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사람

[스크랩] 윤동주 사진과 시

하마사 2007. 3. 9. 07:16

        

 

              

* 윤동주 시인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사진이 공개됐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생각했던 시인에게

같은 학교 영문과 친구들이 환송회를 해준 뒤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가운데 약간 우수에 잠긴 눈빛

에 입술을 굳게 다문 분이 시인입니다. 이 뒤 윤동주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고 옥사하게 됩니다.

<서시>나 <자화상> 같은 시도 있지만, 윤동주 하면 <별 헤는 밤>이 제일 먼저 옵니다. 고등학교 시절 이 시에 반해서 바로 외워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1941.11.5)

 

 

<편지>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 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 긴 잠 못 이루는 밤이 오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숭실전문학교시절, 문익환목사(안경)와 모자를 바꿔쓰고 (오른쪽 끝)
명동에서 같은 학년이었던 문익환이 한 해 먼저 숭실전문에 입학함
 

          

 

윤동주 시인의 장례식(용정 1945.3.6)

 


 1917 12월 30일 북간도 명촌동 출생  
1925 명동소학교 입학  
1929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 발간  
1931 대남자(大拉子)의 중국인학교 다님  
1932 용정의 은진중학교 입학  
1935 평양 숭실중학교로 옮김  
1936 숭실중학 폐교후 용정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전입  
1938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 입학  
1939 산문 <달을 쏘다>를 조선일보에, 동요<산울림>을 <소년>지에 각각 발표  
1942 리쿄오대학(立敎大學) 영문과 입학, 가을에 도오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로 전학  
1943 송몽규와 함께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  
1945 2월 16일 큐우슈우(九州) 후꾸오까형무소(福岡刑務所)에서 옥사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시집 <별을 헤는 밤>    문화공론사  1977
시집 <이육사, 윤동주>   한국현대시문학대계  지식산업사  1980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81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명지사  1982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83
시집<윤동주 시집>    범우사  1984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동서문화사  1984
시집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열음사  1984
시집 <별과 사랑과 시>    어문각  1985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문지사  1985
시집 <별헤는 밤>    어문각  1985
시집 <윤동주 시집>    마당문고사  1986
시집 <별헤는 밤>    자유문학사  1987
시집 <별헤는 밤>    인문출판사  1987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신라출판사  1987
시집 <별과 사랑의 시>    어문각  1987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덕우출판사  1987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한미  1987
시집 <새벽이 올 때까지>    융성출판사  1987
시집 <자화상>    청목사  1987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민중서적  1987
시집 <윤동주 시집>    범우사  1987
시집 <윤동주 시선>    일신서적공사  1989
시집 <새벽이 올 때 까지>    고려원  1989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오성출판사  1989



1. 짧고 불행한 생애와 시

윤동주의 시는 아름답고도 투명하고 결곧은 결정체들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내재적 의미는, 시가 쓰여진 시기가 일본 강점기가 극에 달하던 시기였던 만큼, 역사적 애환과 맞물려 훨씬 더 중충적이고도 풍부한 모습으로 읽힌다. 그것도 해방을 6개월 앞두고 28세의 빛나는 나이로 일본에서 옥사하며 불행하게 마감한 그의 삶이 시에 더한 빛을 던져 준 것이 되고 말았다.

윤동주는 생전에 문단에 발표를 하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한 적이 없는 무명의 문학청년이었다. 용정 광명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카톨릭소년」에 동시 몇 편을 발표했고, 조선일보와 연희전문의 문과에서 발행한「문우」에 시 몇 편이 실려 있을 뿐이다. 해방후 1947년 경향일보 2월 3일자에 시인 정지용이 생애를 덧붙여 쓴시「쉽게 씨워진 시-고 윤동주」가 실려 처음으로 널리 알려지지 시작했다.

