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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의 사람

하마사 2006. 10. 1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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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의 사람

이재철

홍성사, 2001

2001. 7. 21


▶물량주의, 기복주의, 심각한 분열과 대립, 반목, 세계교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한국 교회 속에 고스란히 다 들어 있습니다.                                                           p. 7

▶종교학에서 고등종교와 하등종교를 나누는 분기점이 있습니다. 그 종교에 자기 부인이 있는가 없는가가 분기점입니다.

종교학에서 고등종교의 가시 부인을 말할 때, 그때의 자기부인은 영원한 가치를 위한 자기 욕망의 부인입니다.                                                                          p. 8

▶고등종교가 타락할 때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 있는 것으로 진단합니다.

1. 고등종교가 타락하면 성직자가 급증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부인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자기부인을 행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구도의 길입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본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2. 종교기관의 급증입니다. 그 종교의 사제가 급증했기 때문에 그 사제들이 모두 먹고살기 위해서는 종교 기관이 늘어나야만 되는 것입니다.

3. 그 고등종교가 추구하는 신앙의 기복화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 앞에서 내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복주의, 미신은 내가 목적하는 바를 위해 나의 소유나 나의 달란트로 신을 달래고 얼르는 것입니다. 내 목적만 성취하면 될 뿐, 나는 변화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를 방문한 유럽의 한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답니다. 한국교인은 세 가지 밖에 모르더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둘째는 자기 자신, 셋째는 돈이라는 것입니다.

4. 그 종교의 이해집단화입니다. 중세카톨릭이 그랬습니다.                            p. 8-14

▶비늘이 벗겨질 때까지 바울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이란 히브리어의 어원을 따라가 보면 희망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자신의 학력, 경력, 가문으로 그는 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해서 비늘이 벗겨진 뒤에 사울은 스스로 바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히브리어로 ‘작다’, ‘단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작은 미물같은 존재이기에, 내가 내 스스로 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이 교만한 삶을 나는 하나님 앞에서 단념합니다.”하나님에 대한 비늘이 벗겨짐으로 그는 비로소 자기 자신의 실상을 알았습니다.                    p. 58

▶무려 18만 3,300명이 7년에 걸쳐 완공한 건물이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p. 66

▶믿음은 중심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중심이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해 있으면 내가 어느 곳에 있든 바로 그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어느 곳에 있든 그곳이 성전이고, 그 곳에서 드리는 예배가 살아있는 예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p. 71

▶하나님의 성전은 더 이상 건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자신 들이어야 합니다.            p. 73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안에 네 가지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법궤와 금촛대와 분향단과 진설병입니다.

1. 법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움직이는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내 속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28세에 진복적인 단체에 가입했다는 죄명아닌 죄명으로 도스토예프스키는 수용소에 수감됩니다. 그리고 8개월만에 사형을 언도받고 사형 집행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사형집행관이 마지막 유언을 남길 것을 청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망연자실하게 고개를 들었는데, 바로 그 순간에 사형 집행장 건너편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탑위의 십자가에 비친 빛이 반사되어 그의 눈을 부시게 만들었습니다. 그 순간 황제의 특사가 도착했습니다. 만약에 몇 초만 늦었더라도 그는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에 그는 수년동안 시베리아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시베리아로 가는 도중에 그는 성경을 만납니다. 그리고 유배생활내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성경이 거짓임을 내게 증명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사람의 참말보다 그가 거짓말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겠다.”                                             p. 74-79

2. 금촛대입니다. 옛날 성막이던 예루살렘 성전속에는 이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는 빛이신 하나님을 상징하는 금촛대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 등에는 늘 불이 밝혀져 있습니다. 신약시대에서 성전 속의 금촛대란 바로 성령의 조명을 의미합니다. 내가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내 심령이 성령님의 조명속에 거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조명속에 거한다는 것, 성령 충만한 삶을 산다는 것은 바로 주님의 호흡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요 20:22). 성령의 조명아래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호흡으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말씀에 뿌리를 두고 깊은 호흡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에게는 깊은 묵상이 필요합니다.

                                                                                  p. 79-83

3. 분향단입니다. 신약시대에서 향이란 기도라고 말씀하십니다(계 5:8).

우리의 기도는 끊임없이, 되어져가야 할 새로운 존재를 위한 기도여야 합니다.

목회자의 영성과 성숙이 깊이는, 내 입으로 말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는 시간의 길이와 비례합니다.

