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자기관리(리더십)

윤증현 장관의 '무식' 자탄

하마사 2010. 4. 24. 10:16
이진석 경제부 정책팀장

"지식의 빈곤을 절실하게 느낀다.", "(지식이 모자라서) 가슴이 아프고 고통스럽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배움의 때를 놓친 분들이 하는 하소연이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 관료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요즘 털어놓는 말이다.

지난 19일 윤 장관은 23일부터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회의 출국에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G20 회의들에 참가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서 이런 말을 꺼냈다. 금리니 환율이니 하는 경제 이슈들보다 더 오래, 더 진지하게 말했다.

그는 "국제회의에 나갈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아는 게 없다는 걸 통탄한다"고 했다.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의장국이 됐지만, 경제 강국, 금융 강국들이 주도하는 회의 내용을 쫓아가기가 바쁘다는 말이었다.

그는 "회의 때마다 '내 밑천이 드러나더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정말로 지식의 빈곤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장관으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하기 힘든 말이었다. 평소 가라앉은 목소리는 이날따라 더 낮게 들렸다.

기자들을 둘러보면서 "젊은 여러분께 선배로서 경험을 말하는데, 젊은 시절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공부하라"고 말했다. "나중에 서러운 후회를 하지 말고 가능한 한 시간을 쪼개서 전문 분야의 공부를 많이 하라"고 충고했다.

윤 장관은 "우리 아시아인들이 세계의 진운(進運)에서 왜 뒤처졌겠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노력이 모자랐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정말로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을 마쳤다.

작년 9월, 올 11월 열릴 G20 정상회의를 서울로 유치한 뒤 우리는 "100년 전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이 100년 만에 세계의 중심이 됐다"고 떠들썩했다. 국격(國格)을 높일 계기라는 말도 무성하다. 하지만 윤 장관은 이날 '세계의 중심'이 되기에 우리 지식수준은 어림없다고, 너무나 모자란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007년 1월 공식 업무 첫날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전날 기자회견 도중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처형됐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후세인은 폭정을 휘두른 책임이 있다. 사형은 각국이 결정할 문제"라고 대답해 문제가 됐다. 인권에 기초해 사형에 반대하는 유엔의 기본 입장에서 벗어난 발언이라는 미국과 유럽 언론의 지적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사형제에 대한 국제적인 논의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몰라 일어난 실수였다. 서양 지식인들이 어떤 눈으로 반 총장을 보았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빈곤에서 벗어났으나 지식의 빈곤에서 벗어나기에는 길이 멀어 보인다. 세계사를 제대로 가르치는 고교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일 정도다. 국제회의 경험이 많은 한 사람은 "우리나라 외교관들의 인권·환경·역사·예술 등에 대한 지식은 서양 웬만한 고교생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우리나라 10세 이상 국민 가운데 하루 10분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은 10명 중의 1명 정도다. 만화책까지도 포함해 이렇다. 국내 주요 서점의 베스트셀러 집계에는 '5분이면~' '한눈에~' 등의 제목을 단 책들이 해마다 늘어간다. "지식이 모자라 가슴이 아팠다"는 윤 장관의 말을 오래 곱씹어봤으면 한다.

 

-조선일보, 201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