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본질/봉사(섬김)

이들과 함께 있으면 저도 깨끗해집니다.

하마사 2010. 6. 25. 06:07

장애인 선교 '한국밀알선교단' 단장 이민우 목사
장애인 차량 봉사로 첫 인연… 대기업 임원직 버리고 단장 맡아
"사회 리더로 키우는 게 꿈… 세상 모든 '턱'도 없어졌으면"

"제가요, 우리 작업장에 오는 아줌마 중에요, 맨날 우는 분이 계셔서요, 하나님 믿으시라고 했어요. 항상 기뻐하라고, 범사에 감사하라고요. 그러면 하나님이 고쳐주실 거라고 했어요. 그 아줌마가 우리 교회 나와요."

23일 오전 서울 수서동 한국밀알선교단의 '하늘에 심은 꽃' 카페. 기자가 선교단장 이민우(59) 목사와 대화를 나누던 중 곁에 앉은 청년이 불쑥 말을 꺼냈다. 완벽히 조리 있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그가 한 아주머니를 전도했다는 내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청년은 몇 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한 달 동안 식물인간으로 지낸 후 지적 장애인이 됐다. 밀알선교단은 이처럼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단체다. 지난 2007년부터 단장을 맡고 있는 이 목사는 "저렇게 스스로 '나는 하나님이 창조한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당당하게 남을 전도할 수 있는 사람을 기르는 게 우리 선교단의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밀알선교단 단장 이민우 목사(왼쪽 서 있는 사람)가 선교단이 운영하는 서울 수서동‘하늘에 심은 꽃’카페에서 장애인, 봉사자 등과 함께 웃고 있다. /김한수 기자

"이 웬수들아"라고 농담하며 장애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면서 밀알선교단을 이끌어가는 이 목사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대기업 고위 간부였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도 따고 30년간 대기업에서 일한 그는 2007년 1월 밀알선교단 제5대 단장을 맡으면서 직장과 주택(경기도 용인의 59평짜리 아파트)까지 내려놓았다. 그뿐 아니라 3년간 신학공부를 마치고 지난 4월 장애인주간에 목사 안수도 받았다.

무엇이 그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였을까. 그는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밀알선교단장을 맡게 되기까지 신앙의 역정을 정리한 책, '나는 너를 믿는다'(가이드포스트)를 펴냈다.

이민우 목사가 밀알선교단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1년이었다. 그는 신혼 초 아내의 간청에 "까짓 것, 교회 한 번 나가주지!"라며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열성적인 신자가 됐다. 주일엔 특근도 사양하며 신앙생활을 하던 그는 어느 날 한 장애인 청년을 밀알선교단까지 자동차로 태워주는 차량봉사를 했다. "장애인이 그렇게 많이 모인 것도, 장애의 종류가 그렇게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고 했다. 그는 차츰 화·목요일 저녁 예배 등 선교단 활동을 도우며 이사로 참여했다. "장애인들은 영(靈)이 매우 깨끗하고 예민합니다. 이들과 함께 있으면 저도 깨끗하고 정직하고 진실되게 되는 걸 느낍니다."

2007년 1월 전임 단장이 안식년을 떠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단장을 맡게 됐다. 그는 "뻗대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끌려왔는데, 잘 온 것 같다"고 말한다. 장애인 예배를 인도하고 시각장애인 합창단인 '소리보기' 중창단을 이끌고 그들이 늘 편히 찾아와 쉴 수 있는 카페를 마련하면서 그는 장애인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의 휠체어를 시각장애인이 밀어주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런 일이 우화가 아닌 현실에서 일어나는 곳이 밀알선교단입니다."

이 목사는 장애인을 사회의 리더로 키우고 싶은 꿈이 있다. 그 자신의 고교(중앙고) 시절, 전교 꼴찌에서 1등까지 올라온 경험에서 만들어진 '하면 된다'는 신념도 바탕에 깔려있다. 그는 "장애인은 복지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들 스스로 리더가 되어 남을 도울 수 있는 날을 꿈꾼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요즘 기도 제목을 묻자 자기 저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여지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는 이사야서(書) 구절이었다. 그는 "장애인들이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어디든 다니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세상의 모든 턱을 없애고 골짜기를 메워주시길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