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273도·영상 151도서도… 물·산소 없어도 생존
"극한상황 생존 메커니즘 연구, 인류에 큰 도움 줄 것"
지난 16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가브리엘 기퍼즈 미 연방 하원의원의 배웅을 받으며 마지막 비행을 떠난 우주왕복선 인데버호에는 기퍼즈 의원의 남편 마크 켈리 선장을 포함한 6명 우주인 말고도 특별한 생명체가 동승했다.
이름은 타디그레이드(Tardigrade·사진). '느림보 동물'이란 뜻의 이 생명체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극한의 생존 조건에서도 살아남는 놀라운 생명력으로 유명한 '동물'이다. 타디그레이드는 16일간 우주비행에 나선 인데버호에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 ▲ 타디그레이드. /BBC
우주라는 극한의 환경에서 생명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 정보를 축적하고 이를 과학자들에게 제공해 인간을 포함한 유기체의 생명을 보존하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도록 하는 일이다.
타디그레이드는 번데기 같은 몸체에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 다 자란 성체(成體)의 크기는 1.5㎜ 정도다. 현미경으로 본 얼굴 모습과 걷는 모양이 곰과 비슷하다고 해서 '물곰(water bear)'으로도 불린다. 5억3000만년 전 캄브리아기에 출현한 생물로 과학자들은 '완보동물(緩步動物)'이라는 독자적인 생물군으로 분류한다.
타디그레이드는 기체의 부피가 '제로'가 되는 절대영도(영하 273도)에서도 생존하며 끓는 물 온도보다 높은 151도에서도 살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6000m가 넘는 히말라야 산맥이나 깊이 4000m 바다 속에서도 발견된다. 남극과 북극, 사막과 적도지역 등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살아간다. 생물에게 치명적인 농도의 방사성 물질 1000배에 달하는 양에 노출돼도 생명을 이어간다. 전 세계에1000여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끼 같은식물의 세포액을 빨아먹고 산다.
타디그레이드의 우주비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7년 9월 유럽우주국(ESA) 무인우주선 포톤-M3호를 타고 지구 밖으로 날아가 진공상태의 우주 공간에서 10일간 있다가 돌아왔다. 당시 지구로 다시 돌아온 타디그레이드는 물도 산소도 없는상태를 견디며 살아남았고 정상적으로 알을 낳아 번식도 해 과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번 인데버호 우주비행에서는 더욱 극한의 조건을 견디는 실험을 진행하고 이들 데이터를 갖고 귀환할 예정이다.
타디그레이드 연구자인 로베르토 귀데티 이탈리아 모데나대학 교수는 17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타디그 그레이드의 생존 메커니즘 연구는 인류의 생존 연장, 태양계를 비롯한 우주 탐험 등 미래에 달성할 목표에 다가가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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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간 동물들
2008년 러시아 모스크바 군사연구소에 개 한 마리가 높이 2m 로켓 위에 올라서서 하늘을 응시하는 동상이 섰다.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보다 4년 먼저 우주와 만난 개 '라이카'를 기리는 동상이다. 주인을 잃고 거리를 떠돌던 이 시베리안 허스키는 1957년 러시아 인공위성 스푸트닉 2호에 태워졌다. 라이카는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지만 무중력상태라도 온도와 습도만 조절하면 생명체가 견딜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인간의 안전한 우주여행 조건을 찾아내기 위한 동물의 '나 홀로' 우주탐사는 계속됐다. 1960년 개 '벨카'와 '스트렐카'는 스푸트닉 5호에 올라 지구 궤도를 열일곱 바퀴 돌고 귀환했다. 스트렐카는 나중에 새끼를 여섯 마리 낳을 만큼 건강했다. 흐루쇼프 서기장은 그중 한 마리를 보란듯 케네디 대통령에게 보냈다. 케네디는 "제 어미보다 극적인 비행은 아니지만 강아지가 소련에서 미국까지 긴 비행을 잘 견뎠다"는 답장을 보냈다.
▶미국도 이듬해 개보다 인간에 더 가까운 침팬지 '햄'을 우주로 실어 보냈다. 우주개발 초기 동물의 우주비행은 동물학대 논란을 낳기도 했다. 동물들은 유인 우주선 시대가 열리고서야 인간과 동행하게 됐다. 1970년대엔 설치류 기니피그, 뇌파 측정장치를 붙인 고양이에 거미·달팽이·잉어·송사리가 우주로 나갔다. 우주에서 생물체의 뇌와 신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밀하게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아시아에선 90년대부터 중국과 일본이 동물 실험을 통해 우주인의 생존력 강화와 식품 연구에 나섰다. 2008년 최초의 한국인 우주인 이소연은 중력 반응과 노화유전자를 실험하기 위해 초파리 1000마리를 가져갔다. 2003년 컬럼비아호에는 거미·쥐·누에가 7명의 우주인과 함께 탔다. 컬럼비아호는 귀환 길에 폭발했지만 그전에 동물실험 결과가 지구로 전송돼 헛된 희생은 아니었다.
▶며칠 전 발사된 우주왕복선 인데버호에 타디그레이드라는 1.5㎜ 크기의 낯선 생명체가 동승했다. 5억3000만년 전 캄브리아기에 출현한 이래 영하 273도에도 생존하는 독한 동물이다. 우주라는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는지 관찰해 인류 생존 연장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으려는 것이라고 한다. 눈에도 잘 띄지 않는 미세 동물 타디그레이드가 과학사(史)에 남을 큰일을 해내길 기대한다.
-조선일보, 2011/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