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라!"
영화 '동주' 초반부에 등장하는 대사다. 저녁 밥상머리에서 아들이 시인을 지망하는 문제를 놓고 동주의 부모는 충돌한다. 그때 독상(獨床)을 받고 있던 윤동주의 할아버지가 단호한 함경도 억양으로 내뱉은 한마디가 "기도하라!"다. 식사기도가 시작되고 논란은 자연스럽게 중단된다. 당시 북간도에 이주한 우리 조상들 사이 개신교 신앙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 도입부에는 일제의 수탈과 가난을 피해 간도(間島)로 건너간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곳까지 스며든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교회학교'를 '인민학교'로 바꾸려는 시도에 온 마을 사람들이 논쟁을 벌이는 장면에선 "신앙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지 않니?"라는 대사도 나온다. 나라와 고향을 잃은 백성이 의지할 곳, 정신적 구심점이 신앙이었던 것이다.
만주뿐이 아니었다. 1907년 남강 이승훈이 평북 정주에 세운 오산학교는 알려진 대로 민족지사를 양성하는 사실상의 '사관학교'였다. 그 결과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개신교인이었다. 그때까지 일반인에게 퍼졌던 '서양 종교'란 선입견 대신 민족혼을 일깨우는 종교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 결과는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와 순교, 교회 폐쇄 등 탄압으로 이어졌지만 오히려 교세는 계속 커졌다.
광복 이후 한국 개신교는 산업화, 민주화에도 앞장섰다. 농어촌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의 뿌리 뽑힌 마음을 어루만져주면서 함께 자랐다. 그러던 사이 언젠가부터 교회가 '민족' '나라' 대신 개인의 행복(幸福)을 더 강조한다는 얘기가 자주 들렸다. 교회에도 세속의 물량주의, 성장주의가 스며들었다. 그런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를 보는 사회의 시선도 식어갔다.
그러나 고난은 성숙의 필요조건일까. 개신교계에도 자성(自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07년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에 연인원 70만명이 넘는 개신교인이 찾아가 자원봉사를 벌인 것을 기점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에 개신교계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에 맞서다 순교한 주기철 목사, 여수 애양원에서 한센인들과 평생을 함께하다 공산군에 의해 순교한 손양원 목사 등 신앙의 선배를 기리는 사업도 활발하다. 작년 8월엔 광복 70주년을 맞아 서울시청 앞에서 평화통일기도회가 교단과 교파를 넘어 열리기도 했다. 이제 교회 안에서도 '민족'과 '국가'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오는 3일 제48회 국가조찬기도회가 열린다. 올해 주제는 '통일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민족'이다. 새해 벽두부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어느 때보다 한반도 위기가 고조된 상황이다. 마침 이번 주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복음연맹(WEA) 세계지도자대회 참가자들도 기도회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가조찬기도회가 개신교계의 '집안잔치' 혹은 매년 하는 '요식행위'가 아니라 진정 나라와 민족 그리고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임을 세계 개신교 지도자들에게 보여줄 기회다. 과거 개신교가 우리 민족에게 독립정신을 불어넣었듯이 국가조찬기도회가 우리 사회에 통일에 대한 민족혼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영화 '동주' 초반부에 등장하는 대사다. 저녁 밥상머리에서 아들이 시인을 지망하는 문제를 놓고 동주의 부모는 충돌한다. 그때 독상(獨床)을 받고 있던 윤동주의 할아버지가 단호한 함경도 억양으로 내뱉은 한마디가 "기도하라!"다. 식사기도가 시작되고 논란은 자연스럽게 중단된다. 당시 북간도에 이주한 우리 조상들 사이 개신교 신앙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 도입부에는 일제의 수탈과 가난을 피해 간도(間島)로 건너간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곳까지 스며든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교회학교'를 '인민학교'로 바꾸려는 시도에 온 마을 사람들이 논쟁을 벌이는 장면에선 "신앙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지 않니?"라는 대사도 나온다. 나라와 고향을 잃은 백성이 의지할 곳, 정신적 구심점이 신앙이었던 것이다.
만주뿐이 아니었다. 1907년 남강 이승훈이 평북 정주에 세운 오산학교는 알려진 대로 민족지사를 양성하는 사실상의 '사관학교'였다. 그 결과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개신교인이었다. 그때까지 일반인에게 퍼졌던 '서양 종교'란 선입견 대신 민족혼을 일깨우는 종교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 결과는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와 순교, 교회 폐쇄 등 탄압으로 이어졌지만 오히려 교세는 계속 커졌다.
광복 이후 한국 개신교는 산업화, 민주화에도 앞장섰다. 농어촌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의 뿌리 뽑힌 마음을 어루만져주면서 함께 자랐다. 그러던 사이 언젠가부터 교회가 '민족' '나라' 대신 개인의 행복(幸福)을 더 강조한다는 얘기가 자주 들렸다. 교회에도 세속의 물량주의, 성장주의가 스며들었다. 그런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를 보는 사회의 시선도 식어갔다.
그러나 고난은 성숙의 필요조건일까. 개신교계에도 자성(自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07년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에 연인원 70만명이 넘는 개신교인이 찾아가 자원봉사를 벌인 것을 기점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에 개신교계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에 맞서다 순교한 주기철 목사, 여수 애양원에서 한센인들과 평생을 함께하다 공산군에 의해 순교한 손양원 목사 등 신앙의 선배를 기리는 사업도 활발하다. 작년 8월엔 광복 70주년을 맞아 서울시청 앞에서 평화통일기도회가 교단과 교파를 넘어 열리기도 했다. 이제 교회 안에서도 '민족'과 '국가'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오는 3일 제48회 국가조찬기도회가 열린다. 올해 주제는 '통일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민족'이다. 새해 벽두부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어느 때보다 한반도 위기가 고조된 상황이다. 마침 이번 주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복음연맹(WEA) 세계지도자대회 참가자들도 기도회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가조찬기도회가 개신교계의 '집안잔치' 혹은 매년 하는 '요식행위'가 아니라 진정 나라와 민족 그리고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임을 세계 개신교 지도자들에게 보여줄 기회다. 과거 개신교가 우리 민족에게 독립정신을 불어넣었듯이 국가조찬기도회가 우리 사회에 통일에 대한 민족혼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조선일보, 201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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