그외 대부분의 시는 해방 후에 간행된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1.30)에 실려서야 비로서 세상에 알려졌다. 일제 암흑기 속에서 예민한 감수성을 시로 풀어 놓았던 윤동주는 시적 성취의 높이만큼이나 극적이었던 삶을 시와 맞바꾼 것일까?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만주국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의 기독교 신앙이 두터운 가정에서 태어났다. 8세에 기독교 학교인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고, 13세(1930)에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새명동」이라는 등사판 잡지를 몇 호 펴냈다. 14세에 대랍자의 중국인 관립학교에 다니다가 용정으로 이사해 용정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초한대」와「삶과 죽음」,「내일은 없다」라는 시 세편이 17세(1934년)에 쓰여진 최초의 시이지만, 이미 습작기의 작품 수준을 웃도는 것을 보아 그 이전에 시작했을 것으로 짐작이 되나 남아 있는 시는 없다. 18세(1935년)에 전학해 간 평양 숭실중학에서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참가하는데 학교가 폐교의 위기에 처하기 전에 자퇴하고 만다.

이 때문에 용정에 돌아온 윤동주는 일본인이 경영하던 광명학원 중학부에 편입해서 졸업을 하는데, 문학을 반대하는 부친과 맞서 단식을 하고 가출까지 하면서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하여 비로소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하게 된다. 그는 시는 계속 썼지만 발표하지 않았고 연희전문을 졸업하던 24세(1941년)에 자선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하려 했으나 상황의 악화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25세(1942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입교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동지사대학 영문과로 옮겼는데, 1943년 7월에 귀향하려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투옥되어 고문을 당하다가 재판에 회부된 윤동주는 2년형을 선고 받았다. 해방을 여섯달 남겨 놓은 1945년 2월 16일 윤동주는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이름모를 주사'를 맞고 있다가 비통하게도 세상을 떠나고 만다.

당시 '규슈(九州)제국대 생체 해부 사건'과 관련지어 전쟁시에 부족한 혈장 대용으로 식염수를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생체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윤동주의 죽음도 이 생체 실험의 희생물이라는 의혹에 싸여 있다.

2. 제기된 문제들

윤동주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 들어서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그 이전에는 1954년에 발표된 고석규의「윤동주의 정신적 소묘」뿐이었다. 1970년대 김윤식.김현이 펴낸「한국문학사」에서 윤동주의 작품을 대표적인 저항시로 꼽은 이래로 그의 시를 두고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논란이 되어 온 것은 그가 과연 저항 시인인가에 대해 제기된 의문이었다.

그를 저항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직접적인 원인은 그가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젊은 나이에 옥사한 사실에 둘 수 있다. 윤동주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을 직접 비판하고 나서거나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면서 부끄러움에 대한 강박 관념을 보여 주는 시어들, 사색과 실존 의식에 우러나오는 저항의식 또는 실향의식 까지를 사회적 또는 정신사적 맥락에서 일제 암흑기에 저항하는 태도로 논의해 왔다.

특히 김용직은 그를 보다 적극적인 항일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의 시를 저항시,민족시로 분류하려는 논의 외에 전통적인 서정시의 계열에서 순수 서정시로 파악하려는 견해들이 있다. 오세영은 윤동주의 옥사사건을 추상적으로 미화시키면 의도적 오류가 발생될 수 있다는 점,식민지 치하에 36년간이나 있으면서도 떳떳하게 항거한 자랑스러운 저항 시인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 윤동주 유고 시집이 간행된 이래로 한국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과 사회구조가 저항 시인을 요청해 온 점 등을 지적했다.

둘째는 윤동주의 문학사적인 위치에 대한 문제이다. 생전에 문단과 전혀 관련하지 않았던 그의 시집이 1941년에 발간됨으로써 시작 시기와 독자층이 시대적으로 엇물려 윤동주의 독자층은 잠재적이라는 것이다. 시는 태어난 그 시기로부터 바로 생명력을 얻으므로 윤동주의 시를 우리시사의 암흑기에 두는 데는 커다란 이견이 없다.

