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史 바꾸는 기무라 아키노리씨
- ▲ 사과나무 밑의 기무라씨. 31년에 걸친 이 농부의 지독한 도전이 일본 농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 히로사키=선우정 특파원
일본이 세계를 석권한 제품은?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름을 말하면 도요타, 소니보다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제(日製)'가 있다.
우리가 '부사'라고 부르는, 정확히 '후지'라는 이름의 사과다. 일본 아오모리(靑森) 현(縣) 후지사키(藤崎) 마을에서 육성된 이 사과는 1962년 품종 등록과 함께 단숨에 세계를 석권했다. 도요타가 '카롤라' 모델로 북미시장을 개척하기 6년 전 일이다.
일본의 북단 이와키산(岩木山) 자락. 눈에 보이는 천지가 사과나무로 덮여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아오모리현이 만들어 내는 사과는 일본 전체 생산량의 절반. 도요타시가 일본 제조업의 성지라면, 이와키산은 농업의 성지다.
농부 기무라 아키노리(木村秋則)는 이 산자락에서 37년째 사과를 키우고 있다. 환갑이지만 희수 노인보다 늙어보인다. 카바레 호객꾼 시절 야쿠자 주먹에 맞아 빠져 버린 이를 방치한 탓이다. 자신이 만든 사과조차 베어 물지 못할 듯했다.
이 이 없는 농부의 사과 밭을 작년에만 6000여명이 찾았다. 수학여행 온 초등학생부터 한국 전라도 농부들까지. 그의 저서 〈사과가 가르쳐 준 것〉, 〈모든 것은 우주의 재배〉는 지금 일본 전국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다. 작년부터 베스트셀러였던 그의 분투기 〈기적의 사과〉는 지난달 한국에서도 번역·출판됐다.
기무라의 밭을 찾아 산자락을 1시간 헤맸다. 이런 곳을 왜 6000명이 찾을까? 천지가 사과 밭이지만 생태계가 회복된 '자연'은 그곳에만 있기 때문이다. 1978년부터 31년 동안 농약 한 방울, 비료 한 주먹도 뿌려 지지 않은 기적의 8800㎡. 도쿄 시로카네다이(白金臺) 레스토랑의 이구치 히사카즈(井口久和) 주방장은 말한다. "사과가 썩지 않아요. 생산자의 혼이 깃들어서 그런지…."(책 〈기적의 사과〉)
기무라는 '오타쿠(일본형 마니아)'다. 성공하든 말든, 목숨을 걸고 몰입하는 '장인(匠人)형 인간'을 말한다. 지금 이 늙은 오타쿠가 농약과 비료에 의존해온 현대 농업사를 바꾸려 하고 있다. 일본 제조업의 젊은 오타쿠들이 화석 연료에 의존한 현대 공업사를 바꾸고 있는 것처럼.
수확량 0, 돈벌이 0. 꽃 한 송이, 열매 한개 열리지 않는 밭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벌레 잡고, 식초 뿌리고, 나무와 대화하기. 쌀이 모자라면 죽을 먹고, 돈이 떨어지면 양말을 기워 신기. 죽으려고 밧줄 들고 올라간 산에서 아이디어 떠올리기. 이렇게 11년을 버틸 수 있다면 누구나 역사를 바꿀 수 있다.
농부 기무라 아키노리(木村秋則·60). 말꼬리가 긴 일본 최북단 쓰가루(津輕) 사투리의 억양은 한국 강원도 사투리를 꼭 닮았다. 히로사키(弘前)실업고 졸업. 경력도, 얼굴도 순박하지만, 그의 인생엔 '독기'가 흐른다.
"일본의 사과 역사는 120년이에요. 그동안 수많은 선대 농부가 무농약·무비료 재배에 도전했지요. 하지만 안 됐습니다. 4~5년 만에 포기했기 때문이에요. '4~5년을 했는데 안 됐으니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해요. 바보처럼 11년을 버텼어요. 그러니 나무가 불쌍해서 꽃을 피워주더라고요."
