종대왕보다 더 훌륭한 업적을 낸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할 정도였어요. 내가 줄기세포 치료 관련 기자회견은 안 된다고 했는데, 결국 했어요. 과학자가 정치인이 된 거예요."

―왜 더 적극적으로 안 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멈출 수가 없었어요. 황우석이 만날 언론에 나와서 화려한 이야기를 했어요. 4000만명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니까 국민 머리에 각인이 돼가는 거야. 내가 아무리 안된다고 이야기 해도 언론은 피하기만 했어요. 그때 나는 세포응용연구사업단 연구원들에게는 항상 얘기했지. '이건 안 되는 거다. 안 되는 이유만 밝혀내도 우리의 업적은 훌륭하다.' 심정적으론 나도 됐으면 좋겠는데… 이게 안 되는 게 보이는 거야. 당시 과학기술부총리와 청와대 담당자들에게도 얘기했지요. 그런데 그 판단력 좋은 분들도 '양치기 소년' 황우석의 거짓말에 속는 거예요. 모든 국민이 노벨상에 눈이 멀기도 했고, 참…. '짝퉁(가짜) 노벨상 메달' 동영상 알아요?"


	은퇴를 앞둔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문신용 교수는 자신이 연루됐던‘황우석 사태’를 뒤돌아보며“언제 멈춰야 할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듯하다”고 말했다.
“제 평생의 스승이신 하워드 존스 교수님(액자 왼쪽 사진)은 늘‘멈춰라. 그리고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어요.”은퇴를 앞둔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문신용 교수는 자신이 연루됐던‘황우석 사태’를 뒤돌아보며“언제 멈춰야 할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듯하다”고 말했다. 액자 오른쪽 사진은 문 교수의 또 다른 스승이자 존스 교수의 부인인 조지아나 존스. /김연정 객원기자
문 교수는 한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2009년의 동영상을 찾아 보여줬다. 황우석은 한 모임에서 "제가 2006년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이 됐는데, 논문 사건 때문에 취소가 됐다"고 이야기하면서 금색 모형 노벨상 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었다. 문 교수는 한숨을 쉬었다. "황우석 얘기만 나오면 담배가 당기는데…." 그는 담뱃갑을 만지작거렸다.

황우석 전 교수가 이끄는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은 9일 '매머드 복원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문 교수는 "그 사람은 멈춰야 할 때를 모르는 사람 같다"고 했다. "제 평생의 스승이신 존스 교수님은 늘 '멈춰라. 그리고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이젠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제 스스로 이런 질책을 많이 해요. '야, 문신용. 너도 그때 좀 생각을 하고 브레이크를 걸었어야지!' 시험관아기도 마찬가지예요. 시도를 하다가 언제 멈춰야 할지 판단하는 것이 시도 자체만큼 중요하죠."

―애쓰는 부부에게 '이젠 포기하라'고 말하기가 쉽진 않겠네요.

"그걸 후배 선생님들에게도 많이 가르치는데…. 환자와 굉장히 깊은 인간관계를 맺기 전까지는 절대 '안 된다'는 얘기를 해주면 안 돼요. 언제 시도를 멈춰야 하는지, 어느 교과서에도 나와 있지 않아요. 의사가 주관적으로 판단해야 해요. '이건 안 되겠다'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부터 '더 이상 안 됩니다'라고 말할 때까지 아무리 짧아도 6개월이 걸려요. 정말 신뢰할 수 있을 때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안 그러면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주게 돼요."

◇"과학과 종교, 영원히 타협 없을 것"

문 교수는 1990년대 '한국형 염색체 진단기'를 개발했다. 임신 중에 기형아를 조기 진단할 수 있게 한 기기였다. 1억원이 넘는 수입산이 3000만원짜리 국산으로 교체되면서 진단 비용은 크게 내려갔다. 문 교수와 바이오메드랩 김종원 대표가 공동개발한 이 기기의 한국 시장 점유율은 현재 100%에 가깝다. 문 교수는 "어릴 때 주변에 심장병 어린이가 참 많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심장병 어린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심장 기형을 알아내는 초음파 검사 덕이지만, 한편으론 '기형아 진단'에 대한 맹신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 기술이 발달하면, 기형아 출산이 언젠가는 사라질까요.