셋째는 윤동주가 20세에서 23세에 집중적으로 쓴 동시 수십 편이 관심을 모았는데 이를 두고 퇴행 현상으로 볼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퇴행 현상으로 보지 않는 김윤식의 견해도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시인의 시에서 드러나는 기독교적인 경향에 대한 해석의 논란이 있었다. 윤동주의 시편들에는 비교적 모호한 구석이 많은데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두고 이해할 때 많은 해석상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3. 작품의 경향과 특성

1)초기 시와 동시에서의 현실과 이상의 거리

윤동주의 작품 활동은 1936년 간도 연길에서 발행되던「카톨릭 소년」지에「병아리」(11월호),「빗자루」(12월호)를 발표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미 알려져 있듯이 1934년에「초한대」,「삶과 죽음」, 「내일은 없다」. 1935년에「거리에서」,「창공」등의 초기 시편들이 먼저 씌어졌다. 그의 초기 시들은 그 수준이 미숙하고 관념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젊은 시인 윤동주가 그 시대를 현실적으로 인식한 고뇌의 편린들을 만날 수 있다.

초한대」에서 '어둠'과 맞서며 깨끗한 제물의 향내를 맡는 의지나 「삶과 죽음」에서 죽음을 삶 속에 수용하는 자를 위인으로 두는 시적 사유는 윤동주가 마감한 삶의 방향성을 시적 출발기에서 이미 예감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윤동주는 1936년대 후반기부터 1938년까지 집중적으로 동시를 썼다.「병아리
」,「햇비」,「무얼 먹구 사나」,「굴뚝」,「아침」, 「애기의 새벽」,「해바라기 얼굴」,「산울림」등의 동시들을 대하면 구체적이면서 쉽고 진솔한 시어로 짜여져 있어 순수하고 맑은 동심의 세계를 읽을 수 있다.

까치가 울어서
산울림,
아무도 못들은
산울림.

까치가 들었다,
산울림,
저혼자 들었다,
산울림.

-「산울림」전문

「산울림」과 같이 빼어난 동시를 쓰던 그는 1938년 이후에는 더 이상 동시를 쓰지 않았는데 시적 성취가 높은 후반의 시들과 초기 시들 사이에 이 동시의 세계가 끼여 있어 단절감을 줄 정도이다. 시인의 내면에 어두운 당대 현실과는 순도 높게 대비되는 청순성이 동시를 통해 유감없이 표현되었던 서정성의 한 특징을 보여 준 것으로 이해된다.

현실의 모순과 삶의 어둠을 체감하면서 동시에 유년기의 화해로운 세계를 꿈꾸며 노래했던 여유가 마음에 설 자리는 1938년 이후에는 이미 없어져 버린 것일까?
그런데 동시에 자연과 우주에 대한 경이감과 감탄을 앞세우며 행복한 자아의 모습을 드러내면서도「해바라기 얼굴」,「오줌싸개 지도」와 같이 이 현실적 삶의 불안으 피해 갈 수 없었던 흔적을 시화하고 있다. 이 부분들에서 후기 시세계로 통하는 시적 자아의 내면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있다.

1936년에 쓰여진 시「가슴1」,「가슴 2」에서 답답한 현실에 가슴을 치다가 재만 남는 상황이 절실하게 표현되어 동시의 세계로 담아 낼 수 없는 심정의 한 극단적인 정황이 드러난다. 현실과 이상이 괴리된 상황 속에 처한 시인이 동시 장르와 시 장르 사이를 오가면서 내면적 자아 성찰의 세계로 깊어져 가는 긴장감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2)정체성에 대한 부끄러운 고백과 내면성찰

1930년대 이후의 시인들에게 식민지하의 지식인으로 실존한다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고 하는 정체성에 대한 절실한 의문에서 놓여날 수 없음을 의미했다. 더구나 북간도에서 평양,용정, 서울,일본도쿄,후쿠오카로, 마지막 유골이 되어 북간도로 떠돌아다닌 윤동주에게 '나'가 뿌리내릴 고향은 어디였을까? 그의 시세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심상중의 하나도'고향','향수'이다.

