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본질/예배

예배의 변천사와 예배순서

하마사 2006. 12. 29. 21:53
 

예배의 변천사와 예배순서


구약성경에 나타난 예배라는 말은 “봉사” “섬김”이라는 뜻과 “굴복하는 것” 또는 “자신을 엎드리는 것”으로서 숭배, 순종, 봉사의 종교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

신약성경에서는 “절하다” 또는 “굽어 엎드리다”, “입 맞추다”라는 뜻으로서 통치자들에게 신체적으로 굴복 또는 순종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예배란 말은 영어의 worship에서 번역된 것으로 가치(worth)라는 말과 신분(ship)이라는 말의 뜻을 가진 합성어로서 “존경과 존귀를 받을 가치가 있는 자”라는 뜻이다. 이 말을 좀 더 구체화시키면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이란 뜻이 된다.

기독교 예배는 시대를 거치며 여러 모습으로 변화되어 왔는데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예배의 내용이나 형태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예배를 통하여 그들의 생명이 결속되었고 그 가운데서도 주님의 명령을 따라 가졌던 성만찬 속에서 늘 새로운 신앙의 활력소를 찾았다. 그리고 예배의 모든 핵심적인 순서도 말씀과 성례전(세례와 성찬)에 집중되었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새로운 사명을 재확인하는 데 역점을 둔 예배의 분위기를 형성해 갔다.

그런데 기독교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온 것은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가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일이었다. 이 놀라운 사건은 지금껏 개인 가정이나 동굴들(카타콤)을 찾아 소집단으로 모이던 성도들을 한 곳에 집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들의 수용을 위하여 대형화된 교회의 건물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수의 무리들이 모여서 드리는 예배의 집전을 위하여 성직자의 위치와 권위 역시 점차 확장되어 갔다. 이처럼 급격하게 변천된 예배의 조건들은 외적인 형식과 의식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380년 기독교의 국교화 이후 심화되어 간 일종의 부작용이 예배현장에 신비적 요소와 미신적 형태를 발생시켜 놓고 만다. 특히 성만찬은 미사에 있어 극적인 신비의 현상으로 그릇 이해되는 결과를 가져와 구약의 제사제도로 되돌아가는 느낌마저 갖게 하였다. 더욱이 마리아 숭배를 비롯하여 수많은 성자 및 유물숭배사상이 나타나 초대교회 시대에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상태로까지 비약해 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예배 가운데 교회의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중세의 교회는 결국 면죄부 판매와 같은 계속되는 모순을 범하여 위태한 지경에 빠져갔으며 드디어 종교개혁을 맞이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개혁자들은 마리아와 성자숭배를 비롯하여 회중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라틴어로 예배를 인도하는 것은 시급히 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특히 장로교를 중심한 개혁교회의 탄생을 가져온 쯔빙글리, 칼빈, 낙스와 같은 인물들은 예전에 대한 대폭적인 수정을 가했다. 장로교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칼빈은 설교 중심의 예배에 성례전(세례와 성찬)도 매주일 갖도록 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의 주장이 적용된 교회들은 말씀과 기도와 찬송과 죄의 고백 등을 갖추고 오늘의 개혁교회 예배와 같은 형식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개혁교회도 여러 형태의 예배순서가 있으나 우리교회의 예배순서 중에 이번에 변화되는 내용을 여기에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1)전주

예배를 위한 오르간 전주는 개신교 예배의 서두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장엄하면서도 경건한 음악 속에서 예배자들이 각자 마음을 정리하고 흠 없는 자세로 준비를 갖추는 뜻을 지닌 중요한 부분이다.

2)예배의 부름

칼빈에 의해 성구낭독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개신교 예배의 역사에 오랫동안 지속해 온 순서이다. 신선한 하나님의 말씀이 예배자들에게 선포됨으로서 오늘의 예배현장에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재하고 계심을 알도록 하는 순서이다. 예배의 부름에 관한 형식은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하나는 인도자가 말씀을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도자(목사)의 선언에 응답하는 형태이다.

3)찬송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라는 준엄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모두가 일어서서 응답하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서가 곧 찬양의 찬송이다. 칼빈은 예배 가운데 사용된 찬송을 가리켜 “하나님을 우러러 찬양하고자 하는 뜨겁고 열렬한 열심과 더불어 인간의 가슴을 강렬하게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음악적 이해를 가지고 부르심에 응답하는 순서로서 찬양과 경배를 뜨겁게 표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여기서 갖게 되는 찬송이다. 이때에 부를 수 있는 찬송은 반드시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경배와 찬양의 뜻이 담긴 찬송이어야 한다.

4)참회의 기도

이 기도는 기록된 기도문의 철폐라는 경험 위주의 신앙을 주장한 19,20세기의 부흥 운동의 주역들에 의하여 오랫동안 예전 가운데서 사라졌던 순서이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예배 복고운동이 일기 시작하면서 개혁자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이 “참회의 기도”가 새로운 가치를 인정받아 수많은 개신교 예배 속에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이 순서가 있어야 할 근거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용서와 임재를 간구하는 예배하는 공동체의 고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들이 죄악된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참회하며 고백하는 시간은 자신을 성결케 하여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순서이다.

5)사죄의 선언

이상과 같은 내용의 참회의 기도가 드려진 후에 목사는 반드시 회중들이 용서받은 기쁨을 간직하도록 하는 용서의 선언을 해야 한다. 그 용서의 선언이 성경말씀에 근거한 선언이 되지 않을 경우 이 순서는 무가치할 뿐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죄를 고백하는 그의 자녀들을 외면하거나 징계하시는 분이 아니심을 회중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용서를 주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토록 해야 한다.

6)교독문

교독문은 구약성경의 가르침을 목사와 회중이 함께 교독해서 읽는 것이 일반적 형태였다. 상당히 오랫동안 교독은 주로 시편에서만 발췌했었고, 찬송가에 성경교독이 실려 있어서 이를 ‘시편집’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시편 이외 기타 성경에서도 선택하며 이를 찬송가 일부에 수록하여 ‘교독문’이라고 부른다. 또한 교독문은 반드시 찬송가에 실린 것만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 목사 자신이 특별한 행사에 적합한 구절을 선택해도 무방한 것이다.

이외의 순서는 기존의 예배형식과 크게 차이가 없으므로 여기서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아무쪼록 2007년부터 새롭게 드려지는 전통적인 예배순서에 참회의 기도와 사죄의 선언 그리고 교독문이 추가된다는 점에 의미가 있으며 장로교의 창시자인 칼빈이 그토록 강조했던 성례전이 주일낮예배 시간에 정기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이 예배 회복에 큰 의의를 지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의 전통적인 예배의 회복을 통해 성도들 모두가 하나님을 더욱 친밀하고 경건하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참고서적: 

정장복, 『예배학 개론』. 서울: 종로서적, 1994.

정장복, 『복음적 예배의 이해』.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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