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행복과 희망

내신 8등급 천재

하마사 2011. 9. 24. 15:55

 

시인 프베레르의 시 '열등생'은 어느 교실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교사가 꼴찌 학생을 굳이 지목해 질문을 던진다. 꼴찌는 갑자기 폭소를 터뜨린 뒤 칠판에 적힌 숫자와 단어를 모조리 지워버리곤 제멋대로 그림을 그린다. 시인은 "온갖 색깔의 분필로 불행의 흑판에 행복의 얼굴을 그린다"며 꼴찌에게 박수를 보낸다.

처칠은 초등학교 때부터 열등생이었다. 고교 입시 라틴어에선 빵점을 맞았다. 그는 "서글펐던 두 시간 내내 멍하니 앉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명문대를 포기하고 샌드허스트 사관학교에 두 번 낙방하고서야 합격했다.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공대에 응시했다가 프랑스어·화학·생물학에서 낙제해 떨어졌다. 그러나 물리학 교수 하인리히 베버는 수학과 물리학에서 높은 점수를 딴 아인슈타인의 재능을 알아보고 청강생 자격을 줬다.

▶고교 내신 9등급 중에서 8등급에 머문 고교생이 연세대 수시모집에 합격한 사연이 어제 조선일보에 실렸다. 춘천고 차석호군은 얼마 전 이 대학 '창의 인재 전형'을 통해 시스템생물학과에 지원해 뜻을 이뤘다. 차군은 사물이 흔들리거나 겹쳐 보이는 안구(眼球) 질환을 앓아 왔다. 그래서 학교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내신성적이 하위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차군은 어릴 때부터 곤충 연구에 빠져 채집을 하러 다니고 밤새워 관찰해왔다. 한국의 앙리 파브르를 꿈꾸는 그는 이미 딱정벌레의 진화과정에 관한 논문도 썼다. 그의 수학(修學) 능력에 고개를 갸웃거렸던 연세대 교수들은 그를 면접하고 나서는 "반드시 뽑아야 할 천재"라고 감탄했다. 학창 시절엔 열등생이었지만 나중에 천재가 된 사람은 많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은 사춘기 시절에 학습 지진아였다.

진화론을 제시한 다윈은 의학자 집안에서 수치거리로 여겼던 열등생이었다. 피카소는 미술을 뺀 나머지 과목에선 낙제생이었다. 물론 모든 열등생이 모두 천재는 아니다. 천재는 특정 분야에 몰입하는 학생 중에서 나온다. 전 과목을 다 잘하는 학생뿐 아니라 한 과목에서 빼어난 학생도 우등생으로 인정하는 교육이 바람직하다. 위대한 작가 중에는 열등생이었지만 작문 시간에 늘 칭찬을 받았기에 창작의 길을 걷게 된 경우가 꽤 많다. 재목을 알아보는 안목과 칭찬과 격려가 천재를 만든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1/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