기무라씨와 사과나무 밑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사쿠라바 슈헤이(櫻庭周平)라는 중년 회계사가 불쑥 밭으로 들어와 이렇게 소리쳤다. "전 도쿄에서 회계사무소를 하는 사람입니다. 책을 읽고 놀라서 찾아왔어요. 사무소 동료는 당신이 천재랍니다." 도쿄에서 이와키산(岩木山) 자락까지 700㎞가 넘는다.
기무라씨는 "아! 아! 아!" 하는 특유의 웃음을 터뜨리면서 손을 저었다. "아니, 아니, 난 그냥 바보예요!"
'오타쿠'는 일이든, 취미든, 광적으로 지독하게 집착하는 일본형 마니아를 말한다. 바보 취급도, 정신병자 취급도 받는다. 동네에서 기무라씨는 '가마도케시(파산자)'라고 불렸다. 집을 말아먹을 인간이란 뜻이다. 하지만 일본은 경제 구성원들의 이런 집착을 동력으로 전진하는 거대한 오타쿠 사회다.
〈기적의 사과〉 저자 이시카와 다쿠지(石川拓治)는 농부 기무라의 경제사적 역할을 이렇게 정의한다. "1911년 꽃썩음병과 갈색무늬병이 창궐했을 때 농약이 없었다면 아오모리 사과는 사라졌을 것이다. 그해가 일본의 사과 역사에서 사상 처음 농약이 쓰인 해였다. 그 후 일본 사과의 비약적 성장은 농약이란 '절대 기반' 위에서 가능했다. 기무라는 아오모리 사과를 100년 전 환경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자연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보다 길다
―무농약·무비료 재배를 시작해 열매를 맺을 때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11년."
―놀라운 인내력이군요.
"자연의 사이클은 아주 길지요. 24시간이란 조급한 인간이 만든 것에 불과하니까. 밭이 달라지는 한 장면, 한 장면이 긴 드라마이지요. 흙 위 세상만 바라보면서, 지표만 바라보면서 6년을 지독하게 고생했지요."
〈기적의 사과〉에서, 그는 농약을 끊은 직후의 풍경을 이렇게 말했다. "벌레들이 어린 새잎이 붙은 가지 끝까지 바글바글 몰려들어서는 만원 전철처럼 밀치락달치락 야단법석을 떨지. 벌레 때문에 사과 가지가 휠 정도라니까." 하루에 나무 한 그루에서 잡은 벌레는 비닐봉지 세개 분량.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부터 밤까지 잡았다고 했다.
―밭이 어떻게 변했나요?
"반점낙엽병으로 첫해 8월 말에 잎이 95% 떨어졌지요. 잎이 떨어지자 가을에 꽃이 피는 겁니다. 미친 꽃이지요. 이듬해엔 8800㎡의 밭에서 꽃 한 송이 피지 않았어요." 물론 나무에 꽃이 피지 않았다는 건 열매를 맺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농약과 비료를 중단한 이듬해부터 수확량 0. 건강보험료, 아이들 교육비도 못 냈다. 지우개를 3개로 잘라 아이들에게 나눠줄 정도였다. 카바레 아르바이트로 이가 부러진 것도 이때의 가난 때문이었다.
사과나무 밑에 함께 앉아 있던 사쿠라바씨가 말했다. "조금 전 부인을 만났어요. '참 고생하셨습니다' 하고 위로했는데 대답이 없으셨어요."
기무라씨의 회고다. "4∼5년 지나니까 친구가 그래요. '가족 좀 생각하라'고. 하지만 마음속에선 반대로 얘기해요. '가족이 중요하니까 끝까지 해'라고. 무농약·무비료를 시작한 것은 농약에 민감한 아내 때문이었어요. 아내가 농약에 약하니까 아이도 약하겠지요. 아이에게 주지 못하는 사과를 만들어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을 읽으니, 죽을 생각도 하셨더군요.
"밧줄 세 가닥을 엮어서 산으로 갔어요. 탈출구가 없을 때였습니다.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해도 나무는 죽어가고. 그런데 죽는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니 전에 안 보이던 산(山)이 보여요. 같은 벌레가 있고, 같은 햇살을 받지만, 다른 것은 흙이었지요. 풀이 우거진 포근하고 향기로운 흙이었습니다. 왜 이걸 몰랐을까…."