「별헤는 밤」(1941년),「사랑스런 추억」(1942년)에서 시적 자화는 이상과 현실의 지난한 거리를 부끄러움으로 인식하면서 가난한 이웃들,애착이 가는 물건들,동물들,시인들까지 그리움의 대상을 일일이 확인한다. 뿌리 깊은 고향 상실의 비애는「또 다른 고향」(1941년)에서 절정에 이른다. 밤새워 어둠을 짖는 '지조 높은 개'에 쫒기는 '나'는 비참한 고향의 현실을 뛰어넘어 떳떳한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이상향,'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을 꿈꾸는 의지를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모순된 현실,삶의 괴로움에 처하는 부끄러운 시적 자아는 사명감과 숙명감을 깨달으며 의지를 보여 주기에 이른다. 대표작「서시」(1941년)를 보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전문
2년 먼저 쓰여진 시「자화상」(1939년)에서는 우물에 비추인 달을 응시하며 자신을 반성적 거리를 두고 관조하고 다시 자연과 조화되는 자아의 모습에서 반성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서시'에 이르면 자연과 우주의 세계를 주관적인 의식 세계를 통해 노래하던 이전의 시세계에서 과거와 결별하고 사명감과 숙명을 깨닫으며 강하고 새로운 자아의 모습을 추구하는 투명하고도 아름다운 의지를 보여준다.

자기 내면으로만 응시하던 시적 자아를 외부 세계로 눈을 넓히고 세계와의 관계를 모색하며 새로운 자아에 눈뜨게 되는 것이다. 시의 외부 현실이 역샂거으로 참담했던 시기였던 만큼 '나'는 '민족의 역사' 속에 선'나'의 사명감과 관련된 함의를 가진다."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자아성찰에 따른 지순한 절규는 시「무서운 시간」(1941년)에서 역사의 시간에 귀기울여 극한의 위기감을 예감하게 한다.

거 나를 부른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있소,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무서운 시간」전문

역사가 도전해 오는 소리에 온몸으로 반응하는 모습이 극적이다. 비극적 상황으로 내몰린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면서도 "나"가 살아온 시간과 살아갈 시간의 귀로길에서 예민한 자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는 자신의 의지를 내세우지 못하고 살아왔으며"손들어 표할 하늘"도 "어디에 내 한 몸둘 하늘"도 없는 고단한 현실에 깊이 절망하는 화자이 상황 의식은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삶에 대한 에너지는 남아 호흡을 하면서 절망적인 현실에 대한 경험을 의미화하고 "내 죽는 날"인 최후의 나의 모습까지 예감한다. '일'을 마치지 않은 나는 아직은 살아 있다는 강한 자의식으로 자기 실현의 순간,소명을 다하는 순간을 기다린다.

3)인고의 구도,새 시대의 소망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의 '간'과 예수 그리스도의'십자가'는 윤동주 시에서 아주 중요하고도 의미심장한 상징적 매개물이다. 표면적으로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 시인의 저항 의식은 시「간」(1941년)과 「십자가」(1941년)에 잘 반영되어 있다.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시름없이

...(중략)...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간」전문
「간」은 전래의 귀토지설의 신화와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결합한 풍자적인 상상력이 놀라운 작품이다. 용궁에서 위기에 처하자 슬기롭게 꾀를 내어 자기의 목숨을 지킨 '토끼"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죄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고서도 끝끝내 인고하는 '프로메테우스'는 시인의 실존적 자존심으 대응물이다. 일제 강점기가 극한 상황에 처하던 당시 생명의 핵심인 '간'을 지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자는 살아 있는 정신을 지키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인내하고 자책하는 시인의 저항 의식은 기독교적 속죄양 의식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 시「십자가」에서 "괴로웠던 사나이,/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십자가가 허락된다면//모가지를 드리우고/꽃처럼 피어나는 피를/어두워가는 하늘 밑에/조용히 흘리겠습니다"는 숙연한 결단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리며 희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역경을 기억하며 현실적이 괴로움을 견디려는 시적 화자의 결연한 의지와 신념을 보여 준 것이다.

