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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장 소송' 대신 조정이 뜬다

하마사 2009. 7. 7. 06:21

당사자간 타협 원칙 변호사 필요없어 신속·저렴
'미니 대법원급' 조정위원들 분쟁 해결사로 맹활약

지난 5월 4일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15층에 있는 서울법원조정센터. 동서 사이인 A씨와 B씨가 이건웅(65) 조정위원 앞에 마주 앉았다.

손아래 동서인 A씨는 사업하던 처남에게 1억원을 꿔줬는데, B씨가 처남에게 1억6000만원을 빚졌으니 그 돈을 대신 받아야겠다는 것이 두 사람 간 분쟁의 내용. '돈을 달라', '못 준다' 3년 전부터 승강이를 하다가, 급기야 친자매 간인 A·B씨의 아내가 멱살잡이까지 벌이면서 형사고소에 민사소송까지 이어졌던 일가족 간의 '전쟁'은 이건웅 위원의 중재로 한방에 끝이 났다.

"B씨가 처남에게 받은 1억6000만원은 처남 회사의 대표로 있다가 구속되고 상여 등을 제대로 받지 못한 대가로 받은 것이니, A씨가 달라고 할 수 없다"는 이 위원의 친절한 법리 설명과, "동서 사이에 이해하고 양보하라"는 '충고' 때문이었다. 만약 계속해서 소송 불사로 나갔다면 '원수'가 될 뻔했던 이들은 형사고소를 취하하고, 그간의 변호사 비용을 B씨가 대주는 선에서 분쟁을 마무리했다.

최근 법원의 분쟁 해결 수단으로 조정(調停)이 떠오르고 있다.

조정은 정식 재판이 아니라, 당사자 간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적정선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사법절차로, 성립되면 확정 판결과 똑같은 효력을 지닌다.

과거에도 있었던 조정절차가 분쟁의 '해결사'로 부쩍 주목받게 된 것은 경력 15년차 이상의 법조인을 상근조정위원(임기 2년)으로 두는 '상설조정센터'가 지난 4월 13일 서울과 부산 법원에 설립되면서부터이다.

실제 지난 4월 조정센터 설립 이후 조정신청 건수와 조정을 통한 사건 해결비율은 부쩍 높아졌다. 서울의 경우 3월엔 92건이 접수돼 28%만 해결됐던 것이, 5월엔 132건이 접수돼 60% 이상 해결됐다.

이렇게 된 데는 해결사로 나선 상근조정위원들의 노련함이 힘이 됐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한다. 서울조정센터(위원 8명)에는 위원장인 박준서(69) 전 대법관을 위시해서, 역대 가장 성공한 특별검사로 평가받는 차정일 특검, 박영무·신명균 전 사법연수원장(고법원장급), 청와대 법무비서관 출신의 황덕남(여) 변호사, 이건웅 전 고법부장판사 등이 포진해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 '미니 대법원'이라는 소리를 듣는 라인업이다. 부산조정센터(위원 3명)는 '청빈 법관'의 대명사 격인 조무제(68) 전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았다.

이들은 일단 2년간 상근하면서 작게는 수십만원에서 수백억원을 넘는 민사 조정 사건을 다루고 있다. 최근엔 한화그룹이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를 상대로 "대우조선해양 지분인수 이행보증금을 돌려달라"며 낸 3200억원짜리 조정사건도 심리 중이다.

법원 관계자들이 꼽는 조정의 가장 큰 이점은 소송으로 갈 경우 몇 년이 걸릴 수 있는 사건을 몇 개월 안에 끝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준서 위원장은 "일단 조정사건이 접수되면 1개월 내로 첫 심리를 열고, 3개월 안에 해결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당사자 간 타협'이 원칙이기 때문에 간단한 사건은 변호사가 따로 필요 없고, 인지대도 소송(1억원짜리의 경우 40여만원)의 5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끝장을 볼 때까지 해보자는 식의 '삼세판' 문화가 지배하는 우리의 법정 소송 풍토는 조정이 추구하는 '대화와 타협' 문화 정착에 여전한 걸림돌이다.

미국에서는 민사분쟁의 90%가 당사자나 대리인(변호사) 간 협상과 조정으로 해결되고, 일본은 조정신청사건 비율이 정식재판의 절반 수준인데 비해, 한국은 조정신청사건이 재판사건의 1%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대법원 고위관계자는 "우리의 경우 사회적으로 '네편 내편' 하는 편 가르기가 심각하고, '승복문화'가 부족한 것이 그 원인 중 하나"라면서 "조정 확산을 통해 반드시 재판을 통해 상대방을 제압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바뀌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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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서 서울조정센터장

"나쁜 화해도 좋은 판결보다 더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 4월 서울조정센터장을 맡으면서 1999년 대법관 퇴임 이후 10년 만에 일선에 복귀한 박준서(69·고등고시 15회) 전 대법관은 6일 "조정을 활성화시켜서 우리 사회의 '떼법' 문화, 끝장 소송문화를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현역 시절 법원의 공식연구모임 중 하나인 민사실무연구회장을 지내는 등 법조계에서 민사소송 실무의 대가로 손꼽히는 그는 바람직한 분쟁 해결의 모델로 '3단계 해법'을 제시했다.

대법관 퇴임 이후 10년 만에 일선에 복귀한 박준서 서울조정센터장./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당사자 간 협상이 맨 먼저이고, 중재인을 통한 조율이 그다음, 그러고도 안 되면 최후 수단으로 재판을 통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가 바로 조정 절차를 통한 해결을 말하는 것인데, 한국의 경우 이를 건너뛰어 재판으로 직행하는 '모 아니면 도'식 소송 풍토 때문에 비용과 시간 낭비가 극심하다는 것이 박 전 대법관의 진단이다. 자연분만을 시도하다가 불가피하면 제왕절개를 하는 것인데, 무작정 제왕절개부터 하려 든다는 것이다.

"과거엔 신청인뿐만 아니라 법관 스스로도 조정을 통한 해결을 금기(禁忌)시 하는 풍토도 있었습니다. 무능한 판사라고 손가락질 받거나 불공정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 싫어서였죠. 하지만 분쟁해결에서 더 이상의 비효율과 낭비는 국력까지 소모하는 결과를 초래할 겁니다."

박 전 대법관은 "조정은 결렬되더라도 본격적인 소송에 앞서 사실 관계를 어느 정도 확정해준다는 측면에서, 즉 종합병원에 가기 전에 동네 개인병원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30년 경력의 베테랑 법조인들이 현직에 남아있기 어려운 현실에서, 법원 조정위원으로 적극 참여하면 재판의 질 향상과 법조계의 인력 활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9/7/7,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