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역사/내매교회

내매 이야기

하마사 2016. 10. 3. 09:10

내매이야기

 

강은선

 

글을 지으려 컴퓨터에 앉으면 제일먼저 생각나는 풍경 하나가 있다.

모래강변이 고운 고향의 들판이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그 싯귀가 딱 떠오르는 그런곳이다. 낙동강 칠백리를 흐르는 그 강변의 모래는 어찌나 고운지 하루종일 맨발로 다녀도 돌멩이에 발을 다칠일은 절대 없다. 순한 모래가 내어주는 길을 따라 강물은 흐르지만, 강물조차도 순하여 바지만 둥둥 걷고 건너면 된다. 강물은 장마때가 아니면 언제나 무릎밑이었기 때문이었다. 맑고 맑은 강물에는 온갖 물고기와 희귀한 새들이 찾아오고 모래밭에는 그들의 발자국으로 그림이 채워져 있다. 강둑을 따라 끝없이 늘어진 왕버드나무는 유년의 우리들, 아니 아버지 할아버지의 놀이터였다. 쑥을 찧어 코에 박고 왕버드나무에 올라가서 맑은 강물에 풍덩! 다이빙을 했었기 때문이다. 넓은 모래밭에는 어머니와 고모가 삶아서 빨아 널어 놓은 옥양목 이불호청이 눈부시게 펼쳐져 있고 강물에는 어린 친구들의 깔깔거림이 마냥 즐거웠다.

운이 좋은 날이면 모래밭을 내달리는 사슴도 볼 수있었다. 강변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뭉개구름이 한가롭게 떠 다니고 맑은 하늘은 산위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초가집 지붕에는 빨간고추가 널려있고 동네 공동우물에는 두레박으로 물을 퍼 푸성귀를 씻는 풍경들이 어제일 같이 생생하다. 좁다란 도랑에 돌만 옮기면 가재가 잡히고 독수리가 하늘 높이 원을 그리던 눈물나게 그리운 고향의 모습이다. 어디선가 부엉이가 밤새 울고 하얀 박꽃이 울타리를 타고 피면 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른다, 보석이 흐른다, 아~~~ 하늘 강 천지에 별이 흐르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빛나는 별무리가 하늘 가득 흐르는 장관은 이제 전설이 되었다.

저녁이 되면 굴뚝마다 연기가 피어 오르고 날이 저물어도 돌아오지 않는 딸을 부르는 종예야~~ 의 소리는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댕그랑 댕그랑 들리던 교회의 새벽종소리에 일어나시던 조부모님들의 인기척... 군복을 입은 고모와 고모부가 쪽마루에 앉아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는 장면을 연출하면 사진을 찍던 아버지는 20대였지. 할머니와 어머니가 마주앉아 두드리던 다듬이 방망이 소리는 얼마나 듣기 좋았는지. 비가 오면 두꺼비가 나오고 맹꽁이가 울고 기왓장을 타고 흐르던 낙숫물 소리를 가만히 누워 듣고 있었지. 가을이 되면 문을 뜯어 세워놓고 창호지를 발랐지. 노랗게 핀 소국도 붙이고 겨울 내내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코스모스는 문풍지에 붙여져 있었지. 노란 장판위에는 할머니가 호박이며 고구마를 말리고 시렁위에는 우리를 위해 간식도 잊지 않으셨지.

봄이면 온 들판이 연두빛으로 바뀌고 여름이면 풍부한 내성천 강물이 그림같이 흐르고 가을이면 초가지붕에 널린 고추가 예쁘고 겨울이면 처마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리던 고향의 사계절이었다. 뒤란의 감나무는 꽃을 피웠다 열매를 맺고 빛고운 단풍잎을 떨구어 주어 가을을 알리기도 했다. 깊이를 알 수없는 우리집 우물에는 일년내내 푸른 이끼가 세월처럼 덮여 있었다. 곡식가루가 뽀하얗게 내려앉아 있는 디딜방아에는 방아를 찧을 때 붙잡는 끈이 두개 매달려 있었다. 양쪽으로 갈라진 디딜방아에 나란히 서서 방아를 찧던 어머니와 할머니는 눈섭까지 하얘있었지.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부름에 문을 열면 먼친척오빠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코피를 지혈시키려 서 있지만, 어쩐일인지 꼭 아버지의 주사를 맞아야만 지혈이 됐다.

유년에 봤던 그 아름다운 정경이 그림엽서처럼 곱다. 시대가 변힌여 몇년만에 한번씩 가면 다 변해있다. 겨울이면 나무를 베어 임시다리로 건너던 외나무 다리도 사라지고 콘크리트 다리가 세위져 있고 온통 스레트로 지붕개량을 하여 웬지 낯이 설고 생경스러워 다른 동네에 왔나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집집마다 자가 상수도가 생기면서 두레박이 있던 공동우물도 사라져 버렸다. 논밭이던 곳에 사과밭이 생기고 낯익은 어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이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댐이 들어서면서 봉화 춘양목으로 지었다는 우리집은 다 뜯겨 목재가 차곡차곡 쌓여있고 포크레인이 집터를 꼭꼭 다져 놓아버렸다. 동네의 흔적을 찾을 수없다. 세상에. 그 곱던 황금모래도 잡석투성이가 되고 온갖 새들이 날아 들던 그곳에는 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마음이 허전하다. 그 어떤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다. 글을 쓰려고 하면 늘 생각나던 내매라는 산골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은 이제 어디서도 볼 수 없다. 내 마음속에 고이 접어둔 60년대의 고향 풍경화를 가끔씩 꺼내 펼쳐 보는 나는 고향을 잃어버렸다. 물속에 잠겨버린, 내 글쓰기의 단초가 되었던 고향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