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400억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 원전사업을 수주하는 데엔 막판 정상외교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원전 설계·부품·건설·운용 전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더라면 정상외교도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원자력 1호기 가동 후 지금까지 방사능 물질 유출 같은 안전사고가 한 번도 없었다. 1년 중 원전 가동시간의 비율을 나타내는 원전 이용률도 작년 93.3%로 미국 89.9%, 프랑스 76.1%, 일본 59.2%보다 높다. 1㎾당 원전 건설비는 2300달러로 프랑스·일본 2900달러, 미국 3582달러보다 싸고, 1㎾h당 발전단가도 3.03센트로 프랑스 3.93센트, 일본 6.86센트, 미국 4.65센트보다 훨씬 싸다. 원전 건설기간은 52개월로 프랑스 60개월, 미국 57개월보다 짧다. 경제성과 안전성에서 경쟁국들을 압도한 것이다.
1971년 고리 1호기 착공 때만 해도 국내 업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직원 사택을 짓고 모래와 자갈을 나르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랬던 한국이 원전 기술을 자립하고, 한국형 원자로 개발과 수출의 꿈을 이루기까지는 수많은 과학자와 연구원, 기술자들의 피와 땀, 눈물이 있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설계부터 시험가동까지 모든 과정을 일괄수주한 고리 1·2호기 건설 때는 우리 기술자들이 중요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미국 기술자들 눈치를 살피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워야 했다. 원전 설계기술을 익히려고 미국 벡텔사로 연수 갔던 기술자들이 교육자료를 베껴 한국으로 보냈다는 이유로 쫓겨난 일도 있다. 선진국 기술장벽을 뚫기 위해 발로 뛰고 몸으로 때우면서 갖은 설움과 수모를 겪어야 했다.
우리나라는 고리 3·4호기 때부터 원자로, 증기발생기, 터빈과 발전기, 토목공사, 종합설계 등을 나눠서 발주하고 여기에 국내 업체들이 참여하게 하는 방식으로 하나하나 기술을 익혔다. 1987년 착공한 영광 3·4호기 때부터는 미국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E)과 공동개발한 한국형 표준형 원전을 통해 기술을 축적하고 자립도를 높여 나갔다. 지금은 원전 설계와 건설 전반에 걸쳐 기술자립도가 95%에 이른다. 미국 벡텔, 웨스팅하우스와 원전 설계·기술지원 계약을 맺고 오히려 기술을 가르칠 정도가 됐다.
남은 과제는 원전설계 핵심코드와 원자로 냉각재 펌프, 원전 제어계측장치 등 3대 핵심기술까지 모두 자립하는 것이다. 이들 기술은 난이도의 문제도 있지만 적정 수요를 확보하지 못하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개발을 미뤄온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제 국내 원전 수출의 길도 열린 만큼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일이 없도록 완전한 기술자립을 앞당길 필요가 있다.
-2009/12/29, 조선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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