"어렵다고 봐요. 초음파 검사로 알아내는 건 아주 일부분일 뿐이에요. 대부분의 기형아는 임신 초기에 유산이 됩니다. 태어나서 건강하지 않은 아이를 하나님이 유산시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40~50% 정도가 자연 유산이 되고, 착상되는 아이 중에 7% 정도가 이런저런 유전적 질환을 갖고 살게 되는 것이지요."

―기형아를 유산하는 게 윤리적으로 올바를까요.

"초음파 검사를 한 다음 이상이 있다고 부모에게 설명하면 일단 울음을 터뜨리고, 그다음엔 진료실을 나가버려요. 유산 수술을 하러 가는 거예요. 단 한 번도 '이 아이를 낳겠다'고 말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 부모를 욕할 수 있을까요. 유산을 안 하면 어떻게 될까요. 많은 경우 그 가정은 파괴돼요. 한국은 유럽·미국처럼 장애인을 국가가 제대로 돌봐주지를 않잖아요."

―키울 돈이 없으면 낳지 말라는 뜻인가요?

"과학은 무엇을 위해서 발전해야 할까요. 이 아이들의 병을 완벽하게 치료할 방법이 나온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요? 예전 미국에서 나온 한 연구에 따르면 다운증후군의 치료와 관리를 제대로 할 경우, 23세까지 100만달러(약 11억원)가 든다고 그래요. 한 가정을 무너뜨릴 수 있는 큰돈이에요. 국가가 책임을 질 수 없는 의학 기술은 개인에게 희망만 주고, 결국은 그 희망이 가정을 망쳐버려요."

―시험관아기, 줄기세포, 기형아 진단… 모두 종교계의 반발을 불러옴 직한 이슈들인데요.

"그분들(종교인들) 말씀이 틀린 게 아니에요. '우리가 모르는 신의 영역을 범하지 마라'는 거예요. 그런 견제 의견이 있어야 사회가 정화(淨化)가 돼요. 그래서 종교계의 의견을 들으려고 항상 노력은 하고 있어요."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시험관아기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잖아요.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

"신부님들과 사석에서 몇 번 이야기해 본 적이 있어요. '시험관아기는 안 된다'는 것이 그분들의 신념인 것은 확실해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해요. '내가 이렇게 반대해도 교수님이 하는 것을 쫓아다니면서 막을 수는 없다.' 허락해준 적은 없지만, 따라다니면서 막을 수도 없다는 거예요. 나는 '신부님 모르게 하면 되겠네'라고 생각하죠. 과학과 종교는 이런 평행선을 그리며 가는 거죠. 아마 타협은 영원히 없을 거고 꼭 타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생명체의 가장 큰 힘은 '젊음'이더라"

종교와 과학 이야기를 하는데 문 교수의 연구실에서 오랫동안 일하던 오선경 박사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3개월만 더 있으면 문 교수님과 보낸 시간이 꼭 30년이 된다"고 했다. "저야 서운하지만, 가신다니까 기쁘게 보내 드려야죠. 그런데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교수님. 이제 제발 담배 좀 끊으세요!"

―의사가 담배를 피우다니요.

"그거 아세요? 흡연자가 치매에 걸릴 확률이 훨씬 낮다는 거요. 왜냐고요? 치매 걸리기 전에 다 죽으니까, 하하. 내가 담배를 피우고 술도 가끔 마시니까, (안 그러는 사람들보다) 짧게 살겠죠. 매일 두 시간씩 운동하고 술·담배 안 하는 사람이 오래 사는 게 맞아요. 담배는 몸에 해로운 것이 확실하니까 끊으려고는 해요. 그런데 한편으론 '나는 그냥 이렇게 태어난 거니까,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도 해요. 운명론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극복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한계는 분명히 있는 거예요. 그걸 이해하고, 되는 데까지만 노력하면 삶도 과학도 더 정직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평생 생명을 연구하신 분이, 죽음에 대해 덤덤하신 것 같아요.

"인간이 죽지 않고 계속 살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가 없어요. 왜 그걸 다 알면서도 '나'와 '내 가족'은 다르다고 생각할까요. 그게 문제예요. 저는 이렇게 믿어요. 생명체의 가장 큰 힘은 젊음이라고, 그리고 젊음을 다 지내고 사라져야 할 때가 되면 우리 모두 조용히 떠나야 한다고."

 

-조선일보, 2013/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