- ▲ 기무라씨가 종이 속의 사과를 만지고 있다. 기무라씨 다큐멘터리를 만든 시바타 슈헤이 NHK 감독은 “‘나무 열매’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 야생의 맛”이라고 했다. 추첨을 통해 운좋은 사람만 먹을 수 있다. / 히로사키=선우정 특파원
■병을 도려내는 나무
사과밭은 숲처럼 상쾌했다. 농약 냄새도, 비료 냄새도 없었다. 날아든 한 마리 곤충은 하늘소. 기무라씨는 구멍이 숭숭 뚫린 사과 잎을 따 보이며 물었다.
"무슨 구멍이라고 생각하세요?"
"벌레 먹은 흔적 아닌가요?"
"이 밭에는 벌레가 없어요. 6년 전부터 사라졌어요. 농약이 없으니까 벌레도 없는 거예요. 농약을 뿌리니까 벌레가 있지요. 구멍은 사과나무가 검은별무늬병에 걸린 환부(患部)를 떨어뜨린 거예요. 자기 치료를 한 것이지요. 처음엔 못 믿겠다던 스기야마 선생(杉山修一·히로사키대 농학생명과학부 교수)이 직접 균을 이식해 확인했어요."
―나무에 저항력이 생겼군요.
"병은 늘 있어요. 차이는 농약을 뿌린 나무는 또 농약에 의존하지만, 안 뿌린 나무는 큰 데미지를 입지 않고 스스로 치료하는 겁니다. 나무의 균들끼리 '식물연쇄(植物連鎖·먹는 생물과 먹히는 생물의 연쇄적 관계)'를 일으키는 것 같아요. 생태계가 복원됐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농약을 뿌린 밭에선?
"심하면 잎이 떨어집니다."
―등산을 하면, 건강한 산에는 벌레가 있어도 많지 않다는 걸 느끼죠.
"이 밭에 산을 재현한 것입니다. 산에는 농약을 살포하지 않지요. 잡초를 자르지도 않아요. 그래도 벌레는 적고 나무는 건강해요. 밭에서도 잡초를 자르지 않았어요. 그리고 주위에 콩을 심었어요."
■나무만 보지 말고 흙을 보라
―무엇이 달라지나요.
"흙이 달라져요. 콩에 뿌리혹박테리아가 생기잖아요. 이게 공기와 흙의 질소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해요. 흙이 달라지면 풀도 달라져요. 지금까지 7번 달라졌어요. 처음엔 잎이 좁은 볏과(科)가 많았어요. 점점 잎이 넓은 잡초가 들어와 공존하게 됐지요."
―밭을 관찰하시는군요.
"현대 농업은 관찰하는 능력을 잃었어요. 흙 위만 생각하지요. '수확으로 땅에서 이만큼 양분이 사라졌으니 이만큼 비료로 보충해야지.' 이런 수학적 계산만 있지요. 인간은 자기 몸에 대해서도 그래요. 뭔가 부족한 듯하면 영양제를 찾지요. 양분을 주면 박테리아는 활동을 쉽니다. 주지 않아야 활동하지요. 그들이 활동해야 흙이 만들어집니다. 인간의 장(臟)도 마찬가지예요. 나무만 보지 말고 흙을 봐야지요."
―풀이 흙을 어떻게 바꾸나요?
"작년 5월에 독일 유기농 농가의 초청을 받았어요. 흙을 좀 파보자고 했지요. 지표 10㎝ 밑에서 이미 온도가 8도나 내려갔어요. 차가웠어요. '여러분이 수확하는 감자가 그래서 작다'고 했어요(유기농이기 때문에 감자가 작은 것이 아니라는 뜻). 산은 흙의 온도 변화가 크지 않아요. 지금 30도가 넘는 땡볕이지만, 우리 밭을 파보면 22∼24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냥 따뜻한 상태가 계속 유지되지요. 미생물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사과나무와 인간의 교류
―대신 산의 열매는 맛이 없습니다.
