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본질/전도(선교)

선교사 게일의 설날

하마사 2013. 2. 9. 19:24

 

개화기 한국에 왔던 선교사 중에서도 캐나다 출신 제임스 게일(한국 이름 기일·奇一)은 유난히 한국 문화를 사랑했다. 우리 어린아이들이 젓가락으로 콩자반을 먹으면서 한 알도 흘리지 않는 것을 보고 "저건 식사가 아니라 곡예"라고 감탄한 것도 게일이었다. 그는 서울의 길거리를 지나다 젊은이들이 어른을 모시는 걸 보고 "조선은 노인 천국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조선에서 노인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게일이 한국의 설날에 대해 얘기한 게 있다. '아이들이 설레며 기다리고, 때때옷을 입고 흥겹게 민속놀이를 하는 축제와 같은 날. 세뱃돈 같은 황홀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는 날.' 게일은 우리 설날이 자기가 어렸을 때 맞았던 크리스마스와 같은 날이라고 했다.

▶당시 한국에 왔던 서양인들에게 한국은 단지 서양과는 다른 '신기함'의 대상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게일은 그런 '다름' 속에 담긴 한국 문화의 독자적 가치를 볼 줄 알았다. 그는 한국인들의 가난함과 낙후함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한국 문화 속에 흐르는 인간관계의 따스함과 생활의 지혜를 놓치지 않았다. 그가 한국에 와서 보니 포구에 묶여있는 배는 비록 낡았지만 그걸 부리는 뱃사람의 손놀림은 서양인의 솜씨를 뛰어넘었다. 양반들은 낡은 세계관에 머물러 있는 듯 보였지만 그들이 도달해 있는 정신세계는 높았다.

▶서양 선교사들 가운데 누구보다 지적이고 개방적이었던 게일은 김유신 장군과 세종대왕과 율곡 이이 선생을 존경한다고 했다. 그는 소설 '구운몽' 같은 한국의 고전을 영어로 번역했고 한국과 세계를 잇는 다리로 '한영사전'을 세 번이나 편찬했다. 서울 YMCA를 세우고 이승만의 미국 유학을 주선해 훗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성장하는 데 힘을 보탠 것도 그였다. 게일이 담임했던 서울 연동교회가 그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17일 기념 예배와 함께 게일학술연구원을 개관하고 기념 논문집도 낼 계획이다.

▶게일은 선교사로서 기독교의 믿음과 가치를 뿌리기 위해 이 땅에 왔다. 그러나 그는 이 때문에 '한국의 크리스마스'인 설날 같은 명절이 빛을 잃게 될까 걱정했다. "현대 문명이라 불리는 무자비한 움직임 앞에서 이러한 축제의 날들은 해가 갈수록 퇴락해 갈 것이다." 게일은 "조선은 실로 동양의 희랍(고대 그리스)이라고 말하고 싶다"고도 했다. 게일의 발자취를 다시 돌아보면서 전통의 보존과 세계화 문제를 생각해본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