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록펠러, 석유산업 95% 독점 경쟁업체 퇴출·합병 무자비
록펠러 센터·뉴욕현대미술관에 유엔본부 땅도 가문에서 기증
지난 2007년 미국 경제지(誌) 포천은 미국 역대 최고 갑부로 19세기 석유 재벌 존 록펠러를 선정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개인 자산의 비율을 시대별로 산출한 결과, 록펠러는 사망 당시인 1937년 GDP의 1.54%에 해당하는 14억달러를 보유했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현재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 재산의 3배가 넘는 돈을 벌었다고 한다.
존 록펠러는 1870년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을 공동 창업, 10여년 만에 미국 석유 산업의 95%를 독점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는 철도 수송망을 장악, 경쟁 기업에 차별적 운송 요금을 적용하면서 경쟁 업체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거나 합병·제휴하는 등의 방법으로 미국 내 석유 산업을 장악했다. 저가 공세로 경쟁사를 차례차례 무너뜨리는 등 온갖 편법과 불법을 서슴지 않아 그의 재산에는 항상 '더러운 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원한을 산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는 항상 침대 곁에 총을 두고 잤다고 전해진다. 결국 미국 정부는 1911년 독점금지법(Anti-trust act)을 만들어 '스탠더드 오일'을 34개사로 쪼갰다. 그 결과 지금의 엑손모빌, 셰브런 같은 굴지의 석유 기업이 생겨났다.
하지만 현재 존 록펠러는 '악덕 기업가'보다는 '위대한 자선사업가'로 회자된다. 막대한 기부를 하면서 무자비한 자본가라는 오명(汚名)을 씻었다. 그가 살아서 기부한 돈은 5억3000만달러로, 미국 GDP에서 록펠러 재산이 차지했던 비중을 감안하면 현재 가치로 1280억달러(약145조원)에 달한다. 1913년 당시 5000만달러를 기부하여 세계 최대 재단인 록펠러 재단(The Rockefeller Foundation)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록펠러 의학연구소, 시카고 대학, 록펠러 센터 등에 자신의 엄청난 재산을 쏟아부었다. 뉴욕 중심가 알짜배기 땅의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링컨센터 역시 록펠러 가문의 후원으로 세워졌고, 유엔본부 땅도 록펠러 가문이 기증했다.
록펠러 가문 사람들은 막대한 부(富)를 기반으로 다른 명문가와 혼맥을 형성하면서 정계에도 진출했다. 존 록펠러 주니어의 둘째 아들 넬슨 록펠러는 공화당 출신으로 41대 부통령을 지냈다. 넬슨 록펠러는 수차례 대권에 도전했지만, 리처드 닉슨 등 공화당 유력 후보에게 밀려 대선 후보에서 낙마했다. 부통령이 된 후에는 록펠러 가문의 막대한 재산이 부각되면서, 오히려 정치적 입지가 약화됐으며 1977년 결국 정계에서 은퇴했다. 넬슨 록펠러의 동생인 윈스롭 록펠러는 아칸소 주지사를 지냈다. 록펠러 가문은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지만 존 록펠러 3세의 아들인 제이 록펠러는 민주당 출신으로 미 버지니아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제이 록펠러는 2년 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조선일보, 2017/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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