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전 15:50-58
제목: 부활 신앙인
찬송: 165장
목표: 부활신앙인으로 살게 한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가 히틀러 치하에서 히틀러 반대세력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고 옥에 갇혀 있을 때, 그는 어느 날 아침 한 방의 죄수들과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미처 마치기도 전에 간수들이 데리러 왔습니다. 사형 집행일이 된 것입니다. 누구나 이 순간에는 평온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지만, 그는 간수들 앞에서 평안한 모습으로 말을 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이 왔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것이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39세로 짧은 생을 살았던 젊은 신학자는 확고한 부활신앙을 가지고 그 고난의 삶을 이겨 갔습니다. 그의 부활신앙은 고난의 현장 속에서도 자신 있게, 그리고 힘차게 삶을 살 수 있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천국비유 중에 밭에 감추어진 보화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밭에 보화가 감추어진 것을 안 어떤 사람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는 내용입니다. 비밀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바울사도는 부활을 비밀로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신앙은 비밀을 아는 사람이 소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듯이 우리도 부활하여 영원히 살 것을 믿습니다. 부활의 비밀을 믿는 부활신앙인은 실패와 절망, 죽음을 넘어 역사하실 주님의 부활의 능력을 믿고 소망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부활의 비밀을 믿는 부활 신앙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1. 변화하는 신앙인(50-52절)
50-52절,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부활하고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실 때 천사들이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 말했습니다. 이 약속대로 예수님은 재림하십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는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고린도교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생활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혈과 육 그리고 썩는 것 즉 현재의 몸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와 대조됩니다. 또한 ‘썩는 것’과 ‘썩지 아니하는 것’이 대조됩니다. 혈과 육 즉 피와 살은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썩는 것’은 ‘부패가 진행된 시신들’을 의미합니다. 살아있는 사람들과 죽은 시신들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살아있는 사람과 주님의 재림 이전에 죽은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살아있는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현재의 상태로는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부활한 생명은 다른 형태의 몸이 필요합니다. 살과 피를 지닌 인간의 몸으로나 부패가 진행된 몸으로서는 결단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비밀’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에 대한 감추어진 진리 즉 ‘종말론적인 진리’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있고 하나님의 주권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비밀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라는 것입니다. 그 때 살아있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상태에서 바로 새로운 몸으로 변화할 것이며, 동시에 죽은 자들 역시 죽어 썩어진 상태에서 완전히 다른 몸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는 살아있는 자들이나 죽은 자들이 모두 그들의 상태와 상관없이 변화된 새로운 몸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죽은 자들이든지 아니면 산 자들이든지 변화 받지 않고서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재림 때는 모든 이들이 변화하지만 부활신앙인은 현재에도 변화를 체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는 사람은 부활도 믿는 사람입니다. 부활과 재림은 변화를 의미합니다. 죽음에서 삶으로의 변화입니다. 이 부활의 변화를 믿는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화)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변화된 제자들과 바울
누가복음 24장에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처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예루살렘을 벗어나 도망가듯 엠마오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동행 하시면서 성경을 해석해주셨지만 깨닫지 못했습니다. 날이 저물어 집에 들어가 음식을 함께 나누며 예수님이 기도하고 떡을 떼어주실 때에야 비로소 주님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함께 걸으면서도, 대화를 나누면서도, 성경을 해석해주셔도, 음식을 먹기 위해 마주 대하고 앉았어도 주님을 몰라보았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기 전에 이미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영적으로 둔감하면 몰라볼 수 있습니다. 교회의 예배하는 현장에, 가정에, 일터에, 삶의 자리 곳곳에 이미 함께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고 음식 먹던 자리에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달려갔습니다. 예루살렘은 아직도 두려움과 공포가 가시지 않은 곳입니다. 3일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고난의 장소였습니다. 그 고난의 장소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두려움으로 얼룩져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도망치던 그들이 그 고통의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확인한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반전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일생이 변화된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거꾸러지고 돌이켜서 예수님의 증인으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던 사람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전파하는 사람으로 돌변했습니다. 핍박자가 십자가와 부활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변화하는 신앙인이 됩니다.