삶의 막바지에 이르면,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시인의 예감으로 역사적 사실에 한발 앞서 식민지 지식인의 새로운 정체성의 한 면모를 시로써 빚어 놓는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를 무얼 바라
나는 다만,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씌어진 시」전문

「쉽게 씌어진 시」(1942년)에서 죽음과 같은 삶 속에서 부활을 믿으며 "시대처럼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는 미래를 향한 강한 기다림의 염원을 품을 수밖에 없다. 비 내리는 어느 날 밤 조국을 빼앗아 간 일본의 "육첩"하숙방에서 쉽게 시를 쓰는 것을 자조하면서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의 정신은 끝내 잃지 않고 있다.

화자가 기다리는 아침에는 기독교의 종말론적인 아침과 우리 민족이 당연히 맞이해야 될 아침이라는 의미가 겹쳐져 있다. 이 시로 연행되어 일본으로부터 시달림을 받았다는 것은 이 시가 일본인에게 어떻게 읽혔는지를 말해 주는 것이며 또한 이 시가 품은 내밀한 뜻과 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4. 문학사적 의미와 앞으로의 연구과제

윤동주의 대표작들은『문장』과『인문평론』을 위시한 문예지가 폐간당하고 모국어를 전혀 쓸 수 없었던 시기, 많은 지식인이 검거되고 투옥되는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문학활동이 전면적으로 불가능해진 시기에 집중적으로 쓰여졌다. 윤동주 시의 대부분은 해방 직후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간행된 이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의 시들은 가장 어두운 역사적 시대 속에서 문학적 사명과 신념을 투명한 대속의 자세로 살아 남은 유물이다.

"일제하 마지막 시인인 동시에 해방 후의 시단과 연결되는 맨 처음의 시인이며,일제하와 해방 후를 잇는 기념비적 위치를 차지하는 시인"이라는 문학사적 위치는 아직도 낡지 않은 논의로 머문다. 사망 당시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 보관되어 있었다던 의문의 시편들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의 시가 저항시인가의 여부에 대한 논의보다는 시가 가진 본래의 저항성의 본질과 어떠한 형태로 관련성을 갖는지에 대해 보다 진전된 논의들이 이어져야 한다.

윤동주는 일제 말기 암흑기를 살면서 자아 성찰을 통하여 내면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역사 의식을 표현했다. 시대의 무게에 비하면 이렇게 소극적인 태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암흑기 문단사의 별로서 존재한다. 그 이유는 현실의 어둠을 견뎌 내면서도 사랑을 잃지 않았고,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참회하고 절망의 극한에 이르러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지속적으로 노래했던 그 신념의 빛 때문이다.

 


 


새로 발굴된 윤동주의 시 8 수

 

새로 발굴된

윤동주의 시(8수)
 


  새로 발굴된 윤동주 시는 1934 - 1939년 즉 18세로부터 25세
사이에 룡정 은진학교와 광명학교, 평양숭실중학교와 연희전문학
교 등을 다니며 시인의 꿈을 키우던 문학습작기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윤동주의 제1습작시집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
와 제2습작시집 《창》에 각각 실렸으나 그가 1914년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묶을 때 빼버렸으며 해방후 윤동주
시집을 내는 과정에서도 공개되지 않았던것들이다.  


1. 창구멍
 
바람부는 새벽에 장터처가시는
우리압바 뒷자취 보고싶어서
춤을 발려 뚫려논 작은 창구멍
아롱다롱 아츰해 빛어옵니다.

눈나리는 저녁에 나무팔려간
우리압바 오시나 기다리다가
혀끝으로 뚫려논 작은 창구멍
살랑살랑 찬바람 날려듭니다.

  이 작품은 동요인데 창작년대가 밝혀지지 않았으며 그의 제
1습작시집《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의 목차에 의하명 8번째
작품으로 수록되였다. 그러나 그의 제2습작시집 《창》에는 크게
수정되여《햇빛, 바람》으로 제목이 바뀌여 수록되였다. 그러므로
《창구멍》을《햇빛, 바람》의 초고라고 볼수 있다.

