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日 세계 챔피언의 '주유소 알바'

하마사 2012. 5. 3. 21:10

 

'유명해졌다 해서 달라지지 않겠다'… 직업적 완성도 고수하는 일본인…
'확대 지향'의 한국… 압축 성장 했지만 반칙과 편법 판쳐… 아직도 먼 '품격'

박정훈 기사기획 에디터
WBC 수퍼플라이급 챔피언 사토 요타(佐藤洋太)의 스토리를 접한 것은 얼마 전 일본 출장길에서였다. 호텔방 TV에서 본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밑바닥 출신 복서였다. 유흥가 뒷골목을 전전했고, 시합 중 뇌진탕을 일으켜 1년간 링을 떠난 일까지 있다. 하지만 잡초처럼 다시 일어나 한 달 전 세계 타이틀을 따냈다. 만 27세, 복서로선 늦은 나이였다.

내 가슴이 멍해진 것은 그 이후의 근황 때문이었다. TV 화면은 작업복 차림의 그가 주유소에서 일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챔피언 등극 후에도 그는 시간당 1000엔(약 1만40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뛰고 있었다. 도쿄 상경(上京) 이래 줄곧 해온 일이이라고 했다. 그는 "좀 유명해졌다고 달라지진 않겠다"고 했다. 미련스럽게 느껴질 만큼 강렬한 자기 집착이었다.

합리성의 잣대로 보면 '1000엔 알바'는 바보짓일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이득보다 자기류(流)를 선택한 사토의 고집을 나는 일본 특유의 '미의식(美意識)'으로 해석했다. 복서로서 그의 생명은 인생 밑바닥에서 다진 헝그리 정신이다. 이것을 잃으면 자기 직업의 완성도가 허물어진다는 것을 사토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일본엔 '바보 같은 사토'가 곳곳에 있다. 아무리 유명해져도 허름한 가게를 고수하며 대를 잇는 장인(匠人)의 사례는 발에 밟힐 만큼 흔하다. 한 분야를 좁고 깊게 파고들어 전문가가 되는 것을 일본에선 최고로 친다.

한국은 확대 지향적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확장의 길을 내달리는 것이 한국에선 미덕처럼 통한다. 음식점이 잘되면 분점을 내고 빌딩도 지으며 더 돈 벌 기회를 노린다. 거칠게 단순화하면 한국의 직업관은 역동적이고, 일본은 감동적이다.

어느 쪽이 옳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확장 욕구에 불타는 한국인의 기질은 압축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를 찾는 놀라운 성취동기 덕에 우리는 경제적으로 일본을 바짝 추격했다. 구매력을 감안한 우리의 지난해 국민소득(3만달러)은 일본(3만4000달러)과 엇비슷해졌고, 곧 일본을 추월할 전망이다. 놀라운 경제적 성취에 우리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래서 일본도 별것 아니네 하며 우습게 보는 경향마저 생겼다.

그러나 경제 외적인 경쟁에서 우리는 여전히 까마득히 뒤처져 있다. 21세기 국가 간 경쟁의 주 무대는 매력과 품격을 겨루는 소프트파워 경쟁으로 옮아갔다. 일본이 '이코노믹 애니멀(경제동물)'이라는 것은 옛말이다. 지금 일본은 '쿨 재팬(멋진 일본)'의 국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쿨한 매력과 국가 브랜드를 팔아 부(富)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거창하게 국가 품격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주변의 일상생활만 보아도 우리 사회엔 후진국형 반칙과 치사한 편법이 넘쳐난다. 여수 엑스포가 다가오자 당장 바가지요금이 문제로 떠올랐다. 외국인에게 바가지 씌우는 것을 애국으로 알고, 반찬 재활용 같은 속임수가 횡행하는 게 딱 우리 수준이다. 소득으로는 선진국에 근접했을지 몰라도, 품격은 선진국 운운하기조차 어색하다.

백주 대낮에 '대변(大便) 시위'가 벌어지고, 정권 말기마다 측근 비리가 불거진다. 온갖 괴담으로 혹세무민(惑世誣民)한 얼치기 전문가와 정치꾼들이 여전히 활개 치는 희한한 나라가 우리다. 파이시티 사건이 일본에서 터졌다면 아마도 몇 명은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자살을 미화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돈 받은 공직자가 개인적 도움 운운하며 치사하게 변명하진 않는다.

광복 이후 우리의 국가 목표는 '일본을 따라잡자'였다. 목표의 절반쯤 왔을 뿐인데, 일본도 별것 아니라는 소리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조선일보, 201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