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자기관리(리더십)

오바마 '침묵의 연설'

하마사 2011. 1. 17. 10:29

 

1832년 스물여섯 살 베니토 후아레스가 멕시코 주의회 연단에 섰다. 키 160㎝에 볼품없는 이 원주민 출신 풋내기 의원에게 누구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후아레스는 아무 말 않고 서 있기만 했다. 의원들이 하나 둘 연단에 집중했고 드디어 장내가 조용해졌다. "자유를 달라. 존엄을 달라. 인권을 달라." 후아레스가 짤막하게 외쳤다. 그는 침묵으로 정치권의 첫 주목을 끈 지 30년 만에 멕시코 첫 직선 대통령이 됐다.

▶"수렵민족은 땅거미가 지기 전에 마을로 돌아가야 합니다." 가야노 시게루(萱野茂)참의원은 1998년 의사당을 떠나면서 이 한마디에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담았다. 홋카이도 원주민 아이누족 중에 첫 의원이었던 그가 여생을 보낼 곳은 고향이라는 뜻이었다. 그의 말이 지금도 일본 정치인 은퇴사 중에 백미로 꼽히는 것은 말이 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가야노는 아이누족 언어와 문화를 되살리는 데 헌신하다 5년 전 세상을 떴다.

▶프레젠테이션의 귀재로 불리는 스티브 잡스는 가끔씩 슬라이드를 텅 비워 버린다. 말도 잠시 끊는다. 그 순간 청중은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신경을 곤두세운다. 연설 전문가들은 청중을 긴장시키는 네 가지로 눈맞춤, 질문, 다가서기와 함께 침묵을 꼽는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청중 앞에서 한동안 침묵하다 연설을 시작하는 방법을 애용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주 애리조나 총기 난사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연설을 하다 51초 동안 말을 잃었다. 총탄에 숨진 아홉 살 소녀 얘기를 꺼내면서였다. 오바마는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올려보며 깊은숨을 내쉬다 감정을 겨우 추스른 뒤 이를 깨물고 연설을 이어갔다. 그 침묵의 51초가 흐르는 사이 미국민은 딸을 잃은 부모의 심정으로 하나가 됐다. 증오와 폭력에 맞서자고 다짐했다.

▶오바마를 앞장서 비판해 온 폭스뉴스 진행자 글렌 벡은 "오바마 연설 중 최고"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재임 2년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다"고 썼다. 오바마는 매끄러운 말솜씨로 사람들을 휘어잡아 대통령이 됐지만 사람들은 그 매끄러움에 식상해 가고 있었다. 위대한 작곡가는 쉼표의 힘을 알듯 위대한 연설가는 침묵의 힘을 안다. 때로 사람들은 말보다 침묵을 더 신뢰하고 침묵에 더 공감한다. 말보다 침묵이 진실에 훨씬 가까이 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