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란 유명한 말을 남긴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보고 싶은 책도 사 볼 수 없었다.
책을 좋아했던 그는 좋은 책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말만 들으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찾아가 책을 빌려서 읽었다. 어느날 링컨은 서점에서 워싱턴전을 빌려 와 읽다가 머리맡에 놓고 잤는데, 밤중에 폭우가 내려 통나무 틈으로 빗물이새어 책이 흠뻑 젖어 버렸다. 며칠 뒤 링컨은 서점에 찾아가 책이 젖은 경위를 설명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책을 버린대가로 3일간 일을 시켜 달라고 했다. 사과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링컨이었던 것이다.
책 주인은 링컨의 말에 감동하여 그 책을 링컨에게 되돌려주었다.
링컨은 그 책을 몇번이고 읽으면서 자기도 워싱턴과 같은 훌륭한 정치가가 되겠다고 결심하였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그것은 링컨이 시골 조그마한 가게의 점원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저녁, 그날 판 물건값을 계산하는데 이상하게도 10센트의 돈이 남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왜 10센트가 남지?'
거스름돈을 잘못 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한참 동안 생각한 끝에 앤디 할머니에게 덜 준 것임을 알아 냈다. 그는 그 길로 4킬로미터나 떨어진 할머니 댁으로 달려갔다. 할머니는 10센트 때문에 이 밤중에 달려왔느냐며 무척 고마워했다.
"10센트가 아니라 1센트라도 돌려드려야지요. 할머니돈인걸요."
링컨의 정직한 생활은 어른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었다. 아니 그의 출세는 정직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기 전, 주 의회 의원에 출마했을 때의일이다. 당에서는 선거 자금으로 200달러를 보내 왔다. 그러나 그 돈은 선거 운동 자금으로 200달러를 보내 왔다. 그러나 그 돈은 선거 운동 자금으로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선거 운동 참모들은 하나같이 불평들이었다. 그러나 링컨은 돈의 액수가 많고 적음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링컨은 그 선거에서 당당히 당선되었다. 그리고 선거 자금에서 남은 돈이라며 199달러러 25센트를 당으로 되돌려 보냈다. 겨우 75센트를 썼다는 얘기다. 많은 당원들은 매우 놀랐다. 그러나 링컨의 편지를 읽은 사람들은 한참이나 숙연해졌다.
"남은 선거 자금을 되돌려드립니다. 선거 연설회장 경비는 제 돈으로 지불했고, 이곳 저곳 돌아다닌 일은 말을 탔기 때문에 별 비용이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동네 어른 한분이 목 마르다고 하셔서 음료수를 대접했는데, 그 경비로 75센트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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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 될만 하군요 ^^
한 사업가에 대한 이야기
유일한 [ 柳一韓 , 1895~1971 ]
활동분야 : 경제
출생지 : 평양
주요수상 : 동탑산업훈장
평양 출생. 1904년 9세 때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미시간대학교를 졸업하고 스탠포드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였다. 학업을 마친 뒤 전자회사 사원으로 근무하다가 1922년 자립하여 숙주나물을 취급하는 라초이식품(주)을 설립하였다. 1926년 귀국하여 유한양행을 설립하였다.
1939년 한국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하였고, 만주 ·다롄 ·톈진등 동북아 일원에 시장을 개척하였다. 1962년 유한학원을 설립하고, 1969년 사업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조권순에게 사장직을 물려줌으로써 전문경영인 등장의 길을 여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유한양행(주) [ 柳韓洋行(株) , Yuhan Corporation ]
1926년 유일한(柳一韓)이 설립한 의약품·식품·생활용품 제조 및 판매업체.