영화 <쿼바디스>에 보면 베드로가 박해를 피해서 로마를 탈출 할 때에 길 위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질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쿼바디스 도미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라고 질문하자 주님이 “네가 나의 사랑하는 양들을 버리기에 한 번 더 죽으러 간다.(네가 버리고 간 십자가를 지러 간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각성하고 로마로 다시 돌아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신앙인은 변화하는 신앙인입니다. 주님을 등지고 살던 자리에서 즉시 돌이켜야 합니다. 편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며 살던 삶의 자리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고난의 현장을 도망치던 발걸음을 돌이켜 다시 거기로 들어가야 합니다. 세상의 자랑거리를 배설물로 여기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자랑하는 변화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화) 칼리마 나비
‘죽은 잎사귀’로 불리는 칼리마(Kallima)라는 나비가 있습니다. 왜 죽은 잎사귀로 부르는가하면 이 나비가 날개를 펴고 있을 때는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입니다. 날개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마치 왕관을 쓴 여왕의 자태처럼 우아합니다. 그러나 날개를 접으면 누런 색깔의 흉물스러운 곤충에 불과합니다. 그 모습이 마치 썩은 나무 잎사귀와 비슷하여 붙여진 별명입니다. 날개를 펴고 접는 것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칼리마와 같은 교인은 아닙니까? 주일날 교회에서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믿음 좋은 성도이지만 세상에 나가면 죽은 잎사귀로 돌변하지는 않습니까? 가정에서, 일터에서 진정 변화하는 신앙인으로 살고 계십니까?
반대로 지금은 날개를 접은 죽은 잎사귀처럼 보이지만 부활신앙으로 변화되면 아름다운 여왕의 자태를 드러내며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활의 비밀을 믿는 부활신앙인은 변화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해야 합니다. 거룩하고 성결한 모습으로 성화되어야 합니다. 빛과 소금으로 세상을 밝히고 살맛나는 세상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어두워지고 부패해가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부활신앙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의 비밀을 믿는 부활신앙인은
2. 감사하는 신앙인(55-57절)
55-57절,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사망에 머물지 않고 부활하셨기에 죄에 대한 승리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며 살아갑니다.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는 이길 수 없지만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로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왜 세상에서 자꾸 넘어지고 쓰러집니까?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이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힘으로도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인간의 노력과 능력으로 이기려 할수록 절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유일한 승리의 길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친히 세상을 이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주님이 이기셨습니다. 사단의 시험과 공격을 이기셨으며 십자가와 부활로서 사망권세까지 이기셨습니다. 주님이 이기셨듯이 부활의 비밀을 믿는 우리들도 승리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와 사망으로 인해 절망과 패배 속에 살아갈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 늘 이김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부활의 비밀을 믿는 사람은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활신앙인의 끝은 승리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도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고 쓰러지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승리합니다. 최종승리는 이미 보장되어 있습니다. 죽을지라도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살아나 천국에서 영원토록 왕 노릇하는 영생의 복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세상이 끝이라면 그야말로 그리스도인은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은 후에 심판의 부활과 생명의 부활이 있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부활신앙인은 생명의 부활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으로 승리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세상과 환경, 사람을 보지 말고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환난과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 홍해를 만났고 뒤에서 애굽 군대가 추격하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모세가 말했습니다. (출 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위를 바라볼 때 살 길이 생깁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거나 박해를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할 때도 견딜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주고도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도 오히려 고난을 당했습니다. 선한 일을 해도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암담한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위를 바라보며 기도하고 찬송할 때 감옥 문이 열렸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보호하고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질그릇 같은 인간이기에 깨어질 수 있지만 부활신앙 때문에 절망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부활신앙인은 아무리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시작을 믿는 사람입니다.
(예화)전국목회자 테니스대회 일화
약 2년 전에 전국목회자테니스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복식경기에서 파트너 목사님과 열심히 했지만 2패하고 탈락하여 전국대회의 높은 벽을 실감했습니다. 초반에 탈락했지만 고수들과의 시합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그 때 준결승전을 관람하면서 좋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서로 실력이 상당한 고수들이었습니다. 한 팀이 다소 밀리는 분위기였습니다. 게임스코어 2-5, 매치포인트까지 몰렸습니다. 한 포인트만 잃으면 시합에서 패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 명이 파트너를 독려하며 소리쳤습니다. “버티면 돼”
연신 “버티면 돼”라고 소리치며 자신과 파트너에게 기운을 불어넣었습니다. 매치 포인트를 풀고 분발하여 타이브레이크까지 가서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경기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패하는 경기를 뒤집을 수 있었던 힘은 “버티면 돼”라는 포기하지 않는 기합소리였습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버티면 역전승의 기회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한 점을 남겨두고도 포기하지 않으면 됩니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포기할 상황에서도 끝까지 버티면 반드시 승리의 기회는 찾아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들 때마다 “버티면 돼” 이 말을 기억하고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 중에도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부활신앙인은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실패와 패배를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붙잡고 끝까지 버티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패배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생명의 부활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부활을 믿으면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과 어려움을 견딜 수 있고 소망가운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쓴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인생의 승리자로 살아가길 원한다면 이 세 가지를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하나, 죽을 때까지 나만의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둘, 죽을 때까지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아야 합니다. 셋, 죽을 때까지 범사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사할 때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승리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인이 부활신앙인입니다.
