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오리지널과 복사

하마사 2016. 4. 14. 17:29
김대식 KAIST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교수·뇌과학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는 바로크 시대 최고의 화가로 꼽힌다. 어쩌면 그는 적어도 초상화 부분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였는지도 모른다. 위대한 예술은 편안하고 순탄한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렘브란트의 인생 역시 험난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가진 첫 아이는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죽었고, 둘째와 셋째 아이 역시 한 달도 못 살고 죽는다. 드디어 넷째 아이는 살아남지만, 아이를 낳던 아내가 죽는다. 경제적으로도 그의 삶은 편하지 못했다. 성공한 화가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언제나 버는 돈보다 지출이 더 많았으니 말이다. 50세가 되던 해 렘브란트는 드디어 파산하고 만다. 집과 모든 것을 잃은 그에게 채권자들은 통보한다. 렘브란트가 앞으로 죽을 때까지 그릴 모든 그림은 그들의 소유라고.

앞으로 살아있을 모든 날의 작품이 채권자의 손에 들어가게 될 렘브란트.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는 인생 최고의 작품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어느 미국 정치인은 마음이 힘들 때마다 워싱턴 국립미술관에 걸려 있는, 53세에 렘브란트가 그린 자화상을 바라보며 마음을 비우곤 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노령의 렘브란트는 우리 인간의 고난과 삶 그 자체를 너무나도 잘 보여준다.

얼마 전 300년 만에 '새로운' 렘브란트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 기계학습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네덜란드 덴하그미술관에서 렘브란트의 작품을 기반으로 새로운 '렘브란트 스타일'의 초상화를 완성한 것이다. 결과물은 놀란 만 하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하지만 분명히 렘브란트의 특징이 그대로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기계가 그린 렘브란트. 외면적으론 분명히 렘브란트 같지만, 그 그림을 그린 기계는 삶도, 행복도, 불행도 경험하지 못했다. 오리지널과 복사의 차이. 기계가 지적인 노동과 창작까지 하게 될 미래 세상에서는 더 이상 외면적인 면에서만 그 차이를 찾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조선일보,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183], 2016/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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