업종 : 의약품·식품·생활용품 제조
설립자 : 유일한
설립일 : 1926년 6월 20일
상장일 : 1962년 11월 1일
소재지 : 서울 동작구 대방동 49-6
총자산 : 5656억 원(2001)
1926년 12월 서울특별시 종로2가에 의약품 수출입업 및 판매업으로 유한양행을 설립하여, 1936년 6월 법인체 주식회사로 변경하였다. 1941년 유한무역공사를 설립하고, 1962년 11월 기업공개를 통해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였다. 1970년 미국의 킴벌리클라크와 합작투자로 유한킴벌리(주)를 설립하고, 1977년 유한코락스(주)를 설립하였다. 1980년 KIST와 합작투자로 유한화학공업(주)을 설립, 1982년 미국의 쉐링과 합작투자로 유한에스피(주)와 유한스미스클라인, 유한사이나미드(주)를 설립, 1983년 벨기에의 얀센과 합작투자로 (주)한국얀센 등을 설립하였다.
1997년 한국케이블TV 드림시티방송에 출자하였으며, 1998년 6월 미국 킴벌리클라크와 유한킴벌리 지분 40% 중 10%의 양도계약을 체결하였다. 1999년 은탑산업훈장 수훈 및 IR 대상을 수상하였고, 2000년에는 위궤양치료 신약 YH1885를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에 기술이전하였고 한국능률협회 새천년 지식경영대상과 한국인재경영대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사업은 의약품·화학약품·공업약품·농예약품·수의약품 및 농축사료 첨가제 등의 제조 및 매매, 의약기구·위생재료 등의 제조 및 매매, 식료품·청량음료·보존음료수 및 기타 가공식품의 제조 및 매매, 부동산의 매매 및 임대업, 생활용품의 제조 및 매매, 통신판매업, 투자 및 수출입업 등이다.
자회사에 유한킴벌리(주)·유한크로락스(주)·유한화학공업(주)·한국와이어스(주)·(주)한국얀센·유한씨앤티(주)·쉐링푸라우코리아(주)·유한메티카(주)·G.T.B.L. 등이 있다.
2001년 12월 말 현재 총자산 5656억 원, 당기순이익 405억 원, 매출액 2590억 원이다. 본사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49-6번지에 있고, 경기도 군포시에 공장이 있다.
최근에 있었던 일입니다
美 택시기사, 35만弗짜리 다이아몬드 주인 찾아줘>
(시카고=연합뉴스) 이경원 통신원 = 승객이 놓고 내린 35만달러 짜리 다이아몬드를 주인에게 돌려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택시 기사의 이야기가 미 전역에서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18일(현지 시간) 미국 언론들은 아프가니스탄 이민자 출신으로 LA 에서 택시를 운전하고 있는 하이더 세디키(40)의 정직한 이야기를 보도했다. 지난 16일 LA 도심의 밀레니엄 빌트모어 호텔에서 중년 승객을 태우고 공항까지 운행했던 세디키는 세차를 하러 갔다가 택시 뒷좌석에서 별다른 특징이 없는 작은 갈색 주머니를 발견했다. 그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나중에 처리하기로 마음 먹고 주머니를 앞좌석에 놔둔 채 세차장 직원들이 차를 닦도록 했으며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동료 택시기사인 샤피 샬리지를 만날 때까지 주머니의 내용물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디키는 동료와 함께 평범한 주머니에서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 속에 조심스럽게 담겨져 있는 35만달러 상당의 다이아몬드들을 발견하고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세디키는 주머니 안에서 발견한 휴대폰 청구서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는데 주머니의 임자인 뉴욕의 보석상 에릭 오스타인은 자신이 보석 주머니를 택시에 놓고 내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가 세디키의 전화를 받고 소스라치게 놀란 것으로 알려졌다. 보석 주인과 LA 공항 경찰서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세디키는 곧 공항 경찰측에 다이아몬드를 맡겼으며 오스타인은 곧 LA로 와 경찰의 입회하에 보석을 확인한 뒤 세디키를 포옹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뉴욕에 돌아가는 대로 이에 대한 보상을 할 것을 약속했다.