4. 진설병입니다. 제사장들이 그 떡을 먹었습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과 제사장을 동일시했습니다. 그러나 성경 마25:40은 가장 작은 자와 하나님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속에 진설병을 구비하다는 것은 정말 나와는 다른 사람, 전혀 수준이 안 맞는 사람 등 많은 사람에 대한 공간을 내 마음속에 지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지닐 때에 우리는 비로소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레위기 24:5은 진설병의 개수는 열두 개여야 하고, 진설병 하나의 크기는 10분의 2여야 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1에바는 21리터입니다. 그러니까 10분의 2에바는 약 다섯되입니다. 떡 하나가 다섯되의 크기입니다. 그 떡을 열두개를 비치해야 합니다. 무려 60되에 해당되는 떡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더불어 사는 능력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마음속에 크나큰 진설병을 소유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p. 74-96

▶비전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비전을 가진 사람의 시선은 오늘을 뛰어넘어 언제나 먼 곳으로 향해 있습니다.                                 p. 102

▶비전은 꿈이 아닙니다.

대처수상이 비전과 드림의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비전이란 반드시 그 비전에 상응하는 행동을 수반하기에 어떤 형태로든지 결과가 초래된다는 의미에서 꿈과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통찰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p. 103-104

▶비전은 야망이 아닙니다.

야먕은 욕망의 산물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야망은 성취되면 될수록 자기 자신과 타인을 해치는 흉기가 됩니다.                                                  p. 104-105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비전, 그것만이 참다운 비전이요, 그 비전만이 나와 다른 사람을 동시에 살립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나 자신을 통해서 이루기 원하시는 그분의 비전을 내가 찾기 위해서는, 하나님 그분이 나의 비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비전되시는 것보다 더 큰 비전은 없습니다.                                                                  p. 109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 드리는 도구가 되기 위하여 유념해야 할 다섯 가지 사항

1. 하나님의 비전은 삶의 현장에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란 마치 하얀 백지위에 매일매일 색종이로 모자이크해 가는 것과 똑 같습니다.

비전은 절대로 삶과 괴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은 사람은 누구보다도 지금 주어진 삶의 현장에 충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인간을 위한 비전이고 인간의 삶 속에서의 비전입니다.                 p. 113-14

2.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은 사람은, 오늘은 바로 내일을 위한 예비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주인공이된 한국여성 성악가 이야기

내게 주어진 모든 상황을 내가 은혜로 받아들이고 수용할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으며, 그 과정중에 우리는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 드리는 하나님의 도구로 빚어져 가는 것입니다.

-미국최고의 농학자였고, 계몽가였고, 최고의 그리스도인이었던 조지 워싱턴 카버박사의 이야기

                                                                                  p.114-23

3.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은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세계를 확장시켜 가야 합니다.

  1)끊임없이 영성의 세계를 키워가야 합니다. 얼굴이라고 하는 우리말은 ‘얼꼴’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얼은 ‘영’입니다. ‘꼴’이란 모습이란 말입니다. 영성이 깊으면 얼굴에 모습을 나타냅니다.  p. 123

  2)사람의 세계를 키워가야 합니다. 사람의 지경을 끊임없이 키워갈 때, 그 사람이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은 사람이 됩니다.                                                               p. p. 124

  3)자연의 세계를 확장시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자연을, 자연에 대한 지경을 많이 넓히면 넓힐수록, 하나님과 더 깊이 교감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그분이 그 땅에 창조하신 사람들을 더 넓게 수용할 수 있습니다.                                                               p. 125

  4)실력의 세계를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라인의 사람을 쓰십니다. 베드로처럼 배운 것은 없지만 진짜 행동하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바울 같은 최고의 엘리트를 쓰십니다.

실력은 표현력입니다. 목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진리의 말씀을,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교회는 입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p. 125-27

4.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는 사람들은 이성적 신앙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성을 다해서 주님의 말씀을 만나는 자가 성령충만한 자입니다.

-당시 영락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쓴 글 소개                                        p. 127-34

5.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는 자는 결과를 보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반드시 결과를 보고자 하는 것은 경제원리입니다.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때만 진정한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 드릴 수 있습니다.

-일본 나가노목사 소개

  개척 5년동안 단 한명의 교인이 없다가 5년후 어느 수요일 저녁에 찾아온 폐병이 걸린 청년 한명을 주님의 사랑으로 돌보아 회심시켰는데 그가 후에 유명한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목사이다.

나가노목사는 평생에 한 명의 그리스도인 밖에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경제논리로 보면 실패한 목사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나가노목사가 없었더라면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는 없습니다.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가 빈민들의 항문을 빨아줄 때 그 심중에는 나가노 목사도 함께 있는 것입니다.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가 중국빈민을 위해 자신의 생애를 바칠 때, 그 속에는 나가노 목사도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우라 아야꼬 여사는,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도 위대하지만, 그 한 사람을 배출한 나가노 목사가 더 위대하다고 쓰고 있습니다.

-포르투칼의 국민가수인 로드리게스 아말리아라는 여자의 장례식 소개

                                                                                  p. 1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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