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자기관리(리더십)

지도자論

하마사 2010. 9. 20. 06:32

지도자 인물難은 공직맡을 훈련 소홀한 탓
병역기피, 재산늘리기, 탈세, 위장전입 멀리해야
그것이 지도자되기 위한 자기 관리이고 훈련

 

청문회 등을 통해 들춰진 지도층 인사들의 문제를 접하면서 우리는 심각한 인물난(人物難)의 시대를 절감하게 된다. 나랏일을 맡을 주요 공직자들의 자리는 덧셈의 방식으로가 아닌 뺄셈의 방식으로 메워지고 있다. 그럴수록 고위공직자 또는 지도자들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는 낮아지고 있고 국민들은 우리 지도층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결국 '지도자'의 평가절하와 함께 나라의 리더십 위기까지 몰고 올 수 있다. 나라는 지도자들이 이끄는 것이다. 출중한 지도자가 있었던 곳에는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었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말들이 우스개로 오가고 있다. 얼핏 평등한 사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면 '배가 산으로 올라갈' 수도 있는 세상이 된다.

지도자는 훈련되고 길러져야 한다. 흔히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가 공평하고 좋은 세상인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그 '용'이 어디서 나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공부했고 훈련받았으며, 어떤 자기관리의 과정을 거쳐 '용'이 됐느냐는 데 있다.

지난 세월, 우리는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많은 것을 생략하며 중요한 것들을 건너뛰며 달려왔다. 독립과 건국의 와중에서 독립투사들을, 산업화의 길목에서 효능적인 권위주의자들을, 그리고 민주화의 터를 닦으며 민주인사들을 '지도자'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불가피했지만, 그 상황에서는 필연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속도보다 내실을 기하며 이 나라를 이끌어 갈 그런 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갑작스럽게 나타나 권력을 장악하는, 또는 무엇에 대한 반사적 효과로 득을 보는 뺄셈식의 '용'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공인(公人)으로서의 자질을 몸에 익히는 훈련을 쌓은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이미 여러 차례 청문회 등에서 나타난 사례들을 보면 자신들이 오늘날 공직을 맡을 훈련을 소홀히 했음을 알 수 있다. 지도자로 입신하고자 하는 사람은 일찌감치 병역기피나 위장전입, 재산 불리기나 탈세 등의 문제를 의식했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제 공직자의 삶, 지도층의 길이 단순히 학업 성적이 좋다고 열리는 것이 아니며, 기회주의, 한탕주의, 재산 불리기 등과 거리를 멀리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고 있다. 그것이 곧 지도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고 훈련이고 관리(管理)이고 준비다. 그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자세이고 정신이다.

솔직히 말해 과거 우리가 부정선거, 쿠데타 등 정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권력에 접근하는 사태에 익숙해 살다 보니 그런 몸가짐, 가족의 처신 등을 생각할 이유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권력에 부당하게 접근하고 실력자에게 아부하면서 쉽게 지도층의 대열에 오를 수 있었기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을 훈련시키는 일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국회가 하고 있는 청문의 항목, 특히 근자에 청와대가 내놓은 200여 항목의 질문을 보면 지금의 여·야 지도층 중에 그것을 무난히 통과할 공직자 또는 공직 지망자가 몇이나 되겠느냐는 것이 일반 국민들의 냉소적 인식이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단순히 공정-공평 사회의 필요충분조건인 양 말하는 것 자체가 포퓰리즘적이다. '패자부활전'은 적어도 공직사회나 지도층 사회에서는 통용될 수 없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자녀들을 군대에 보내고 대학교육을 시키려고 하는 노력의 근저에는 자녀들이 세상에 나아가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도록 기본소양, 자질을 기르기 위한 것임을 이해할 때 거기에도 지도자 교육이 한몫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지도자의 최고봉인 '대통령' 역시 훈련받고 준비된 사람이 맡아야 한다. 그래서 일상에서는 용인될 수 있지만 지도자의 위치에서는 한 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엄격함이 지도자의 덕목이고 책무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 전 어느 총리후보자를 지명하면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뜻의 언급을 했을 때 자신의 성공 스토리도 그 범주에 넣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그 지명은 실패했다. 그것은 '개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용'이 되기 위한 노력과 내공과 자기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용'은 개천에서도, 강에서도, 호수에서도 나올 수 있다. 평등·평준화가 지배적인 덕목인 사회에서는 훌륭한 지도자가 잉태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치다.

 

-조선일보 김대중칼럼, 201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