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교 敎主' 김미경의 꿈 강의마다 10~ 50代 청중 구름 인파
꿈 대한민국 뒤덮은 신드롬
팔순 노인이 시인 데뷔하고, 평범한 주부가 베스트셀러 작가 되고… 누가 개천에서 용이 못난다고 했나
돈보다 꿈없는 사람이 루저
돈이나 과시하는 졸부들
부모 돈 믿고 설치는 애송이
돈 많은 남자에게
운명을 건 된장녀 너네들…
절망의 88만원 세대에게
사회가 이렇게 만들었으니
촛불을 켜야 한다?… 좋아,
하지만 어떻게 24시간 켜니
밤에 촛불 들더라도 낮엔
네 꿈 위해 일하면 안되겠니?
사람들이 내게 찾는 건 來日의 희망… 어려울수록 꿈 열풍 계속된다
나다움 있어야 그게 가장 큰 꿈이죠
두 사람이 홀로 라면집 창업했다쳐요
그중 한명이 직원 1만명 체인점 만들면
그게 다른 사람보다 더 큰 꿈일까요
종교집회 같은 강연회
꿈이란 게 원래 종교가 되기 가장 쉬워요
뭐가 안 되면 싹싹 빌듯 자신에게 빌잖아요
꿈의 길은 100가지가 훨씬 넘는데
학력으로만 줄세우니 내얘기로 출구찾는 것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
난 매일 0.1㎜씩 커온 사람이에요
갑자기 뜬 사람은 추락하지만
0.1㎜씩 큰 사람은 추락 안 합니다
강연의 달인이 된 비결은
직원 4명과 1주일 밤새워 3개 강의안 만들죠
재미·감동… 가장 좋은 것으로 버무려요
그러곤 입에 착착 붙을 때까지 연습하죠
지난 9일 서울 경희대 강당에서 열린 '김미경<사진>의 드림온 콘서트'에 5000여명이 몰렸다. 상당수가 20대로 보였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침 7시부터 기다린 첫 입장객은 고등학교 1학년생. 50세 아줌마의 '꿈' 이야기를 들으려고 12시간30분 동안 찬바람을 맞았다. 강당 안 풍경은 종교 부흥회 같았다. 거대한 군중이 모두 일어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발을 굴렀다.
- 지난 9일 김미경 강연이 열린 이 강당은 2010년 8월 한국 사회에 ‘정의’ 돌풍을 일으킨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강연한 곳이다. 경희대 관계자는 “샌델 교수의 강연보다 김미경 콘서트에 훨씬 많은 사람이 자리를 채웠다”고 전했다. / 이덕훈 기자
88만원 세대, 분노, 위로, 힐링….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계층 이동이 불가능한 절망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런데 절망의 크기가 커지는 만큼 열심히 꿈을 찾는 수많은 사람의 열정이 커지는 것을 우리는 발견한다. 평범한 주부가 요리책, 패션책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팔순 노인이 시인으로 데뷔한다. 꿈을 이룬 그들을 따라 엄청난 인파가 요리학원, 글짓기학원, 패션학원에 몰린다. 엘리트 외교관이 몇평짜리 우동집 주인으로 전직(轉職)하고, 한동네 주민 모두가 '기부' 선행에 동참한다. 아이가 "엄마, 줄넘기가 내 꿈이야"라고 말하면 아빠까지 동참해 줄넘기 강습에 몰입한다. 모양과 의미가 다르지만 다들 '꿈'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현상의 중심에 '여자 비아그라'란 별명을 가진 '희망교 교주(敎主)' 김미경(金美敬)이 서 있다. 동네 피아노 학원장, 무명 강사에서 출발한 그는 지금 '국민 강사' '국민 언니'로 불리면서 5000명씩 신도를 몰고 다닌다. 하지만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라고 물으면 안철수·김난도·혜민과 같은 화려한 스펙으로 답하기 어렵다. 자칭 "증평 촌년" 김미경은 "엄마 말도 안 듣는 아이들이 왜 엄마보다 더 늙은 나에게 '언니, 언니' 하면서 찾아오느냐?"고 반문한다. 그것도 '꿈'이란 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게다가 김미경의 언사는 불편하다. 안철수·김난도·혜민이 내세우는 '위로'란 세일즈 포인트를 그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다. 김미경은 젊은 여자들에게 "술자리에 참석하고 상사에게 술을 사면서 회사의 남자를 네편으로 만들라"고 독촉한다.
