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스 암스트롱 신화는 계속된다.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
미국의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이 22일 열린 2003프랑스도로일주사이클대회(투르 드 프랑스) 제15구간 레이스에서 관중 때문에 넘어지는 수난을 당하면서도 4시간29분26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선을 9.5km앞두고 관중의 가방에 걸려 주춤하는 암스트롱은 뒤따르던 스페인의 이반 마요와 함께 나뒹굴었으나, 잽싸게 일어나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역주해, 결승선을 1위로 골인한 뒤 환호하는 팬들을 향해 불끈 쥔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암스트롱은 93년 세계챔피언으로 96년 10월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고환암 판정을 받았다.
암세포가 뇌와 폐까지 퍼져 생존율은 40% 미만으로 떨어졌다.
의사들은 뇌와 고환의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로 목숨을 구한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98년 2월 암스트롱은 사이클 핸들을 다시 잡았다.
몸무게는 9㎏이나 줄었고 머리카락도 듬성듬성해졌지만 "다시 돌아오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99년 7월 암스트롱이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한 뒤 챔피언의 상징인 '노란 셔츠(Yellow Jersey)'를 입는 순간 그의 수술을 맡았던 칼 아우스만 박사는 흥분했다.
"오, 하나님. 이 사람이 내가 본 그 사람입니까? 머리카락 한 올 없이 앙상한 몸으로 침대에 누워 간신히 몸을 움직이던 그 사람입니까?" 생존 가능성이 50% 밖에 되지 않는 고환암을 극복하고 '기적의 드라마'를 해마다 일궈낸 암스트롱은 대회 최다연속 우승기록(5회)에 도전할 뜻이 없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기록을 목표로 삼은 적이 없다. 3연패도 내겐 꿈만 같다"며 감격했었던 그가 올해 또 한번 우승에 가까이 가고 있다.
랜스 암스트롱의 라이벌 얀 울리히는 구 동독 출신으로 11살에 사이클에 입문, 93년 세계 도로 선수권대회를 휩쓸며 두각을 나타냈다.
97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하며 전성기를 맞았으나 99년 무릎부상을 당해 선수생활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힘겨운 재활훈련을 극복하고 돌아온 울리히는 투르 드 프랑스에서 준우승한 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안기며 멋지게 부활을 확인했다.
4번 출전해 우승 한번을 빼곤 암스트롱에 밀려 준우승만 3차례 기록하게 된 울리히.
그는 암스트롱은 “정말 위대한 선수"라고 칭찬한다.
이들은 라이벌이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어 더욱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난 2001년 대회에서는 울리히가 산악 구간 내리막길에서 넘어졌을 때 암스트롱이 추월하지 않고 기다려준 적이 있다.
올해(2003년) 경기에서는 암스트롱이 15구간 결승선을 약 9.65㎞ 앞두고 관중의 가방이 핸들에 걸리는 바람에 넘어졌으나 뒤따라오던 울리히가 다른 선수들과 함께 속도를 늦춰 줘 우승할 수 있었다.
울리히는 지난번 일에 대한 보답으로 속도를 늦추진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는 아름다운 생각에서 나타났을 것이다.
국가와 개인의 명예도 중요하지만, 넘어진 자를 뒤에 두고 앞서 나가지 않는 자세가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동포사회에서 가끔 일고 있는 과당경쟁이며, 같은 지역내의 동업종 개업등은 이제 그만 들었으면 한다. 투르 드 프랑스는 프랑스 전역(약 3600㎞)을 3주 이상 달리며 알프스․피레네 산맥을 넘나들어야 하는 세계에서 가장 힘든 사이클대회이다.
그러나 투르 드 프랑스의 코스가 험난할수록 암스트롱의 '인간 승리'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며, 얀 울리히의 사랑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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