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 겨울 희망편지] [8] 발레리나 최고의 순간에 금이 간 뼈…
외부 요인으로 빠진 절망
"끝났다" 생각하면 진짜 끝 포기 않고 기다리면 再起
제게는 발레가 전부이고, 그것을 다 빼앗길 것 같은 시련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런 시기를 저는 '블랙홀'이라고 부릅니다. 스티븐 호킹이 말한 그 블랙홀 말입니다. 그 어두운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 같은 공포 때문입니다. 최악의 블랙홀은 1999년 9월에 찾아왔습니다. 그 블랙홀은 결국 저를 무대에서 끌어내렸습니다.
운명은 얄궂지요. 그해 봄 저는 발레리나 최고의 영예인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여성 무용수상을 받았습니다. 그 영예를 안고 첫 해외 공연을 앞두고 있을 때 걷기도 힘들 정도의 통증이 찾아온 겁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이렇게 되도록 어떻게 참았는가. 다시는 무대에 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제 왼쪽 정강이뼈를 촬영한 사진이 앞에 있었습니다. 선명한 금이 보였습니다. 1995년 다쳤던 부위인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또 발레에 매진해야 할 시기에 쉰다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치료를 미룬 채 춤을 추다 병을 키운 것이지요.
시간은 아주 오래 걸렸습니다. 발레를 배운 뒤 1년 이상 쉰 것은 그때가 처음이고 아마도 마지막일 겁니다. 인내심이 없었다면 돌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외부적인 요인으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지만 완전히 주저앉히는 것은 자기 자신인 것 같습니다.
마침내 저는 2000년 11월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복귀했습니다. 첫 공연이 끝나고 관객의 박수를 받는 순간 저는 블랙홀을 빠져나왔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제 몸에서 제가 가장 믿는 게 어딘 줄 아세요? 저를 블랙홀로 몰아넣은 왼쪽 정강이뼈입니다. 뼈가 더 강해졌는지 다시는 깨질 수 없는 곳처럼 느낄 정도입니다. 다른 어떤 부분보다 튼튼하지요. 견디면 더 강해진다는 믿음을 준 정강이뼈입니다. 그 시련은 제게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로 남았습니다.
지금 제가 있는 독일을 비롯해 유럽도 경제가 안 좋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살게 마련이잖습니까. 시간이 약입니다. "포기하지 말자" "괜찮아질 것이다"라는 희망을 품고 있으면 블랙홀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제 경험으로는 그렇습니다. 1982년 중학교 때 유학을 간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에서 그랬고, 19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하고 적응하지 못해 울던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은 살게 마련이라고 저는 늘 말합니다. 발레와 삶은 다르지만 정신적인 측면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금 간 정강이뼈가 제게 알려준 작은 교훈을 이제 여러분께 드립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조선일보, 200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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