김미경이 일으키는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이 시대의 루저(loser·패배자)가 '돈 없는 사람'에서 '꿈 없는 사람'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그녀의 추종자들은 '김미경'이란 창(窓)을 통해 돈을 과시하는 부자들, 돈 많은 남자에 운명을 건 된장녀, 부모 돈을 믿고 설치는 애송이, 사회를 원망이나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실패자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그것이 사실이든 환상이든 김미경은 '가난을 엄청난 자산(資産)'으로 인식하도록 대중을 선동하고 유도한다.
'가난은 천형(天刑)이다. 부자 아이가 부자 되고, 가난한 아이는 가난뱅이가 된다.' 몇년 전부터 우리는 이런 인식에 포박됐다. 김미경은 반발한다. "개천에서 용 못 나는 시대라고? 너희가 봤어? 난 지금도 용 나는 거 보고 있어!" 경희대 강연 이틀 뒤인 11일 서울 마포구의 집필실에서 김미경을 다시 만났다.
◇그들이 찾는 건, '내일'
―바쁘시죠?
"이달 들어 내 맘대로 쓴 시간이 딱 3시간이었어요. 우울할 때도 있어요. 그거 아세요? 드림 워커(꿈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가 있고 드림머신(꿈을 좇는 기계)이 있어요. 내가 머신이 됐다는 생각도 해요. 그럴 땐 '이렇게 멋진 머신이 어디 있어?' 하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들이 막 열광하고 '인생이 바뀌었어요' '꿈을 찾았어요' 하는데."
―책은 얼마나 나갔어요?
"다 합치면 100만부 가까이 되지 않을까요. 옛날 책도 계속 팔려나가니까요.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가 8년째 나가고 있어요."
―얼마나 버세요?
"직원 20명의 3개 회사 매출이 그런대로 자리가 잡히는 상황까지 왔어요. 강의는 21년 노하우잖아요. 기업에 강의를 나가면 100점 맞는 방법이 눈에 보이죠. 요즘 어떤 기업이 어떤 콘텐츠에 목말라 한다는 걸 알아요."
―'드림온' 강연은 종교 집회를 보는 듯했어요.
"잘 보신 거예요. 꿈은 원래 종교이니까. 꿈이란 품목 자체가 종교가 되기에 가장 쉬워요. 옛날 사람들은 뭐가 안 되면 종교에 매달렸잖아요. 싹싹 빌었잖아요. 누군가 있을 거라고 믿고. 그런데 요즘엔 누군가에게 빌지 않아요. 자기에게 빌어요. 그게 꿈이에요. 미국에도 자기에게 비는 치유적 힐링 프로그램들이 있어요. 그게 종교를 대체해요. 그래서 꿈은 내 안의 종교예요."
―5000명이 왜 왔다고 생각해요?
"제 나이가 쉰이잖아요. 자기 엄마보다 나이가 많거든. 나이 든 아줌마, 완전 노땅이잖아요. 젊은 얘들, 노땅 얘기 잘 안 듣잖아요. 그런데 왜 내 얘기는 듣느냐고. '언니, 언니' 이러면서 중학생들이 메일을 정말 많이 해요. 언니라니? 내가 네 엄마보다 나이가 몇살이나 많은데. 꿈의 길은 100가지도 넘는데 학력으로만 줄을 세우니 아이들이 출구를 찾는 것이 아닐까요."
―출구에서 뭘 찾는다고 생각해요?
"내일. 우리가 가장 두려운 게 뭐예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밀려오는 막연한 불안감.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데 내일이 어떻게 될까. 그런데 꿈이 있으면 꿈을 이루기 위한 '작용'이 일어나잖아요. 그 작용만 일어나도 사람은 안 불안한 거예요.
돈이 있든 없든, 무언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있고, 그런 생각에 움직이기만 해도 사람들은 불안하지 않아요. 꿈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굉장한 위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꿈과 힐링(healing·치유)은 같은 단어예요.”
―김미경의 힐링은 자본주의적이고 전투적이네요.
“문제를 해결해야 치유가 되지요? 안 그래요? ‘나는 괜찮아, 잘 될 거야’ 이렇게 말만 한다고 잘 되느냐고요. 돈이 없어서 괴로워? 그럼 돈이 생겨야 힐링이 되지요. 직업이 없어서 괴로워? 그럼 직장에 들어가야 힐링이 되지요. 소극적 힐링이 아니라 적극적 힐링을 얘기하는 거예요. ‘해낸 인간’이라는 자신감, 내가 나를 믿어주는 힘이야말로 최고의 힐링이지요.”
