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본질/봉사(섬김)

착한 일을 하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다

하마사 2009. 12. 11. 16:12
강인선·정치부 차장대우

박근혜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9월 사르코마르투스란 근육병에 걸려 보행이 어려운 한 여학생을 만나 격려를 해줬다고 한다. 이 여학생의 소원은 롤모델로 삼아 왔던 박 전 대표를 한번 만나보는 것이었다.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메이크어위시(Make-A-Wish)'재단은 이 여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박 전 대표와의 만남을 주선했다고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지난 8월 휴가 중 한국에 와서 암 투병 중인 여학생을 만났다. 외교관이 꿈인 이 여학생은 반 총장을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다. 메이크어위시재단의 요청을 받은 반 총장은 바쁜 일정을 쪼개 소원을 이뤄줬다.

메이크어위시재단은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시작됐다. 경찰관이 되고 싶어했던 일곱살 소년의 병세가 악화되자 동네 사람들이 소년에게 경찰 제복을 입히고 경찰차와 헬리콥터에 태워 경찰의 꿈을 이뤄줬다. 소년이 세상을 떠나자 동네 사람들은 "한 아이의 소원을 이뤄줄 수 있었는데 더 많은 어린이들의 꿈을 이뤄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메이크어위시재단의 출발이다.

이 재단은 그후 세계 각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자원봉사자들은 난치병을 앓는 아이들을 만나 소원이 무엇인지 들어본 후 그 소원을 이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짜냈다. 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아이에겐 교황을 만나보게 했고, 발레리나가 꿈인 아이를 무대에 세웠고,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위해선 백악관 문을 대신 두드렸다.

이 재단의 활동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은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고마웠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늘 마음뿐이다. '먹고살기 바빠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시간만 보낸다. 그럴 때 중요한 게 착한 일을 쉽게 할 수 있게 해주는 '인프라'다.

워싱턴에 살 땐 전화만 하면 자선단체의 트럭이 동네에 들러 기부용 옷과 가구를 가져갔다.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 가면 계산대 옆에 동전 기부용 함이 놓여 있었다. 자선단체들은 기부용지를 끈질기게 보냈다. 로펌에 근무하는 한 친구는 해마다 가을이 되면 연말에 회사에서 어떤 자선행사를 열지 고민했다.

가까이서 관찰해보니 선진국 사람들이 더 도덕심이 높고 교양이 있어서 기부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었다. 부담 없이 남을 도울 수 있는 네트워크가 촘촘히 짜여 있어서 조금만 노력해도 '착한 일'을 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도 큰 이유였다.

요즘 주변에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컴패션' 등의 단체를 통해 아프리카와 아시아 오지 어린이들을 돕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한달에 2만~3만원 정도로 한 아이의 삶의 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게 놀랍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자동이체로 후원금이 나가게 해둔 후 '후원'을 하는지에 대해 아무 실감이 없었는데, 얼마 후 날아온 아이의 사진과 소개서를 보곤 왠지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감격을 맛보았다는 친구도 있었다. 미혼인 후배 중에도 "제(가 후원하는) 아이가 얼마나 컸는지 보실래요?" 하면서 반대편 대륙에 사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는 경우도 많다.

언젠가, 돈 많이 벌면, 안정되면, 이 일만 끝나면 다른 사람도 돕고 자원봉사도 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언젠가는 쉽게 오지 않는다. 게다가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않았던 일이 어느 날 갑자기 결심한다고 해서 술술 될 리가 없다. 착한 일을 하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다.

 

-2009/12/11,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