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가정

가족의 힘

하마사 2013. 1. 2. 10:00

 

1846년 11월 서부 개척민 여든 명이 캘리포니아 산맥을 넘다 눈보라를 만나 도너 계곡에 갇혔다. 젊은 독신 남자 열다섯 명을 빼곤 여덟 살 여자아이부터 예순다섯 살 할아버지까지 가족들이었다. 이듬해 봄 구조됐을 때 살아남은 독신 청년은 세 명뿐이었다. 가족들은 노약자가 많은데도 60%가 생존했다. 서로 보살피고 의지한 덕분이었다. 도너 계곡 사건을 분석한 인류학자 도널드 그레이슨은 "가족은 생존의 보증수표"라고 했다.

1973년 영국 서머랜드호텔에 불이 나 쉰한 명이 죽었다. 심리학자 조너선 사임이 화재 현장을 찍은 BBC 화면을 살펴봤더니 가장 무사한 그룹은 가족끼리 온 사람들이었다. 불이 나자 가족의 67%가 함께 움직였지만 친구들은 75%가 뿔뿔이 흩어졌다. 떨어져 있던 가족도 아수라장에서 서로를 찾아 빠져나왔다. 친구가 친구를 찾아 헤맨 경우는 없었다. 가족은 버림받지 않으리라는 믿음으로 침착할 수 있었다.

▶"가족이 돕고 기댈 수 있어 늘 행복했습니다." 2009년 송희근씨 온 가족 넷이 대구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면서 한 말이다. 그 4년 전 둘째가 대학 진학을 앞두자 아버지는 뇌성마비 큰아들도 대학에 보내기로 했다. 큰아들을 도우려고 부모도 같은 과에 들어갔다. 동생은 형을 업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부모는 눈이 어두운 큰아들 양쪽에 앉아 노트 필기 하고 강의 내용을 읽어줬다. 가족이었기에 한 몸처럼 움직인 4년이었다.

▶조선일보 신년 특집 '다시, 가족이다'에 정읍 사는 오형제 이야기가 실렸다. 큰아들은 17년 전 홀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자 네 동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서울·광주·경기도에 흩어져 살던 동생들은 "함께 모시자"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고향으로 돌아왔다. 오형제는 힘 합쳐 떡집을 열고 돌아가며 한두 해씩 어머니를 모셨다. 어머니가 날마다 아들들을 보는 것보다 좋은 치매 약도 없을 것이다.

▶한 가구 구성원이 평균 2.7명까지 줄었다. 1인 가구도 24%, 414만 가구에 이른다. 인구통계학자 니컬러스 에버슈타트는 30년 안에 유럽 어린이의 40%가 형제도 사촌도 없는 외둥이일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도 그렇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이 도너 계곡에서 살아날 확률은 매우 낮을 것이다. 가족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건강한 사회에 꼭 필요한 이타심·희생·협동·신뢰의 원천이다. 가족 부활은 국가 과제다. 올 한 해도 가족과 함께 가면 어떤 고난도 두렵지 않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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