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청 신청한 140만명 중 404명 뽑아 자리 함께 해… 깜짝 이벤트는 없어
무대엔 의자 하나만 놓여 그녀 홀로 앉아 25년 회고
"시청자는 내 사랑" 남기고 애완견 사디와 무대 떠나
오프라 윈프리쇼 마지막 무대의 초대 손님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25일(현지시각) 오프라 윈프리(57)의 고별 방송이 CBS를 통해 전파를 탔다. '25년 토크쇼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60분이었다. 방송 앞뒤에 붙는 30초 광고비만 100만달러에 달한 최종회 녹화는 24일 평소와 같이 시카고 하포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 ▲ 1986년 첫 방송 이후 숱한 화제를 뿌리며 미국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오프라 윈프리 쇼’가 25일 마지막 전파를 탔다. 원피스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마지막 무대에 오른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는 미소를 머금은 채 조용히 손을 흔들며 시청자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윈프리가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순간, 404명의 방청객이 기립 박수와 환호로 맞았다. '절친'인 영화배우 게일 킹과 최근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별거에 들어간 마이라 슈라이버 등 유명인사는 물론 윈프리의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 열성팬 등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최종회 방청객으로 오겠다고 신청한 140만명 중 선택된 404명이었다. 방청객 숫자에 대해 제작진은 특별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지만 '404'가 사이버 공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웹페이지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토크쇼 종영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윈프리가 올라선 무대엔 의자가 하나만 놓여 있었다. 4561회 동안 1만여명의 이야기 손님이 그와 마주앉아 울고 웃다간 무대였다. 이곳에서 그는 홀로 60분 동안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평소처럼 화려한 음악도, 영상도, 조명도, 게스트도 없었다. 가수·작곡가 폴 사이먼이 그를 위해 만든 노래가 배경에 잔잔히 흐를 뿐이었다.
화면엔 1986년 오프라 윈프리쇼 '1회 방송' 장면이 떴다. '80년대식' 구불구불한 머리 모양에 두터운 황색 모피 코트를 입고 쇼를 진행하는 그의 모습이 나오자 방청객은 폭소를 터뜨렸다. 윈프리도 따라 웃었다. "저때 나에게는 경험도, 스타일리스트도, 분장사도 없었어요. 내가 가진 거라곤 오직 아줌마 파마컬과 촌스러운 모피 코트였죠."
그랬던 그가 145개국, 1일 시청자 700만명을 울고 웃기는 억만장자 토크쇼 여왕으로 우뚝 서게 된 '발자취'들이 화면에 지나갔다. 화면 안에서 톰 크루즈는 "사랑에 빠졌다"며 소파에서 방방 뛰었고, 마이클 잭슨은 "나는 피부가 하얘지는 병에 걸렸다"며 정색을 했으며 윈프리는 "나도 성폭행당했었다"며 눈물을 쏟았다. 쇼가 마지막으로 향해 갈수록 청중과 그녀의 눈시울은 점점 붉어졌다.
윈프리는 시청자들을 향한 '사랑 고백'으로 쇼를 마무리했다. "지금 이 장면을 보고 있을 당신. 비록 당신의 이름은 모르지만, 나는 당신에게 사랑을 배웠습니다. 시청자와 이 쇼는 나의 영원한 사랑입니다."
무대에서 내려온 그는 방청객 한명 한명을 부둥켜안으며 눈물을 쏟았고 방송국 스태프들과는 "우리가 해냈다"며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그리고는 그의 애완견 '사디'와 함께 모두를 뒤로하고 스튜디오를 걸어나갔다. 그게 윈프리쇼 최종회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조선일보, 201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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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프라 윈프리 쇼를 찾은 오바마 대통령 부부/출처=BBC
24일(현지시각) 마지막 녹화를 끝으로 미국 역사상 큰 인기를 끌었던 오프라 윈프리 쇼가 25년 만에 막을 내렸다. 오프라 윈프리(Winfrey)는 그의 토크쇼에서 수많은 화제를 낳았으며 마돈나, 비욘세, 톰 행크스 등 당대의 스타와 인물들이 윈프리의 쇼에서 충격적인 고백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쇼에 나와 자신의 출신지 논란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마지막 녹화의 주인공은 윈프리 자신이었다. 그는 그렇게 당당함과 친화력·대중 호소력을 무기로 25년간 숱한 화제를 남겼다. 영국의 BBC 방송은 당대 최고의 토크쇼였던 오프라 윈프리 쇼의 명장면 10선을 꼽았다. 이 중에는 한 시대의 트렌드를 이끈 이정표가 된 방송도 있다.
- ▲ 손수레에 지방덩이 30kg을 끌고 나온 오프라 윈프리/출처=BBC
◆ “나는 어렸을 적 강간당했습니다” 고백
윈프리는 자신의 쇼가 시작된 1986년, 쇼를 찾은 관객들에게 “나는 어릴 적 강간당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윈프리는 10대 흑인 미혼모에게서 태어나고 나서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으며 9살 때부터 친척과 이웃으로부터 지속적인 강간을 당했다.
