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관련자료/통계자료

몰(沒)취미

하마사 2013. 3. 26. 11:05

섬진강은 봄이 뭍에 오르는 길목이다. 엊그제 첫 꽃축제가 열린 광양 청매실농원을 찾았다. 섬진강 서쪽 쫓비산 기슭을 매화가 눈처럼 덮었다. 이른 아침 전망대는 삼각대 세워 둔 중년 사진가들 차지다. 대포만 한 렌즈를 달고 우박 쏟아지듯 셔터 소리를 터뜨린다. 오후엔 구례 현천마을로 산수유꽃 보러 갔다. 한적하다는 그곳에도 사진 동호회 버스들이 서 있다. '불혹의 포토클럽'도 있다. 사철 어딜 가나 아마추어 사진가 없는 곳이 없다.

▶취미란 마음의 밭을 가는 일이다.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다. 아무것도 안 하는 휴식과 다르다. 누군가 취미를 정의했다. "독서는 취미가 아니다. 책을 수집하면 취미다. 뜰을 나는 나비를 보는 건 취미가 아니다. 나비를 잡아 핀을 꽂으면 취미다." 취미가 일거리가 되는 순간 즐거움은 날아간다. "돈 받고 하라면 시들해지는 것이 취미"라는 우스개도 있다.

▶요즘엔 은퇴하고 얼추 30년을 더 살아야 한다. 바다 같은 세월을 헤쳐 가려면 돈뿐 아니라 취미가 필요하다. '취미 없는 사람'이 2006년 10%였다가 19%로 늘었다는 조사가 나왔다. 나이 들수록 몰(沒)취미가 돼 50대 이상에서 26%로 가장 많았다. 한국리서치는 "살림 팍팍하고 마음 각박해진 탓"이라고 했다.

▶10년 전 봄날 김민철의 여덟 살 딸이 보도를 걷다 발이 꼬여 넘어질 뻔했다. 긴 숨 내쉬더니 딸이 말했다. "하마터면 꽃마리를 밟을 뻔했네." 보도블록 틈에 하늘빛 꽃마리가 좁쌀만 하게 피어 있었다. 두 딸은 예닐곱 때부터 아파트 앞에 핀 꽃이 뭐냐고 물어댔다. 그는 야생화 책을 사다 공부했고 가족과 함께 산하를 다니며 들꽃 사진을 찍었다. 마흔여섯 김민철이 문학소년 시절부터 품어 온 작가의 꿈을 야생화 이야기에 담아 '문학 속에 핀 꽃들'을 펴냈다. 그는 일간지 기자다. "주말 들꽃 여행 덕분에 기자 생활도 풍요롭다"고 했다.

▶흔히 남자는 일하느라, 여자는 살림하느라 취미 가질 새가 어딨느냐고 말한다. 부부가 뒤늦게 뭔가 함께 해보려 해도 안 하던 짓이라 어색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하고한 날을 TV 앞에서 보낼 수는 없다. 어느 초여름 온갖 붓꽃이 천국처럼 만발한 용인 한택식물원 못가를 여든도 넘어 보이는 부부가 걷고 있었다. 거동 불편한 할아버지가 몸을 수그려 꽃을 찍을 때마다 할머니가 남편 허리를 붙들어줬다. 유대 금언에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 좋은 취미만 빼고"라고 했다. 지금이라도 부부가 함께할 취미 찾아볼 일이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3/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