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신지애의 홀로서기

하마사 2012. 9. 18. 20:30

 

신지애가 몇 년 전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주변 사람 중에 하루만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있다면 누구를 보내겠느냐." 그는 "아버지"라고 답했다. "시키는 게 너무 많아서"라고 했다. 신지애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5년 가까이 20층 아파트 계단을 한 시간 만에 일곱 차례씩 오르내렸다. 가난한 목사 아버지가 고안한 체력 단련법이었다. 골프화가 맞지 않아 발가락이 아프자 발가락을 누르는 부분을 도려내고 퍼팅 연습을 했다.

▶아버지는 관사 마당에 10m 폭으로 10~120m 금을 그어놓고 샷 훈련을 시켰다. 딸이 그 열두 구간에 차례대로 공을 열 개씩 떨어뜨릴 때까지 한없이 치게 했다. 그렇게 해서 신지애가 얻은 별명이 '초크 라인(Chalk line)'이다. 분필 선처럼 똑바로 공을 날린다는 얘기다. 그에겐 '미소 천사'라는 별명도 따라다닌다. 멋진 플레이를 하고 나서는 물론이고 엉뚱한 실수를 해도 웃는다. 함박웃음을 머금으면 안 그래도 작은 눈이 더 작아진다.

신지애의 '스마일 페이스'엔 세계 골프팬과 언론도 반했다. 그는 "억지로 웃는 건 아니고 잘될 땐 좋아서, 안될 땐 어이없어서 웃는다"고 했다. 워낙 강심장이고 승부욕과 집중력도 강해서 "곰같이 생겼는데 여우"라는 말도 듣는다. 엔간해선 사람들 앞에서 울지 않는 신지애가 작년 말 눈물을 떨궜다. 혼자 사는 노인들께 쌀과 라면을 드리러 갔다가 차디찬 방바닥을 만져보고서였다. 그는 '꼬마 천사' '기부 천사'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해마다 1억원 넘는 돈을 내놓는다.

▶신지애는 고교 때 프로에 데뷔한 뒤 국내 대회 절반을 휩쓸며 '지존'으로 불렸다. 딱 4년 전 브리티시오픈을 제패하고 세계로 나간 뒤엔 LPGA 상금왕·신인왕·다승왕 3관왕에 올랐다. 그러다 재작년 말부터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그가 올봄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중학교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가족을 위해 골프를 했고 프로가 된 뒤엔 팬과 미디어를 위한 골프를 했다. 지쳤다." 그는 "이젠 나를 위해 플레이하고 싶다. 남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더니 마음이 편하고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신지애가 어제 브리티시오픈까지 연달아 두 대회를 우승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별명 '파이널 퀸(역전의 여왕)'답게 2년 슬럼프를 떨쳐내고 확실하게 돌아왔다. "모든 것이 안정을 되찾았다"고 했다. 그는 올 들어 코치 없이 혼자서 스윙을 가다듬었다. 스윙보다 정신적으로 홀로 서는 과정이 훨씬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신지애에겐 이제 앞만 보고 질주하는 일만 남았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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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 때 몇달간 수면제 없이는 잠 못잤어요"

[LPGA 투어 2개 대회 제패한 프로 골퍼 신지애 귀국]
트위터에 쏟아지던 비난 글 "믿어주는 사람 없어 속상해"
2년간 배운 건 기본과 기다림… 말춤 세러모니 하려다 관둬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1년 10개월 만에 2주 연속 우승을 거두고 잠시 한국에 온 신지애가 19일 자신의 캐리커처가 걸려 있는 서울 역삼동 세마스포츠마케팅 본사에서 활짝 웃고 있다. 신지애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꾸준히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전날 저녁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노란색이었던 신지애(24)의 머리가 어느새 붉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19일 서울 역삼동의 세마스포츠마케팅 본사에서 만난 신지애는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6시 30분부터 머리를 새로 했다"며 "나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으로 골라봤다"고 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1년 10개월간 침묵하다 2개 대회를 연속으로 우승한 직후 한국행 비행기를 탔는데도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언제나처럼 신지애는 해맑게 웃었다.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했을 땐 요즘 대세인 싸이의 말춤으로 세러모니를 해볼까도 생각했어요. 친구들이 그건 좀 아닌 것 같다고 해서…. 헤헤." 신지애는 "우승이 이렇게 좋은 거구나…. 예전에도 알았지만 다시 한번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라고 했다.

