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재 프리랜서 아나운서
1977년 강원도 원주시의 한 중학교 2학년 영어수업 시간. 까까머리에 교복 입은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의 긴장된 눈빛이 교실에 자욱하다. 영어 수업이라는 무게만으로 교실은 전장(戰場)의 팽팽한 공포감마저 서려 있다. 매서운 눈매와 가차없는 처벌로 '악명(?)' 높은 영어선생님의 존재감도 그러했지만 당시 한국의 14살 성장기 아이들에게 영어는 피하고 싶은 짐덩이이자 골칫덩어리였다. 읽고 해석 잘하면 '완전정복'되던 우리들의 영어 수업은 1분단 첫째 줄부터 그렇게 시작되었다.
자신의 순서를 무사히 넘긴 애들의 탄성과 달리 고비를 넘지 못한 낙오자들에겐 가차 없는 처벌이 날아들었다. "유영재!" 호명과 함께 이젠 내 차례다. "잘했어", "다음 순서", "앞으로 튀어나와" 영어선생님의 판결문은 셋 중 하나였다. 그러나 내게 돌아온 건 60초 동안의 고요와 침묵뿐이었다. 찬물을 끼얹은 듯 교실은 순간 호흡이 멈추었다. 그리고 던져진 영어선생님의 말 한마디는 내 삶의 미래를 결정짓는 선언문이 되었다.
"영재야. 커서 아나운서가 되어라. 목소리가 아주 좋아… 꼭 아나운서가 돼야 해" 중학교 2학년 막 사춘기에 접어든 사내 녀석의 목소리가 무엇이길래 선생님은 주저없이 내게 아나운서라는 팻말을 달아주셨을까?
그리고 2년 후 나는 원주고등학교에 진학해 또 한 분의 영어선생님에게서 내 인생진로의 쐐기를 박는 결정문을 듣게 된다. 김진성 선생님. 독일어를 전공하셨고 내 담임 선생님이자 영어 선생님이셨다. 중학교 2학년 교실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살벌한 영어의 읽고 해석하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고 내 목소리를 들은 김 선생님은 "유영재! 넌 아나운서가 되렴. 참 좋아 네 목소리가."
난 뒤돌아 보지 않고 영어영문과를 선택했고 1990년 아나운서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21년간 해왔던 한 방송사에서의 아나운서 생활을 접고 한 FM라디오 방송국에서 '유영재의 가요쇼'라는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스승의 말 한마디가 한 학생의 삶 전체를 종결짓는 중량감이 지금도 우리 대한민국 교육 현장에 과연 살아 있을까? 학교폭력과 스승의 자리가 가려진 오늘의 대한민국 교실! 그 교실에 아나운서라는 내 인생의 길을 열어준 영어선생님을 다시 세워 드리고 싶다. 그리고 외치고 싶다.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조선일보 아침편지, 201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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