"무조건 자연 그대로 놔두면 되는 것은 아니지요. 잡초를 놓아두니 밭에서도 설익은 사과를 얻었어요. 그래서 이듬해 9월에 한 번만 밭 절반의 풀을 잘랐지요. 그랬더니 자른 곳의 사과만 익었어요. 사과나무에게 가을이 왔다는 사실을 인간이 알려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흙의 온도가 변하지 않으니 사과나무는 계절의 변화를 몰랐던 것이 아닐까. 맛있는 사과를 얻으려면 역시 인간의 작용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사과나무와 대화를 했다지요.
"농약을 주고, 비료를 주면 멀쩡한 나무들인데, 내 욕심 탓에 점점 죽어갔어요. 그때부터 한 그루, 한 그루에게 사과했지요. '고생을 시켜서 미안하다'고. '제발 죽지 말아달라'고."
책 〈기적의 사과〉에 뒷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기무라씨가 모든 사과나무에 말을 건넨 건 아니다. (미친 사람처럼 나무에 중얼거리는) 모습을 이웃에 보이고 싶지 않아 도로변에 있는 나무에겐 말을 건네지 않았다. 기무라씨는 뼈아프게 후회한다. 도로변의 나무가 한 그루도 안 남고 도미노처럼 쓰러졌기 때문이다.'
■추첨을 해야 먹을 수 있는 사과
―기무라씨의 사과는 어떻게 맛볼 수 있나요?
"응모하면 추첨을 해서 배송해요. 작년 수확한 것을 2000여명에게 전했지요. 응모한 사람들은 2배 이상이었지만. 그래서 상자를 좀 작게 만들까 하고 아내와 상의하고 있습니다. 상자 수가 늘어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잖아요."
―비싸지요?
"한 상자에 16∼20개 정도 들어가요. 상자당 4200엔(5만5000원)에 배송합니다. 평균 상자당 500엔 정도 비싸지 않을까요."
―더 비싸도 잘 팔릴 텐데요.
"돈을 벌려고 시작한 일은 아니니까. 앞으로 더 많은 농가가 자연재배에 성공하면 원하는 사람들이 더 싼값에 먹을 수 있겠지요."
―수확량은?
"1987년 처음으로 꽃 7개를 피웠죠. 5개는 벌레가 먹고, 인간의 몫으로 열매 2개를 얻었습니다. 작년엔 이 밭에서만 1000상자(기무라씨 밭은 분산돼 있다) 수확했어요. 농약을 사용하는 밭의 70% 정도 수확했습니다. 2년, 3년 뒤엔 같아질 듯해요. 탁구공만 하던 크기도 지금은 차이가 없어요. 커지면 상자에 들어가는 사과가 적어지니까, 그것도 고민이네요. 손님들이 '수가 왜 적어졌어' 하고 불평할 테니까. 이상하죠? 아무것도 안 하는데, 계속 커지니."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다
―11년을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까요?
"다른 농부들이 실험하고 있어요. 홋카이도의 8000㎡ 사과 밭에선 작년에 열매가 12개 맺었습니다. 7년 만의 결실이지요. 시행착오를 줄여서 11년에서 7년으로 짧아졌습니다. 올해는 열매가 100배 이상 늘어날 거예요. 한국 농가에서도 막 나무를 심었지요. 일부러 척박한 흙을 골랐습니다. 나무 주위에 4년 동안 콩을 심으라고 했어요. 사람도, 나무도 흙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경험하라고. 7년 뒤 그 경험을 농가에 확산시키라고."
―모든 작물에 적용이 가능할까요?
"쌀, 옥수수, 야채, 파인애플, 망고도 가능했어요. 자연의 프로그램대로 흙을 만들면 됩니다."
―농약과 비료를 '악(惡)'이라고 보시나요?
"인간은 농약과 비료에 참 많은 신세를 졌어요. 고맙지요. 하지만 사용하지 않고도 같은 수확량, 같은 품질의 열매를 얻을 수 있다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뿐이지요."
2009/8/31,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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