신지애는 19일 각종 인터뷰와 방송 출연, 학교 방문 등의 일정을 소화한 뒤 20일 곧장 일본으로 떠난다. 27일 개막 예정인 일본여자오픈선수권 출전을 앞두고 미리 현지에 가서 훈련할 계획이다. "굳이 이렇게 바쁘게 떠나지 않아도 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요. 더 잘하고 싶어서요."

2008년부터 3년간 미국 투어에서 8승을 거둬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라섰던 신지애는 이후 우승 없이 1년 10개월을 보내며 슬럼프를 겪었다. 스윙 교정 실패와 부상 탓도 있었지만 성장통을 겪은 시기이기도 했다. 중3 때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가난한 목사였던 아버지의 '골프 조련'을 받으며 성장한 그는 지난 시즌부터 아버지와 따로 떨어져 살면서 혼자 투어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더 발전하기 위해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고,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사람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작년 7월부터 몇 달 동안은 하루에 세 시간밖에 못 잤어요.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어요." 신지애는 "우승이 없다고 사람들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기 시작하자 나도 따라 불안해졌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헝그리 정신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저는 미국 투어 데뷔 무렵보다 최근 2년간 훈련을 훨씬 더 많이 했어요. 나이를 먹어갈수록 조금만 훈련을 쉬어도 감각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리니까요." 신지애는 "머리 염색을 해도, 라식수술을 해도, 아무튼 내가 뭘 하기만 하면 트위터로 비판하는 글이 쏟아져 들어왔다"며 "수많은 사람이 내 얼굴을 볼 때마다 '도대체 문제가 뭐냐'고 묻는데 왜 나를 믿어주지 않고 먼저 따지기부터 하는지 속상했다"고 했다.

미국 투어에서 우승하는 한국 선수들을 바라보며 '저 자리가 내 자리인데'라고 생각한 날도 많았다고 했다. 특히 손바닥 수술을 받고 한국에서 재활 훈련을 하던 지난 7월 최나연이 블랙울프런 골프장에서 열린 US여자오픈에서 우승했을 땐 무척 부러웠다고 했다. 블랙울프런 골프장은 14년 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가 '맨발 투혼'을 선보이며 우승한 곳이다.

"정말 나가고 싶던 그 대회에 나는 나가지도 못했는데, 나연이가 우승하는 모습이 부럽고 멋있었어요. 하지만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었어요. 똑같이 14년 전 박세리 선배님의 우승 장면을 보고 골프를 시작했고, 같은 꿈과 목표를 품고 같은 길을 달려왔으니까요."

신지애는 거리를 늘리기 위해 바꿨던 스윙을 올 시즌부터 코치 없이 혼자 훈련하며 거의 원상태로 되돌렸다고 했다. 다만 체중 이동을 보완해 파워를 늘렸다. 고비를 견뎌낸 힘은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나왔다고 했다. "격려도 좋고 응원도 좋았지만 저와 공감해주신 것이 가장 큰 힘이 됐어요. '너 지금 힘들지? 힘들어 보인다. 괜찮아, 지금 힘들어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야'라고."

지난 2년을 돌아보면서 신지애는 '기본'과 '천천히'를 배웠다고 했다. "골프공은 어디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예전에는 우승이라는 결과만을 빨리 보고 싶어서 서둘렀지요. 이제는 기다릴 줄 알게 됐고 덤벼들지 않게 됐어요."

신지애는 다음 달 19일 국내에서 열리는 LPGA 투어 하나·외환 챔피언십에 출전한다. "저를 아껴주시는 이모 팬, 삼촌 팬이 워낙 많아요. 제가 국내 대회에 나오면 '며느리! 며느리!'라고 불러주시는 분들요. 그때마다 속으로 생각해요. '그런데 아드님은 어디 있나요?' 헤헤." 신지애는 "부상에 시달리는 동안 홍삼이며 산삼이며 잔뜩 챙겨주시고 오랫동안 기다려주신 국내 팬들 앞에서 꼭 트로피를 번쩍 들어 보이고 싶다"고 했다.

 

-조선일보, 201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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