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사람

김능환 前선관위장

하마사 2013. 3. 7. 16:14

 

퇴임 다음날 부인 편의점 '알바' 나선 김능환 前선관위장 "작년 대법관 퇴임 때 충격받은 일은…"

퇴임 다음날 부인 편의점 '알바' 나선 前선관위장… 짐 나르고, 사탕 계산하고
별일도 아닌데 왜 찾아오나… 당분간은 자유인, 아내 도울것
변호사 개업 꼭 해야 하나요?
지금생활 매우 좋다는 아내와 팔다 남은 도시락으로 점심

김능환 전 선거관리위원장이 퇴임 다음 날인 6일 부인이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낸 편의점에서 계산 일을 하고 있다. /김지호 객원기자

6일 서울 상도동의 한 24시간 편의점. 등산용 점퍼와 빛바랜 목도리 차림을 한 초로(初老)의 남성이 계산 카운터에서 열심히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주고 있었다. 기자가 지켜본 1시간 동안 손님 10여명이 다녀갔다. 막걸리, 담배, 껌, 커피 등을 주로 사갔다. 계산대의 이 남성은 꼭 "○○원 받았습니다"라고 했고, 거스름돈도 "○○원 맞지요?"라고 확인한 뒤 건넸다.

이 사람은 바로 전날 중앙선거관리위원장직에서 퇴임한 김능환(62·金能煥)씨다. 33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친 다음 날 아내가 얼마 전 시작한 편의점의 '알바(아르바이트)'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물건을 사는 손님들은 그가 누구인지 한 사람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담배를 사가는 할아버지의 목이 쉬어 있자 "담배 끊으셔야겠다"고 했다. 엄마 손잡고 온 아이에게는 사탕을 건넸다.

약 8평(25㎡) 정도의 편의점은 매우 좁았다. 몸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카운터에서 서서 일하는 김 전 위원장은 가끔 가게 밖으로 나가 스트레칭도 했다. 그는 이곳에서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8시간 일하기로 했다. 나머지 16시간은 아르바이트생 2명이 8시간씩 일한다.

부인 김문경(58)씨도 수수한 차림으로 물건을 진열하고 창고 정리를 했다. 두 사람은 김 전 위원장이 1980년 전주지법 판사로 임용된 직후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김씨는 33년간 집안 살림만 했다. 김씨는 "남편은 판사 생활을 하는 동안 혹시 내가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릴까 봐 항상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했다"며 "이제는 내 마음대로 장사하니까 행복하다"고 했다.

김씨는 남편이 지난해 대법관을 퇴임하자 생활비를 벌기 위해 퇴직금으로 편의점과 채소 가게를 냈다. 두 가게는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겨울이라 채소 가게는 운영하지 않고 창고로 쓰고 있었다.

김 전 위원장에게 편의점이 잘되느냐고 묻자 "잘될 리가 있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아내가 알아서 하고 나는 도와주는 거니까 하루에 얼마나 팔리는지는 모르지만 잘되진 않는 것 같더라"고 했다.

낯설지만 보기좋은 장면… 선관위장 퇴임 다음날 편의점 출근 김능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퇴임 다음 날인 6일 서울 상도동 편의점으로 출근했다. 부인이 낸 가게다. 김 전 위원장은 아침 7시부터 8시간 동안 계산대에서 꼬마에게 사탕을 팔고 물건도 옮겼다. 그는“익숙한 일”이라고 했지만 전직 대법관의 편의점 재취업은 국민에겐 낯설고 신선한 모습이다. /김지호 객원기자

그에게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대법관 6년에 중앙선관위원장을 2년여 했으니 대형 로펌에 고문으로 이름만 걸어도 편히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변호사를 반드시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며 "당분간 자유인으로 아내를 도우면서 서민으로서 경제생활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작년 3월 9억5000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부인 김씨에게도 "솔직히 서운하지 않으냐. 공직에 있으면서 돈도 얼마 못 벌었는데 남들은 다 변호사 해서 전관예우로 큰돈 벌지 않느냐"고 물었다. 김씨는 "그건 바깥사람 일이고 나랑은 상관없다"며 "나는 지금 생활이 매우 좋다"고 했다.