―붐이 언제까지 갈 것 같아요?
“믿을 게 없잖아요. 직업이 금방 생기는 것도 아니야, 부모가 재산을 물려주지도 않아. 결국 내 안에 있는 걸 써야 되잖아요. 내 안에 있는 가능성, 내 안에 꿈이 있다고 믿고. 어려울수록 계속되겠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리 각박해도 자신에 대한 가능성을 팽개치지 않아요.”
◇촛불은 밤에 켜고, 낮엔 꿈을
“서울에 올라와 가장 괴로웠던 게 뭔데요. 3대째 잘난 것들을 보는 거였어요. 지금도 천지잖아요. ‘증평 촌년인 내가 뿌리를 내릴 곳이 있을까’ 20대부터 고민했어요. 그때 ‘괜찮아, 괜찮아’ 그러는 말에 따랐으면 지금 뭐가 괜찮겠어요? ‘다 나와, 다 붙어, 다 죽었어’ 하면서 꿈을 가지고 싸우고 스스로 상처를 힐링했어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도구는 나 하나예요. 내 안에 열정, 에너지, 모든 것이 있어요. 그걸 막 꺼내서 갖다 쓰면 돼요. 자기 안에 있는 시스템을 가동시키는, 열정에 불을 지피는 매개체가 꿈이거든요. 어려울수록, 결핍될수록 막 꺼내쓰잖아요.”
―요즘은 계층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해요. 이런 사회에서 ‘꿈은 신기루’란 반발도 있지요. 신기루를 팔아먹는다고.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란 책도 있지요. 꿈을 선동해서 열정의 노동자로 만들어서 대기업 CEO의 배를 불린다고. 사회를 고치지 않고 왜 개인의 꿈만 이야기하는가, 꿈을 펼칠 수 있는 장(場)을 왜 얘기하지 않는가. 이런 말이지요. 그런 의견, 중요해요. 다만 사회에는 각자의 꿈에 충실하게 살면서 조금씩 주변을 바꾸는 사람도 있어요. 촛불만이 아니라 꿈도 켜야 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충실함이 모여 5년, 10년 지나면 역사가 서로의 성과를 가지고 합의해 주는 것 아닌가요.”
김미경은 1964년 충북 증평에서 태어났다. 돈, 장사와 인연이 없던 아버지 대신 50년 동안 옷을 만든 어머니가 가계를 돌봤다. 연세대 작곡과를 수석으로 들어갔지만, 졸업 후 남은 이십대를 서울 송파에서 피아노학원 원장으로 보냈다. 그러다가 29세에 꿈을 품고 전문강사의 길을 걸었다. 김미경은 강연과 저술에서 ‘나도 했으니, 너희도 할 수 있어!’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스토리를 꿈을 이룬 성공 사례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386세대이지요. 학력고사 세대. ‘증평 촌년’이라고 했는데, 그때는 촌놈도 많았어요.
“재경향우회를 가면 짜장면 집에 촌놈 200명이 꽉 찼다니까. 그런데 지금 재경향우회가 없어지고 있다잖아요.”
―우리 세대는 성장시대였으니까. 성장시대 이야기를 듣고 요즘 젊은이가 “개천에서 용 난다”며 열광하는 게 신기해요.
“아니, 지금도 개천에서 용 나요. CEO를 상대로 강의하기 때문에 잘 알아요. 10, 20년은 부모 역량으로 살 수 있지만 마흔 넘으면 다 기초역량이에요. 명문대에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으로 들어간다는 건 다 과장이죠. 20대 학력이 평생을 보장하나요? 20년 후에 한 번 보자 그래요. 진짜 학력이 꿈보다 센지.”
―기회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잖아요.
“꿈을 사이즈로 착각하지 말자고요. 나답게 내 가치를 매일 실현해 나가면서 살자고요. 사회에 터뜨리는 불만의 에너지를 나에게 좀 더 집중해서 쓰자고요. ‘어제보다 괜찮은 인간이 되고 싶어.’ 이건 본능이잖아요.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이 잘돼.’ 이건 진리잖아요. ‘계층 이동은 이제 안 돼.’ 이런 소리를 하면서 왜 진리와 본능을 자꾸 끊어 놓느냐고요.”
