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일 기자 niet@chosun.com
입력 : 2008.04.18 22:34 / 수정 : 2008.04.19 07:40
- 병든 노숙자들을 맞을 때의 그 미소 그대로 '영등포 슈바이처'는 영정 속에서 인자한 표정으로 조문객을 맞고 있었다. "이젠 여러분께 부탁한다"는 듯이….
서울 신림동과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을 거치며 21년간 노숙자와 행려병자를 무료로 진료해온 요셉의원 선우경식(63·사진) 원장이 18일 오전 4시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별세했다. 빈소에는 수녀들의 기도가 끊이지 않았고, 조문객들은 고인의 빈자리를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노숙자 출신 안모(49)씨는 "알코올중독에다 싸움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던 내가 유일하게 진 사람이 선우 원장님"이라며 "아버지 같은 분을 잃었다"고 말했다. 선우 원장의 동생 명식씨는 "평생 사랑만을 실천하다 가셨다"고 말했다.
선우 원장은 서울고·가톨릭의대를 나와 미국유학을 마치고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내과 과장을 지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의 운명은 1983년 신림동 철거민촌 의료봉사를 계기로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안정된 미래를 접고 1987년 뜻을 같이하는 의료진들과 함께 서울 신림동에 행려병자 등을 위한 요셉의원을 설립했고, 1997년 영등포로 옮겨서까지 평생을 바쳤다. 그 동안 연인원 40여만명이 이 병원에서 육신의 고통을 덜었다.
선우 원장은 생전에 "처음부터 평생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3년만', 다시 '2년만' 하다가 여기까지 왔을 뿐"이라며 했다. - 그의 희생과 봉사에는 수많은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과 자원봉사자, 후원자들이 동행했다. 전직 외교관 이동진씨는 요셉의원을 돕기 위한 잡지 '착한 이웃'을 창간했고, 이중섭미술상 수상화가인 김경인씨는 동료화가들과 함께 '자선 전시회'를 수 차례 열기도 했다.
선우 원장은 본인을 챙기는 데는 서툴렀다. 한 해, 두 해 미루다 보니 결혼 시기는 지나버렸다. 돌아가신 부친이 1960년대에 지은 서울 길음동 낡은 단독주택에 그대로 살았으며, 장남임에도 노모를 모시는 생활비는 미국 사는 누님과 동생들의 신세를 졌다. 호암상(2003년), 국제로타리 창립 100주년 기념 특별 사회봉사상(2004년) 등 상금도 모두 요셉의원에 내놓았다.
건강도 그런 식으로 놓쳤다. "나중에"라면서 위 내시경 검사를 5년간 거르다가 2006년 10월 위암 진단을 받았다. 절제 수술에 이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컨디션이 좋아지면 반드시 요셉의원을 찾아 의료진과 봉사자를 격려했던 그는 결국 지난 15일 뇌출혈로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정진석 추기경은 "선우 원장님의 평생은 마치 살아있는 성자(聖者)와도 같았다"며 "그처럼 훌륭한 분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던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장례미사는 21일 오전 9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 김운회 주교, 김용태 신부 등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봉헌될 예정이다. (02)590-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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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빈 환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한국의 슈바이처’ 선우경식 원장이 별세했다. 2008년 4월 18일 오후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선우 원장의 빈소에서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대표이사 김운회 주교가 조문을 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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