그의 고백은 한 강간 피해자의 선언으로 그치지 않았다. 윈프리는 쇼를 찾은 사람들을 자신 옆에 마련된 소파에 앉히고 숨겨왔던 이야기를 꺼내놓게 만들었다. “나는 강간당했다”라 말할 수 있는 ‘진솔함’과 ‘감정이입’에 수많은 스타도 자신의 마음을 열었다.
◆지방 덩어리를 손수레에 끌고 나오다
1988년 윈프리는 옵티패스트 다이어트(단식하며 다이어트 보조식품을 먹는 방식) 선언 4개월 만에 30㎏을 감량했다. 그는 감량 직후, 10사이즈 청바지를 입고 손수레에 30㎏의 지방 덩어리를 실은 채 등장했다. 얼마 후 “4개월간 단식했으나 방송 직후 축하 음식을 마구 먹었더니 이틀 만에 청바지가 맞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마이클 잭슨의 입을 열다
1993년 윈프리는 좀처럼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 마이클 잭슨을 섭외하는 데 성공, 그의 저택 ‘네버랜드’에서 생방송 독점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방송은 무려 3650만명이 시청해 미국 토크쇼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미국 방송 전체에서도 역대 네 번째로 높은 시청률이었다.
90분 동안의 인터뷰에서 마이클 잭슨은 그가 ‘백반증’이라는 피부색 변이에 시달리고 있음을 털어놨다. 당시 윈프리는 마이클 잭슨에게 더 이상 수술하지 말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오프라 윈프리 ‘통 큰 선물’
2004년 9월, 쇼의 19번째 시즌을 시작하면서 오프라 윈프리는 방청객 276명 모두에게 제너럴모터스(GM)의 스포츠 세단인 폰티액 G6을 한 대씩 선물했다. 이날 방청객이 받은 자동차의 가격은 모두 합해 7백만 달러(약 76억원)에 이른다.
선물을 받은 방청객들은 ‘내 가족과 친구들이 차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편지로 써 보낸 사람들. 쇼는 윈프리가 방청객 11명을 무대로 불러내면서 시작됐다. 그는 이들에게 차를 한 대씩 선물했으며, 이어 남은 방청객들에게 선물 상자를 하나씩 나눠줬다.
윈프리는 방청객들에게 나눠 준 상자들 중 하나에 12번째 차 열쇠가 들어 있다고 말했지만, 방청객들이 상자를 열자 모든 상자에 자동차 열쇠가 들어 있었다.
- ▲ 소파위에서 케이티 홈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며 뛰고 있는 톰 크루즈/출처=BBC
◆소파 위의 톰 크루즈, 엘렌 드제너러스 “나는 레즈비언”
2005년 오프라 윈프리 쇼를 찾은 톰 크루즈는 인터뷰 중 소파 위에 올라가 깡충깡충 뛰며 케이티 홈스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당시 톰 크루즈의 행동은 전 세계적으로 회자됐고, 그는 케이티 홈스와 결혼하게 된다.
시트콤 ‘엘렌’의 주인공으로 유명했던 엘렌 드제너러스는 1997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밝혔다. 윈프리는 보수적인 미국 방송의 관례를 깨고 자신의 쇼에 성적 소수자를 출연시키기도 했다.
◆저자 제임스 프레이에게 이용당하다
2006년 오프라 윈프리는 쇼에서 범죄와 마약 중독 등으로 얼룩진 과거와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제임스 프레이의 자전적 도서 ‘100만개의 작은 조각들’을 추천했다. 이후 책은 200만부 이상 팔렸고 그 해 미국에서 ‘해리포터와 혼혈 왕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책이 됐다.
문제는 다음해 이 책의 내용 상당 부분이 거짓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희대의 베스트셀러 사기극에 일조한 셈이 됐고 자신이 프레이를 초대한 것을 후회한다고 최근 밝혔다.
◆남아프리카 여학교 개교
오프라 윈프리는 200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근처에 40만 달러(약 4억4000만원)를 들여 여학교를 설립했다. 그는 “내 생애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라고 감격했고 학생 선발 과정에도 직접 참여하는 등 학교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
하지만 그 후 두 차례 교사 섹스 스캔들과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으며, 지역주민들과도 각종 문제가 발생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힐러리가 아닌 오바마를 지지
역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정치권의 구애를 거부해왔던 오프라 윈프리는 2007년 5월 일천한 경력의 당시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이후 그는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오바마 지원 연설에 나서기도 했다.
윈프리는 당시 여성인 힐러리 대신에, 피부색이 같은 오바마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백인 여성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2011년, 마지막 오프라 윈프리 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의 오프라 윈프리 쇼 마지막 녹화장은 눈물로 가득 찼다. 톰 크루즈, 윌 스미스, 마돈나 등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그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정신적 지도자, 아이가 없으면서도 미국 모성과 가족의 가치를 대변한 사람”으로 불렸다.
-조선일보, 201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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