부활의 비밀을 믿는 부활신앙인은
3. 헌신하는 신앙인(58절)
58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라는 매우 친근한 호칭을 사용하면서 부활신앙에 근거하여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말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그리스도인의 수고를 말하면서 지금까지 주의 일에 힘썼지만 ‘더욱’ 힘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부활신앙인은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유익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헌신하는 부활신앙인은
1)견실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그리고 성도의 부활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못하고 흔들렸습니다. 확신이 없으면 흔들립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면 신앙이 흔들립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믿지 못하면 신앙생활이 흔들립니다. 신앙이 흔들리면 삶이 흔들립니다. 현실주의자가 됩니다. 내세를 부인하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흔들릴 수 있습니다. 환경에 따라, 사람의 말에 따라, 시간에 따라 흔들릴 수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연탄가스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 정신은 말짱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천정이 빙빙 돌고 어지러웠습니다.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다가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내 몸이 흔들리자 세상이 흔들거렸습니다. 믿음을 잃으면 내일이 흔들립니다.
반대로 아무리 세상이 흔들려도 내가 중심을 잡으면 평안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사 26:3)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심지를 견고히 하면 하나님이 평강하도록 지키십니다. 믿음의 심지를 하나님께 두면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도 요동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습니다. 평정심을 잃지 않습니다. 믿음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대상이어야 합니다.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대상이어야 합니다. 약속을 지키는 신실한 대상이어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62:6절에서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고백하였습니다. 믿음의 대상이 오직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처럼 오직 하나님만 믿고 소망을 삼으면 이런 담대함이 생깁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비록 왕궁을 쫓겨나서 급히 요단강을 건너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어도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삼하 22:29) 하나님이 등불 되셔서 어둠을 밝히실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소망의 등불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견실하며 흔들리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동치고 죄와 사망이 낙심하게 만들어도 부활신앙으로 승리하는 견실한 부활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헌신하는 부활신앙인은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교회를 만들고 교회를 세우는 그리스도인의 수고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사도들의 직무이기도 하지만 디모데 같은 동역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고 있는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힘쓰다’는 뜻은 ‘풍부하게 하다’, ‘탁월하게 하다’라는 의미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더욱 풍부하고 탁월하게 만드는 일에 충성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교회를 더욱 풍부하고 탁월한 교회로 만드는 일에 충성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주의 일에 힘쓰면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부활신앙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면 반드시 보상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당장에 주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상급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에 힘쓰고도 헛된 일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수고해도 보람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고하고도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가치 있는 일이고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무의미한 결과가 주어질 때 허무합니다. 일을 하고도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예화) 모파상의 단편소설
모파상의 단편소설 ‘진주 목걸이’는 허영에 들뜬 현대인들에게 따끔한 교훈을 줍니다. 주인공 로와젤 부인은 초대받은 파티에 가기 위해 친구 포레스터 부인으로부터 목걸이를 빌렸다가 잃어버립니다. 그녀는 빚을 얻어 4만 프랑이나 하는 똑같은 목걸이를 사다 주었습니다. 그 빚을 다 갚기 위해 10년 동안 전전긍긍했던 그녀를 우연히 만난 포레스터 부인은 그간의 사실을 알고 로와젤 부인의 손을 꼭 쥐며 이렇게 말합니다. “어떡하면 좋아, 친구야. 내가 너에게 빌려 주었던 진주 목걸이는 모조품이었어. 기껏해야 500프랑밖에 안 되는 것이었는데 너는 그것 때문에 많은 세월을 고생했구나.”
모파상의 삶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지중해에 떠 있는 개인 요트, 노르망디의 저택과 파리의 호화 아파트, 평생 쓰고도 남을 거액의 은행 잔액 등 겉으로 보기엔 행복 요건을 다 갖춘 것 같습니다. 그러나 43세에 세상을 떠난 그의 묘비에는 그가 반복해서 했던 말이 적혀 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우리 인생에서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 외에는 모두 모조품에 불과합니다. .
헌신하는 부활신앙인은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주의 일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풍부하고 탁월하게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명 살리는 일,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3)헌신하는 부활신앙인은 보상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의 성공은 공허와 허무를 메우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흘린 수고의 땀방울은 반드시 열매가 주어집니다. 주님을 위해서 수고한 일은 헛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몰라주어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시고 하늘의 상급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이 땅에만 모든 것을 심은 사람입니다. 하늘에 쌓아둔 것이 없기에 이 세상 떠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전도와 선교, 사랑의 하늘 보물을 쌓아야 합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 6:20)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은 허무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생명과 면류관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비밀을 믿는 부활신앙인 여러분!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손해 보고 헛고생하는 것 같아도 기쁨으로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부활신앙인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고 내세가 있습니다. 부활하여 영원토록 사는 영생하는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여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할 천국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2:5절입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천국의 삶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비밀을 믿습니까? 부활의 비밀을 믿는 부활신앙인은 죄와 자기를 이기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하는 신앙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죄와 사망에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인입니다. 하나님의 상급을 믿고 주님과 교회를 위해 더욱 힘쓰는 헌신하는 신앙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가 이런 부활신앙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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