 
2. 가슴 2

불꺼진 화덕을
안고 도는 겨울밤은 깊었다.
재[炭]만 남은 가슴이
문풍지 소리에 떤다.

  이 시는 시인이 1936년 3월 25일 룡정광명학원 중학부 학생
시절에 쓴것이다. 처음 제1습작시집에 실렸다가 문자수정을 거친
후 다시 제2습작시집에 실렸는데 해방후 정음사판《하늘과 바람
과 별과 시》에 수록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지금《가슴 2》로 전해
지고있는 시는 진짜《가슴 3》으로 되여야 한다.
  이 시에 대하여 연세대 정형기교수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
다.
  《이 작품은 외형적으로 볼 때 쓰르타미소리 울리는 가을숲
과 밤하늘에 흰달이 걸린 풍경을 그린 짧은 작품이지만 소년 윤
동주가 앓고 있던 시대에 대한 절망과 처절한 자아탐구가 명료
하게 드러난다.》쓰트라미는 외부에 대한 공포를 표현한것이고
흰달 이미지도 그의 후기 시 창백한 자아와 련결된다.


3. 개

이개 더럽잔니
아 - 니 이웃집 덜정수개가
오날 어슬어렁어슬렁 우리 집으로 오더니
우리 집 바두기의 미구멍에다 코를 대고
씩씩 내를 맛겠지 더러운줄도 모르고
보기 숭해서 막차며 욕해 쫓았더니
꼬리를 휘휘 저으며
너희들보다 어떻겠느냐 하는 상으로
뛰여가겠지요 나 - 참
 
  이 작품은 동시로서 창작시간이 밝혀지지 않았다. 시인의 제
1습작시집에 실렸는데 시인의 마음에 들지 않아 X를 친것이다.
이 시에은 동년시기 윤동주의 예리한 판단력과 사고력을 과시하
고있으며 독특한 유모어감각을 보여준다. 개가 아무리 더럽고 치
사하다 해도 사람들보다는 어떻겠느냐 하는 생각으로 끝나는데
의미가 심장하다.


4. 울적

처음 피워본 담배맛은
아츰까지 목안에서 간질간질 타

허제밤에도 하도 울적하기에
가만히 한대 피워보았더니
 
  이 시는 1937년 6월에 씌여졌다고 밝혀져있다. 제2습작시집
《창》에 20번째 작품으로 수록되였다. 이 시는 단편적인 생활모습
으로 청년 윤동주의 고뇌를 보여주었다. 아주 추상적이다. 시인이
스스로 불만족하여 X표를 친데 도리가 있는것 같다.


5. 야행

청각! 마음에 아픈데 있어 고약을 붙이고
시들은 다리를 끄을고 떠나는 현장
- 기적이 들리잖게 운다
사랑스런 녀인이 타박타박 땅을 굴려 쫓기에
- 이제로부터 둥산철도
이윽고 사색의 포푸파턴넬로 들어간다
시라는것을 반추하다 마땅히히 반추하여야 한다.
- 저녁연기가 놀로 된 이후
휘파람 부는 해 귀뚤램이의
노래는 마디마디 끊어져
그믐달처럼 호젓하게 슬프다
늬는 노래 배울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나보다
- 늬는 다리 가는 꾀꼬만 보헤미언
내사 보리발동리에 어머니도
누나도 있다.
그네는 노래부를줄 몰라
오늘밤도 그윽한 한숨으로 보내리니 ……

  이 시는 1937년 7월 26일에 씌여진것으로 시인의 제2습작시
집에 실렸다. 이 시에 대하여 연세대 심원심강사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이 시에는 식민지청년의 내적인 고뇌,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서 시대적 짐을 지지 못하고 가는 자아에 대한 자기 가학적 고
통의 세계가 드러난다.》
  시의 첫줄은 윤동주의 하나의 특점으로 되여있는 자아련
민이 나타나고 시의 뒤부분 귀뚜라미에 대해 쓴 《늬는 노래 배
울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나보다》라는 구절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로 상징되은 민족정체성의 상실돼있는 시인자신의 모습이 투영됐
다고 볼수 있다. 이 시는 총적으로 내적고뇌와 갈등, 긍정적 미래
에 대한 전말을 발견하지 못한 윤동주의 방황하던 세계가 잘 드
러난 작품으로 읽을수 있다.


