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거쳐 이스라엘로… 하마스 1027명과 맞교환, 1차로 477명 먼저 풀어줘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납치돼 5년간 가자지구에 억류됐던 이스라엘 병사 길라드 샬리트(25)가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됐다. 샬리트 병장은 18일 오전(현지시각) 이집트를 거쳐 이스라엘로 돌아가 가족의 품에 안겼다. 앞서 이스라엘은 샬리트의 무사귀환 대가로 팔레스타인 수감자 1027명을 석방하기로 하마스와 합의했다.샬리트는 이날 가자-이집트 국경의 라파 검문소에서 먼저 이집트에 인계됐다. 샬리트는 검은 모자를 쓰고 회색 셔츠를 입었으며 수척한 모습이었다.
- ▲ 이 병사 한명을 구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포로 1027명을 넘겼다… 이스라엘이 자국 병사 한 명을 구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포로 1027명을 풀어주는 파격 조치를 단행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납치돼 5년간 억류됐던 이스라엘 병사 길라드 샬리트(25)가 18일 귀국, 텔노프 공군기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오른쪽) 총리의 환영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은 대신 팔레스타인 수감자 중 477명을 이날 1차로 석방했다. 나머지 550명은 2개월 후 석방될 예정이다. /AP 뉴시스
그는 이집트 방송과 짧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평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샬리트는 직후 이집트-가자-이스라엘 국경이 맞닿은 케렘샬롬(평화의 포도밭이란 뜻) 검문소에서 이스라엘 당국에 인도됐다. 그리고 인근 이스라엘 군 기지에서 가족과 상봉했다. 지난 2006년 6월 25일 납치된 뒤 5년 4개월여 만이다. 샬리트 가족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이스라엘 북부의 고향 미츠페힐라로 갔다.
- ▲ 고향으로… 수척한 모습의 이스라엘 병사 길라드 샬리트가 18일 팔레스타인의 무장정파 하마스 대원들에 이끌려 가자지구 라파 검문소를 통과하고 있다(사진 위). 그는 경유지인 이집트 입국 땐 사복 차림이었지만 고국 땅을 밟을 땐 국민정서를 고려한 듯 이스라엘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사진 아래는 이스라엘이 풀어주기로 한 팔레스타인 수감자 1027명 중 1차로 풀려난 수감자들이 버스를 탄 채 가자지구로 송환되며 기뻐하는 모습이다. /AP·로이터 뉴시스
이스라엘은 이날 석방을 약속한 팔레스타인 죄수 1027명 가운데 1차로 477명을 풀어줬다. 석방 대상자 중 40명은 시리아와 요르단 등 이웃국가로 추방됐지만 나머지는 버스를 타고 샬리트와 반대 경로를 통해 가자지구로 돌아갔다. 거리에 나온 가자 주민 수백명이 수감자들의 귀환을 환영했다. 추가 550명도 2개월 후 석방될 전망이다.
샬리트는 20세 생일을 앞두고 케렘샬롬 검문소 인근 초소에서 근무 중 하마스에 납치당했다. 그간 외부와의 접촉이 철저히 차단된 상태에서 자필 편지와 동영상을 통해 간간이 생존 사실을 알렸다. 납치 당시 상병이었으나 지금은 병장으로 진급한 상태다.
-조선일보, 2011/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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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풀려난 샬리트, 피랍에서 석방까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납치돼 5년간 가자지구에 억류됐던 이스라엘 병사 길라드 샬리트(25)가 마침내 5년 만에 ’자유의 몸’을 얻었다.
샬리트는 그간 친필 편지와 동영상을 통해 간간이 생존을 증명했을 뿐 외부와의 접촉이 철저히 차단된 채 억류 생활을 견뎌 왔다.
3년간의 의무 복무를 위해 군에 입대한 샬리트는 19세 때인 2006년 6월 25일 가자지구 남부 인근의 이스라엘군 초소에서 근무하던 중 하마스 대원의 기습 공격을 받고 납치당해 1994년 이후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에 처음으로 납치된 이스라엘 병사로 기록됐다.
이스라엘이 곧바로 가자지구에 군부대를 투입해 군사작전을 벌였지만, 샬리트를 구출하는 데 실패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샬리트와 팔레스타인 재소자 수백 명을 맞교환하는 방안을 놓고 하마스 측과 협상을 벌였으나 석방 재소자 수와 대상자를 둘러싼 양측의 이견으로 타결을 보지 못했다.
샬리트는 피랍 후 가자지구에 억류됐지만, 구체적인 소재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마스는 국제적십자사 등의 샬리트 접견도 허락하지 않았다.
샬리트는 납치 당시의 계급인 상병에서 현재는 병장으로 진급한 상태다.
샬리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을 상징하는 인물로 떠오르면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샬리트가 어떤 수단을 동원하거나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귀환시켜야 하는 인물로 자국 내에서 인식됐다.
이스라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그의 귀환 문제도 하마스와 협상 때 주요 이슈였다.
이스라엘 정부는 또 장기간 이집트의 중재로 샬리트 석방 문제를 협의해 왔다.
하마스 측은 한동안 샬리트의 모습을 공개하지 않아 한때 그가 사망했을지 모른다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안팎에서는 샬리트가 ‘유용한 자산’이기 때문에 하마스 측이 그가 죽도록 버려두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해 왔다.
샬리트의 가장 최근의 모습은 하마스가 2009년 9월 이스라엘에 보낸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공개됐다. 이스라엘은 이 비디오테이프를 건네 받는 대신 팔레스타인 여성 재소자 20명을 석방했다.
이 테이프에서 샬리트는 짙은 녹색 군복을 착용하고 깨끗하게 이발과 면도를 한 모습이었다. 한 손에는 그해 9월14일자 팔레스타인 신문을 쥐고 있었다.
샬리트가 납치당하자 송환을 촉구하는 시위를 줄곧 펼쳐온 아버지 노암 샬리트 등 가족은 전국적인 유명 인사가 됐다.
샬리트 가족은 샬리트 상병의 얼굴 사진이 인쇄된 흰색 티셔츠를 입고 이스라엘 국토 횡단 행진을 벌이고 이스라엘 총리 관저 앞에서 천막 시위를 벌이는 등 정부에 석방 노력을 꾸준히 촉구해 왔다.
이스라엘 정부와 하마스 양측은 이집트와 독일의 중재로 샬리트와 이스라엘 교도소에 있는 팔레스타인 재소자의 교환 협상을 벌인 끝에 타결, 샬리트는 5년 만에 이스라엘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샬리트는 이날 이집트로 인계된 뒤 이스라엘 당국이 제공한 차량에 올라타는 장면이 목격됐다. 짙은 회색의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샬리트는 대체로 건강해 보였다.
-조선일보, 2011/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