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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위기에서 한국 경제 성공 방정식의 위기를 본다

하마사 2016. 10. 14. 09:14

갤럭시노트7 단종(斷種) 사태의 가장 큰 손실은 '삼성'이라는 일류 브랜드의 가치가 훼손된 것이다. 수조원에 달할 생산 차질과 매출 하락은 그다음 문제다. 어렵게 구축해놓은 삼성의 명품(名品) 이미지에 금이 가는 것이 삼성은 물론 한국 경제로서도 뼈아픈 일이다. 지난주 미국 인터브랜드 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세계 7위였다. 6위 IBM과 5위 도요타자동차를 근소한 차이로 뒤쫓는 수준까지 약진했다. 갤럭시S 시리즈로 대표되는 삼성만이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고급에다 명품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삼성이 이런 브랜드 가치를 쌓기까지 엄청난 노력과 투자가 필요했다.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양(量)을 포기하고 질(質)에 주력한 결과였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건희 회장의 주문처럼 삼성은 저질·싸구려 이미지를 벗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불량품 15만대를 불태우는 '휴대폰 화형식'까지 벌였다. 그렇게 어렵사리 구축한 브랜드 이미지와 소비자 신뢰가 흔들리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삼성은 세계 일류 반열에 올라섰으면서도 조직 문화는 여전히 상명하복(上命下服)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그것이 이번 사태의 토양이라는 것이다. 삼성은 애플의 아이폰7보다 먼저 출시하려 무리하게 공정을 앞당기다 제품 결함을 자초했다. 1차 발화 사태 때도 빨리 수습하려는 조급증에 빠져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배터리 결함'이란 틀린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이렇게 글로벌 문화와는 동떨어진 관료주의적 의사 결정이 사태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갤럭시노트7 사태는 지금까지 승승장구한 삼성의 성공 방정식이 한계에 달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삼성은 선발주자를 모방해 기술 혁신을 얹은 뒤 대규모 투자로 시장을 장악하는 '빠른 후발자'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톱다운(상의하달) 방식의 과감한 의사 결정으로 경쟁자를 스피드로 압도하는 것이 삼성의 경쟁력이자 대부분 한국 기업의 주특기였다. 이 주특기로 이룰 수 있는 최고점이 삼성 브랜드였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삼성뿐 아니라 모든 국내 기업이 마찬가지다. 여기에 한국 경제가 봉착한 근본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잘해온 것은 실은 중국이 더 잘할 수 있는 것이다. 규모가 크고 속도도 더 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격차를 벌리려면 창조와 혁신이 필요한데 그조차 중국에 뒤질지 모를 상황이다.

2·3세 오너 체제로 접어든 대기업들은 창업 세대 같은 기업가 정신이 쇠약해졌고, 창조와 혁신으로 무장한 신흥 기업군은 보이지도 않는다. 삼성 한 기업의 위기가 곧바로 국가적 문제가 된다. 정치는 제2, 제3의 삼성이 나타날 바탕을 만드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반(反)기업을 득표 수단으로 활용한다. 여야를 떠난 국가 리더십은 실종된 지 오래다.


삼성 사태에서 한국 경제 성공 방정식의 한계까지를 읽어야 하는 것은 세계가 주목하던 한국의 기업 생태계 전체가 역동성을 잃고 침체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이 달라지지 않으면 또 다른 충격적 사태를 맞는 것은 시간문제다.


-조선일보, 2016/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