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민족은 땅거미가 지기 전에 마을로 돌아가야 합니다." 가야노 시게루(萱野茂)참의원은 1998년 의사당을 떠나면서 이 한마디에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담았다. 홋카이도 원주민 아이누족 중에 첫 의원이었던 그가 여생을 보낼 곳은 고향이라는 뜻이었다. 그의 말이 지금도 일본 정치인 은퇴사 중에 백미로 꼽히는 것은 말이 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가야노는 아이누족 언어와 문화를 되살리는 데 헌신하다 5년 전 세상을 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주 애리조나 총기 난사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연설을 하다 51초 동안 말을 잃었다. 총탄에 숨진 아홉 살 소녀 얘기를 꺼내면서였다. 오바마는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올려보며 깊은숨을 내쉬다 감정을 겨우 추스른 뒤 이를 깨물고 연설을 이어갔다. 그 침묵의 51초가 흐르는 사이 미국민은 딸을 잃은 부모의 심정으로 하나가 됐다. 증오와 폭력에 맞서자고 다짐했다.
▶오바마를 앞장서 비판해 온 폭스뉴스 진행자 글렌 벡은 "오바마 연설 중 최고"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재임 2년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다"고 썼다. 오바마는 매끄러운 말솜씨로 사람들을 휘어잡아 대통령이 됐지만 사람들은 그 매끄러움에 식상해 가고 있었다. 위대한 작곡가는 쉼표의 힘을 알듯 위대한 연설가는 침묵의 힘을 안다. 때로 사람들은 말보다 침묵을 더 신뢰하고 침묵에 더 공감한다. 말보다 침묵이 진실에 훨씬 가까이 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