◇꿈 과잉시대? 고갈보다 낫다
김미경을 만나기 전 서울대 내부 게시판에서 김미경 관련 글을 검색했다. 한국 사회에서 그래도 가장 꿈에 가까이 있을 듯한 사람들은 김미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찾아봤다. 그중 많은 지지를 받은 글은 제목이 ‘김미경쇼(케이블TV에서 방송 중인 성공 이야기)가 사람 잡는다’였다. ‘꿈, 도전정신, 이런 것만 이야기하면서 그거 없으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 프로그램을 보다가는 하루하루 만족하며 즐겁게 사는 내가 인생을 잘못 사는 것 같아 깜짝깜짝 놀란다.’
―현실에 자족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잖아요. 비루해도.
“두 사람이 라면집을 창업했어요. 그중 한 사람이 체인점을 만들어 직원 1만명을 뒀어요. 남은 한 사람은 스스로 만족하면서 작은 가게를 이어가요. 둘 다 꿈을 이룬 거잖아요. 한 사람을 만족시키면 작은 꿈이고, 1만명을 만족시키면 큰 꿈인가요? 현실에 자족해도 좋아요. 중요한 것은 ‘나다움’이에요. 꿈 안에서 ‘나다움’이 일어나면 그게 가장 큰 꿈이에요.”
―그래도 타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꿈이 좋겠죠?
“꿈의 기본 속성이 원래 영향력이에요. 한 사람이 꿈을 이루면, 주위의 100명 이상이 꿈을 들고 일어나요.”
―요즘엔 너무 많이 들고 일어나서 문제가 아닐까요. 아이가 ‘이게 꿈’이라고 하면 부모까지 우르르 몰려가 다 해줘요. 꿈 과잉시대인 듯해요.
“꿈을 키워준다고 해도, 다들 생각은 같아요. 스물다섯에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는. 그곳으로 가는 단거리가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거예요. 김연아가 나오면 죄다 스케이트장으로 가고. 꿈을 꾸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 ‘기다리는 능력’이에요. 그래도 그런 현상이 나쁠 것은 없어요. ‘학력’ 하나에 목숨 걸기보다는 이것저것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해요.”
- 김미경의 힐링은 자본주의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는 “돈이 없어서 괴로워? 그럼 돈이 있어야 힐링이 되지요. 직업이 없어서 괴로워? 그럼 직장에 들어가야 힐링이 되지요” 하고 말한다. ‘내가 나를 믿어주는 힘을 복원하는 것’이 그가 말하는 힐링의 정의다. / 이덕훈 기자
―좋은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이 김미경의 꿈이라고 했는데요.
“몸으로 소통하는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다가 죽는 것. 그런 꿈은 작년에 생긴 거예요. 꿈도 철들기가 그렇게 어려워요. 꿈도 몸이 크고 나이가 먹는 만큼 커져요.”
―철들기 전에는?
“20년 전 시간당 2만원 받고 강의를 시작했을 때는 시간당 100만원 받는 강사가 꿈이었어요. 꿈과 목표를 구분하지 못하고 출발한 거예요. 계속 목표를 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런 작은 목표들이 이루어진 뒤에 꿈을 얘기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꿈이 어떻게 커졌어요?
“난 사랑이 많은 사람은 아니에요. 대신 책임감은 강하거든요. 가족에게도 그렇고, 직원에게도 그렇고.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파랑새’란 강의를 하면서부터예요. 50명으로 시작해서, 100명, 200명. 2년 뒤 1000명이 오는 거예요. 3만원씩 받았어요. 한 달 내내 머리를 짜고 고생했지만, 어쨌든 겉으로 보기에 한 번 강의에 3000만원 버는 사람이 됐어요. 이 돈을 내가 다 갖는 것은 옳지 않겠다. 그래서 전부 장학금을 줬어요. 꿈의 플랫폼이 된 거죠. 이런 거구나. 이렇게 연결하면 많은 일을 하겠구나.”
―평범한 사람에서 스타 강사가 됐을 때 기분은?
“뜬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면, ‘난 매일 0.1㎜씩 큰 거라고요!’ 하고 말해요. 난 뜬 게 아니라 성장한 거라고. 뜬 사람은 추락하지만, 0.1㎜씩 큰 사람은 추락하지 않아요.”
―어떤 지식을 돈으로 연결하는 능력이 뛰어난 듯해요.
“기업과 관공서가 석사 학위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야간 대학원을 나왔거든요. 거기서 여성학 강의 하나 듣고 ‘양성 평등 리더십’, ‘국내 성희롱 예방 교육 과정’을 만들었어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란 과목을 한 학기를 듣고, 여성과 마케팅을 합쳐서 여성 고객 심리 마케팅으로 3년 동안 열심히 강의했죠. 난 대학원에서 배운 모든 과목을 다 돈으로 만들었어요. 영악한 건지, 지혜가 많은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6개월 강의를 들으면, 난 이걸 거의 다 자본으로 만들었어요. 돈에 대한 촉이 발달한 건지도 모르죠”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버는 이유는?
