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히 보이는 파멸의 길로 왜?… 심리학으로 본 도박 중독
1. 이젠 이길 때 됐다…
동전 던지기 확률은 50:50 앞면만 계속 나왔을 경우 "뒷면 나올 차례다" 착각
2. 運을 통제할 수 있다…
로또 번호 직접 고른 사람 기계에 맡겼을 때보다 당첨에 대한 기대 높아
3. 거의 딸 뻔했다…
777이 늘어서야 대박인데 세번째 7이 걸치고 끝나면 "승리가 눈앞" 함정에 빠져
'하우스(도박장)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건 도박꾼들이 몸으로 아는 사실이다. 이른바 '갬블러즈 루인(gambler's ruin)' 원리다. '가진 돈이 유한한 도박자가 상대적으로 무한대의 자금을 가진 하우스와 도박을 계속하면 빈털터리가 되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수학적으로 증명가능한 원리'(포스텍 박형주 교수)이다. 갬블러즈 루인은 도박자와 하우스의 승률이 50:50인 경우에도 일어난다. 베팅을 멈추지 못하는 도박꾼의 속성 때문이다.
현실에선 가장 승률이 높은 도박게임(블랙잭)조차 확률은 50% 미만. 결국 도박의 기댓값(어떤 행위를 할 때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의 평균값)은 '마이너스(-)'인 것이다. 하면 할수록 손해이고 결국엔 빚쟁이로 전락하게 된다는 의미. 그런데도 가수 신정환씨처럼 뻔히 보이는 파멸의 길로 걸어 들어가는 도박꾼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도박중독 현상에 대한 심리학의 설명 중 하나는 '도박꾼의 오류(gambler's fallacy)'이다. 앞선 베팅의 결과가 후속 베팅에 영향을 미친다는 착각을 말한다. 예컨대 동전 던지기를 할 때 먼젓번에 뭐가 나오든 뒷면이 나올 확률은 항상 2분의 1. 그런데도 사람들은 앞면만 계속 나온 경우 뒷면이 나올 확률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룰렛 게임자를 상대로 한 실험에서 앞선 베팅에서 빨간 공이 나오자 도박자의 75%는 다음 베팅 때 블랙에 걸었다. 도박꾼의 오류에 빠지면, 패배가 연속될수록 '이제는 이길 때가 됐다'는 기대가 강해져 베팅을 계속하게 된다.
도박꾼의 오류는 도박장 직원이나 기계가 아닌 도박자 자신이 베팅을 하는 경우 더욱 강화된다. 바로 '통제의 환상(illusion of the control)'이다. 로또 복권을 살 때 자신이 직접 번호를 고른 사람들은 기계에 숫자조합을 맡기는 사람들에 비해 당첨에 대한 기대가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한 심리학자는 이들 두 그룹을 상대로 '그 복권을 팔라'고 요구하는 실험을 했다. 번호를 직접 선택한 그룹은 기계에 번호를 맡긴 그룹보다 4배 이상 비싼 가격을 불렀고 심지어 당첨확률이 높은 다른 종류의 복권과 바꿔준다는 제안마저 거절했다.
뭐니뭐니해도 도박중독을 부르는 최고의 심리적 함정은 '니어미스 효과(near-miss effect)'. '7' 3개가 나란히 늘어서면 돈이 쏟아지는 슬롯머신 게임. '7' 2개가 늘어선 뒤 3번째 슬롯에서 '7'이 4분의 1쯤 걸치고 말았다면? 단지 '돈을 잃었다'는 뜻이지만, 도박자들은 '거의 딸 뻔했다'고 해석한다. 상당한 돈을 잃었을 때 나타나는 니어미스 신호는 '지금까진 잃었지만 이제 승리가 눈앞이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2006년 한국 사회를 온통 도박장으로 만들었던 '바다이야기'도 대박이 다가왔음을 암시하는 그림을 화면에 보여주는 '니어미스'로 도박꾼들의 주머니를 거덜냈다.
정상적인 사람들도 때로는 같은 오류에 빠진다. 하지만 도박중독자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런 심리학적 관점은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떠오른 것이 뇌신경생리학적인 관점이다. 도박중독꾼의 뇌와 정상 사람의 뇌의 차이를 비교·분석하자는 것이다. 뇌 속 호르몬이나 특정한 뇌 부위의 기능 차이가 도박중독과 정상을 가른다는 가설이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뇌과학자 캐서린 윈스탠리 교수는 2009년 4개의 사탕 배출구가 있는 장치에 쥐를 넣었다. 쥐가 구멍에 주둥이를 들이밀면 때로는 사탕이 나오고 때로는 페널티(penalty)가 주어진다. 페널티란, 기계가 작동을 멈춰 아무리 주둥이를 들이밀어도 사탕을 얻을 수 없게 되는 상황.
어떤 구멍은 사탕은 적게 나오지만 대신 페널티 시간이 짧다. 어떤 구멍은 한 번에 나오는 사탕 숫자는 많지만 대신 긴 시간 입맛을 다셔야 한다. 사탕은 적게 나오지만 페널티가 짧은 구멍을 집중공략,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사탕을 먹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실험 대상 32마리의 쥐들은 몇 번 시행착오를 겪은 뒤 가장 많은 사탕을 먹을 수 있는 선택을 했다.
연구팀은 이번엔 쥐들에게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분비를 조절하는 약을 투여했다. 두 물질은 뇌에서 중독과 탐닉을 조절하는 물질이다. 두 물질의 분비가 억제된 쥐들은 처음과 달리 충동적인 선택을 했다. 한 번에 사탕이 많이 나오는 구멍을 공략하고, 긴 시간 빈손이 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이런 모습은 도파민의 균형이 깨진 일부 뇌질환자들에게도 곧잘 나타난다. 윈스탠리 교수는 "이번 동물실험은 도박중독의 치료 가능성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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