6. 비ㅅ뒤

<어 - 얼마나 반가운 비냐>
할아버지의 즐거움

가물들엇든 곡식 자라는 소리
할아버지 담바 빠는 소리와 같다.
비ㅅ 뒤의 해ㅅ살은
풀잎에 아름답기도 하다
 
  창작년대가 밝혀지지 않은 이 시에는 전원의 목가적인 풍경
이 생동하게 그려져있다. 윤동주의 시에 흔하지 않은 경향의 작
품으로 서평화의 행복에 대한 원초적인 갈망이 깊이 투사된것으
로 우리의 흥미를 끈다.


7. 어머니

어머니
젖을 빨려 이 마음을 달래여주시오
이 밤이 자꾸 설혀 지나이다.

이 아니는 턱에 수염자리 잡히도록
무엇을 먹고 살았나이까?
오늘도 한주먹이
입에 그대로 물려있나이다

어머니
부서진 랍인형도 쓰러진지
벌써 오랩니다.
철비가 우우주군히 내리는 이 밤을
주먹이나 빨면서 새우릿가?
어머니! 그 어진 손으로
이 울음을 달래여주시오

  제2습작시집에 실린 이 시는 1938년 5월 28일에 씌여진것으
로 밝혀있다.
  이 시에서 시적화자는 어머니에 향하여 욕구불만을 토로하
고 뜨거운 사람을 갈구한다. 시적인 환경도 밤으로 설정된것이
인상 깊으며 주먹이나 빨면서 턱에 수염자리가 잡히도록 자란데
대한 원망은 바로 시인의 강렬한 생명욕구와 생명활력의 표현으
로 읽을수 있다. 어머니는 상징적인 어머니로도 읽을수 있고 또
주먹이나 빠는 기갈은 물질적인 기갈로도 해석할수 있고 정신적
인 기갈로도 해석할수 있다. 윤동주의 가정이 사실상에서 기아선
에서 허덕인것이 아니였다는것을 련계시켜보면 배가 고파 우는
시적화자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결코 윤동주 하나의것이 아
닌, 민주공동체의 비극과 하나로 련결되여있는 원망이라는것을 알
수 있다.


8. 가로수

가로수 단촐한 그늘밑에
구두술같은 혀바닥으로
무심히 구두술을 핥는 시름
때는 오정 싸이렌
어데로 갈것이냐?

그늘은 맴돌고
따라 사나이도 맴돌고


  이 시도 제2습작시집에 실렸는데 창작시간은 1938년 6월1
일이라고 밝혔다. 제6행의 첫 두글자는 지금 판독이 어렵게 된것
이다. 이 시에도 갈길을 선택하지 못하여 고민하는 청년 윤동주
의 고뇌가 력력히 드러난것으로 우리의 주의를 끈다. 바야흐로
점심시간 싸이렌소리까지 울렸으나 구두술같은 혓바닥으로 구두
술이나 핥을 정도로 무료한 시적화자는 그늘이 짙는 가로수밑을
맨돈다.
  총적으로 이 8수의 시는 윤동주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X
표를 친것이지만 좋은 작품이 다수 있다. 오오무라교수는《이중
<비ㅅ뒤>》나<어머니>같은 좋은 작품에 그가 왜 X표를 했는지 리
해할수 없다》고 말하였다.
 
  
 중국 윤동주문학사상연구회(룡정)에서 발행된 (2000년 5월5일)『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에서 발췌.

Serenade To Spring....Secret Garden(Flute ver.)
출처-아홉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

출처 : Morning Calm
글쓴이 : Morning Calm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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