인터뷰 도중 김 전 위원장은 "충격을 받은 일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그가 작년 7월 대법관을 퇴임했을 때, 부인 김씨가 "그동안 수고했다"는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ㄱㅁㅇㅇ'라는 짧은 답변을 보냈다. 쑥스러워서 '고마워요'의 앞글자를 따서 이렇게 보냈다는 거다. 그는 "안사람이 이게 무슨 뜻인가 몇 시간 동안 고민한 후에 보낸다면서 '가만있어'라는 뜻이냐고 묻더라"고 했다. 그는 "이제부터 아내에게 잘해주겠다"고 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 전 총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 공직에 다시 나갈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내 공직 생활은 어제로 끝이다. 앞으로 공직에 나갈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새 정부 출범이 표류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그는 "내가 관여하거나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했다.

그는 이날 점심을 부인과 함께 편의점에서 팔다 남은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손님이 없을 때는 도올 김용옥의 책 '중용, 인간의 맛'을 읽었다. 그는 "언론에서 자꾸 이상한 사람처럼 쓰는데 나는 그냥 보통 사람"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20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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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출근 前 대법관'을 非정상으로 보는 사회

 

대법관 출신인 김능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편의점에서 물건을 나르는 사진이 어제 조선일보 1면에 실렸다. 등산용 점퍼와 바지 차림에 목도리를 둘둘 감은 김 전 위원장의 모습은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였다. 김 전 위원장은 선관위원장 퇴임 다음 날인 6일부터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을 돕고 있다. 그는 몸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계산대에 서서 손님들에게 물건값을 계산해 준다. 25㎡(약 8평) 크기 편의점은 김 전 위원장 부인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작년 그의 대법관 퇴임 때 받은 퇴직금으로 차린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2006~2012년 대법관을 했고 2011년부터 2년 동안 중앙선관위원장을 지냈다. 그가 작년 3월 신고한 재산은 9억5000만원이다. 집 한 채가 사실상 재산의 전부다. 대법관 출신인 그가 다른 법조계 고위직 출신 인사들처럼 대형 로펌(법률 회사)에 들어갔다면 한 달 근무한 것으로 편의점에서 몇 년 벌어야 할 돈 이상을 벌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분간 아내를 도우면서 이대로 살겠다"고 했다.

1990년 이후 퇴임한 대법관 50여명 가운데 변호사 개업이나 로펌 취직을 하지 않은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대법원이 대법원에 올라온 민사 상고(上告) 사건 가운데 심리도 하지 않고 기각하는 비율이 평균 65%다. 그러나 대법관 출신이 변호사를 맡은 사건은 그 비율이 6.6%로 떨어진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이러니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변호인 선임서에 도장 한 번 찍어주고 3000만원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전관예우의 핵심은 전직 대법관 예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대법관을 지낸 후 변호사로서 전관예우 특혜를 누리면 대법관직(職)의 권위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재판 결과를 왜곡할 수도 있다. 사법부의 공정성을 고민해본 대법관이라면 퇴직 후 변호사 개업이나 로펌 취직을 신중히 생각해보는 것이 정상(正常)이다. 장·차관으로 고급 관용차를 탔던 사람들 가운데 퇴직 후 버스·지하철을 이용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고 무리를 해가며 운전사 딸린 승용차를 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벼슬이란 입었다 벗었다 하는 옷과 같다. 자리를 떠나면 보통 사람 옷으로 갈아입는 게 정상이다. 김 전 대법관의 정상적인 행동을 특이하고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 화제를 삼는 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비정상 사회가 돼버렸다는 증거다.

 

-조선일보 사설, 201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