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가정

은퇴 후 부모와 자식

하마사 2016. 9. 20. 16:08

나이가 들면 누구나 행복한 노후를 떠올린다. 한국인 대부분이 공감하는 행복 조건이 있을까. 호스피스를 전공한 어떤 학자는 '연골' '할 일' '인간관계' 세 가지를 꼽았다. 치매나 암도 무섭지만 먼저 무릎 연골이 성해야 병원부터 제 발로 간다. 돌아다녀야 몸과 마음이 실해진다. 작아도 할 일만 있다면 정체성도 세운다. 주머니에 보탬도 된다. 인간관계로는 친구보다 중한 첫 고리가 부부 사이다. 다음엔 자녀 관계가 은퇴 뒤 행복을 결정짓는다.

▶가장이 직장에서 물러나면 가족 모두가 익숙지 않은 상황을 맞는다. 자신도 아내도 자식도 서로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가 해결책을 냈다. '아빠가 회사 안 가고 집에 있어도 나쁘지 않다'는 상황을 만들 것. 그러려면 잔소리·꾸중·훈계는 금물이다. 서양 속담에 '부모와 자식은 수프가 식지 않을 거리가 좋다'고 했다. 전화를 걸면 수프가 식기 전에 달려올 만큼 떨어져 살되 너무 가까워도 좋지 않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마흔다섯 살 넘은 2234명에게서 지난 8년 '삶의 만족도 변화'를 조사해 결과를 내놓았다. 줄곧 취업했던 사람, 은퇴했다 복직한 사람, 내리 쉬는 사람, 세 그룹으로 나눴다. 건강·재정·배우자·자녀·삶, 다섯 항목을 살폈더니 8년을 내리 쉬는 그룹에서 자녀 만족도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75.4점에서 12.9점이나 깎였다. 직장 떠나고 일 놓으면 모든 게 안 좋아지는데 유독 자식 관계가 더 나빠졌다.

▶일본 내각부가 지난해 고령자 의식 조사를 했다. 자식·손자와 언제든 함께 생활할 수 있어 좋다는 사람이 20년 새 반 토막 났다. 나이 먹으면 자식 애틋해지는 건 그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내가 자식 그리운 것과 자식이 그 마음에 응하는 건 별개다. 부모는 그러다 마음을 다치고 끝내 접기도 한다. '마음 기댈 사람이 있느냐'는 국제 조사를 해보면 한국인은 배우자·자식 빼면 기댈 사람 비율이 뚝 떨어진다. 그 부분에서 우리는 스웨덴 사람보다 열두 배쯤 외롭다.

▶그렇듯 한국인은 자식을 낙으로 알고 산다. 돈 벌어 자식 키우는 데 삶을 바친다. 정작 자식과 깊게 대화 나눌 기술은 익히지 못한다. 은퇴하면 시간은 많고 지갑은 얇아진다. 세태에 어둡고 잔소리는 는다. 취미를 함께 즐길 친구도 없고 혼자 놀 줄도 모른다. 그 빈 공간을 자식이 채워주길 바랐다면 자녀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추석 연휴에 그걸 절절하게 느낀 50~60 세대가 적지 않을 것 같다. 야속하다 하기 전에 부모도 자녀에게서 독립하는 법을 배울 일이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6/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