아프가니스칸 출신 이민자로 두 자녀와 임신한 아내가 있는 세디키는 택시 기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식당을 차리는 꿈을 가지고 있으나 "다른 사람의 보석은 내가 벌어서 장만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 이라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1. [여론마당]지갑찾아준 한 공무원 따뜻한 인심 감동
[강원일보 2005-03-03 00:03] 지난달 20일 일요일은 우수가 지났는데도 매섭게 추웠다. 느낌으로는 한겨울보다 더 추운 것 같았다. 남춘천역에서 서울 가는 딸을 마중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집에 돌아왔는데 지갑이 없었다. 지갑을 찾으러 남춘천역으로 다시 가는 중에 전화가 왔다. 지갑을 주워 갖고 있다며 남춘천역이라고 했다. 역에서 만난 그 분은 인자한 얼굴의 남자였다. 내가 조그만 종이에 적어 지갑 속에 넣어둔 집 전화번호와 휴대전화 번호를 보고 연락했다며 지갑을 내밀었다. 내가 차를 세웠던 주차장에 펼쳐진 채 떨어져 있었다고 했다. 너무 고마웠다. 지갑 속에 든 30만원이 조금 넘는 돈도 돈이지만 그 지갑 자체도 내가 무척 아끼는 것이었다. 돌려받은 지갑에서 5만원을 빼서 식사나 한 번 하시라고 드렸는데 받지 않았다.둘이서 한참 승강이 하다가 지퍼가 살짝 열린 외투 속으로 접은 돈을 밀어 넣고 대합실 밖으로 도망가듯 뛰었다. 그런데 대합실 밖 골목까지 따라와서 괜찮다고 하며 굳이 돌려주는 것이었다. 너무 고마워서 마음의 표시를 하려고 했었는데 난감했다. 그 분은 손님 마중한다며 대합실로 다시 들어가고 나는 가게에 들러 음료수 1박스를 샀다. 마침 열차가 도착하여 많은 사람들이 대합실 밖으로 밀려나오고 있었다. 순간 못 만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마침 그 분이 도착한 친지분과 나란히 대합실을 나오고 있었다. 음료수를 건네자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하며 마지못해 음료수를 받았다. 나는 집에 돌아와 내게 걸려왔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실례지만 성함이나 알고 싶다고 했더니 강원도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이고 `석'씨라고 했다. 언제 식사나 한 번 대접하고 싶다고 하니까 또 괜찮다고 정중하게 사양했다. 남의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반인륜적인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이 각박한 시절에도 아직 이런 분들이 있기에 우리는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주운 지갑을 돌려주는 것도 고마운 일인데 그 분은 작은 사례마저 물리치려했다. 나는 지금 몸과 마음이 한없이 따뜻하다. 오히려 그 일이 없었던 것보다 더 기분이 흐뭇하다. 나는 춘천이 고향은 아니지만 이곳으로 이사 와 6년째 살면서, 사람들과 인심이 너무 좋아 여기서 눌러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가족들과 의논을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오늘 또 이런 분을 만났다. 딸이 떠난 뒤의 허전한 마음도, 추운 날씨도 다 잊고 아내와 나는 많은 세상살이 얘기를 나눴다. 우리도 뭔가 이 세상에 아름다운 선물을 할 수 없을까 생각하면서.
재무장관을 지낸 콜베르는, 예전에 집이 무척이나 가난하여서
한 포목점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콜베르는 은행원에게 수금하라는 심부름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런데 콜베르가 실수를 하고 돈을 더 받아 온것입니다.
포목점의 주인을 잘했다고 하였지만, 콜베르는 마음에 걸려서
다시 그 은행원에게 가서 정직하게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포목점의 주인은 돈을 다시 주었다면서 해고하였지만
그 은행원이 일자리를 주었고,
콜베르는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콜베르는 훗날, 정직성과 성실성을 인정받아서
재무장관을 지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