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벨기에의 롬 하우번(Houben).
사고로 의식불명 벨기에人
특수 키보드로 의사소통
1983년 동양 무술에 심취해 있던 벨기에의 공대생 롬 하우번(Houben)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coma)'에 빠졌다. 사고 직후 심장마비를 일으켜 몇 분간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았다. 의사들은 그에게 "뇌사(腦死·뇌기능 정지)와 식물인간(호흡과 소화를 관장하는 '뇌간'의 기능만 살아 있는 상태)의 중간으로 의식이 전혀 없다"고 판정했다. 그는 이 판정으로 23년간 긴 잠을 자야 했다.
하지만 3년 전 벨기에 리에주대학의 스티븐 로레이(Laureys) 박사팀이 새로운 뇌 스캐닝 기술로 검사한 결과 그의 뇌는 정상적으로 활동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의료팀은 그에게 특수 키보드를 이용해 손가락으로 의사 표시를 할 수 있게 훈련을 시켰고 그는 놀라운 사실을 쏟아냈다.
그는 "사고 직후 내가 의식이 있는데도 아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 정말 절망스러웠다. 나는 내내 소리를 쳤지만 아무도 내 말을 듣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내게 말을 걸다 모든 희망을 포기하는 과정을 모두 목격했다. 이후 나는 내 안에 갇혀 명상에 잠겨야 했다"고 영국의 타임스에 말했다. 그는 "의료팀이 내게 의식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날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내가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회상했다.
하우번의 이야기는 로레이 박사가 최근 연구 논문 발표를 통해 자세히 소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실제로 로레이 박사팀이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44명에게 새 검사를 적용한 결과 40%인 18명의 환자가 의식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로레이 박사는 "한번 의식 불명 판정을 받으면 그 딱지를 떼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의학기술의 발달로 '깨어 있는 환자'를 새로 찾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로레이 박사 팀은 의식 불명 환자에게 '뇌사(혹은 식물인간)' 판정을 하기까지 최소한 10번 이상 검사를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고,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보도했다.
-조선일보, 2009/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