“우리 회사 직원들이 아니면 하루에 강의 3개씩 미친 듯이 하지 않았을 거예요. 나 하나 먹고 사는 지점은 이미 지났거든요. 우리 집 식구가 뭐 얼마나 쓴다고. 직원들 월급 줄 돈이 없어 힘든 날이 날 항상 뛰게 만들죠. 내가 가진 꿈은 항상 나를 고생시키는 꿈이에요. 근데 그게 좋아요. 안 그러면 사람들은 멈추지, 절대 뛰지 않아요. 회사는 결국 돈을 벌기 싫어도 돈을 벌어야 하는 시스템이죠. 가장들이 그러잖아요. 회사 다니기 싫어도 가족들 먹여 살리려면 어쩔 수 없이 다녀야 하니까. 그런데 어쩔 수 없이 하다가 보면 꼭 성장하는 거예요. 내가 머무는 공간에서 내가 성장하는 것이고, 그것이 나의 콘텐츠거든요.”
◇오장육부를 한 바퀴 돌아야 지혜
―지금은 자신의 성공 스토리가 있지만, 처음엔 무엇을 밑천으로 강의했어요?
“처음엔 무시당했죠. ‘음대 나온 여자가 어떻게 강의하느냐’고 생각할 때였으니까. 그래서 내가 잘하는 걸 하자. 난 페미니즘 기질이 강해요. 여성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스무살 때부터 무장돼 있었어요. 여자는 사회와 어떻게 조율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왜 사회에 참여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를 말했어요. 당시 강연 수요가 가장 많은 분야가 보험설계사나 화장품 판매원이었어요.”
―본인의 성공 경험이 없는데 먹혀들어요?
“먹혀들었다니까. 사람을 울리는 건 내가 아니라 내가 전하는 콘텐츠이니까. 기자처럼 인터뷰를 무지 많이 했어요. 초기엔 남의 말을 많이 전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 경험을 이야기했지요. 주로 20대들에게. 연령대별로 달라요. 그래서 강사는 쉰이 가까워야 그때부터 강의를 잘할 수 있어요. 육십이 되면 더 좋아질 거라고 믿어요. 이야기는 몸에서 소통돼야 해요. 오장육부에서 한 바퀴 돌면 ‘나다운’ 지혜로 싹 빠져나오잖아요. 칠십, 팔십까지 하는 외국의 유명한 연사들 보세요. 콘텐츠 하나하나가 너무나 멋있어.”
―강의 잘하는 것도 타고나지요? ‘달변 DNA는 엄마에게 물려받았고 경청의 달인이던 아버지 때문에 말이 늘었다’고 했는데.
“분명히 타고나요. 자기 얘기인데도 꼭 남 얘기처럼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데 제 수준의 전달력을 가진 사람은 주변에도 수없이 널려 있어요. 중요한 건 말솜씨가 아니라 경험과 생각, 그리고 이를 제대로 전달하는 훈련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 가죠.”
―그 많은 콘텐츠를 어떻게 끌어내요?
“직원 20명 중 4명이 콘텐츠를 전담하고 있어요. 매일 밤을 새워 생각해요. 예를 들어 황병기 선생님에 대해 강의를 준비하면 이렇게 하지요. ‘황병기는 뭐야? 하나의 직업으로 50년간 무르익고 숙성된 사람이야. 아, 황병기에게 제목을 단다면 숙성이구나. 그럼 숙성이 뭐지? 인간은 왜 숙성돼야 하지? 황병기는 어떻게 숙성됐지? 세상과 혼합하고, 부글부글 끓으면서 고뇌하다 보면 발효되고, 그러다가 숙성되는 것이지. 그래, 혼합ㆍ발효ㆍ숙성이란 틀을 놓고 인간의 삶을 비교하고 황병기의 사례를 넣어서 30분짜리 강의를 만들어 보자.’ 이게 일주일 걸려요. 그래도 에피소드가 촌스러우면 끝장이에요. 감동과 재미와 흥미가 적절하게 구성됐나 연구해 A·B·C 안(案)을 나에게 가져와요. 그중 가장 좋은 것을 섞어서 강의를 만들어요. 그리고 입에 착착 붙을 때까지 연습해요.”
-조선일보, 201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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