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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구의 영화산책] 생명에겐 ‘통제’보다 ‘관계’가 필요하다

하마사 2015. 6. 27. 10:43

[강진구의 영화산책] 생명에겐 ‘통제’보다 ‘관계’가 필요하다 기사의 사진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이 25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덩치도 더 커졌고, 힘도 세고, 영리하고 재빠른 공룡들을 데리고 ‘쥬라기 월드’를 개장했다. 연출은 비록 30대의 신예감독 콜린 트레보로우가 맡았지만 시각적 표현만 보다 생생해졌을 뿐 영화의 구조나 내용은 전과 동일하다. 즉 예상치 못한 공룡의 반란에 인간들은 당황하고 주인공 어린 아이들은 모험 끝에 가족의 품에 안긴다는 설정이다.


스필버그 영화가 항상 그래왔듯이 ‘쥬라기 월드’ 또한 영화의 중간 중간에 교훈이 되는 요소들을 집어넣었다. 어른의 손을 잡고 영화관을 찾을 어린 아이들을 위해 스필버그는 자신이 이 시대에 가르치고 싶은 주제를 영화에 담아낸다. 가족의 중요성이라든지 우정의 소중함, 모험의 의미 등은 그가 영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교육의 주제들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는 돈에 눈이 먼 자본주의 사회의 타락한 인간들이 행하는 과학기술의 오용에 대한 심각성을 이번에도 적나라하게 가르치고 있다.

보다 큰 재미를 찾는 현대인들을 위해 쥬라기 월드의 연구진은 하이브리드 공룡 인도미누스 렉스를 만드는데 성공한다. 티라노사우루스를 비롯하여 랩터와 같은 무서운 공룡들의 유전자는 물론 개구리나 오징어의 유전자까지도 조합해 머리가 뛰어난 것은 물론 자기를 보호하고 남을 공격하는 능력이 탁월한 무적의 공룡을 탄생시킨다. 그러나 통제가 불가능해진 인도미누스 렉스는 자신을 창조한 인간들을 무참히 살육하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만다.

공포영화 전문가로 유명한 미국 라이트주립대학의 찰스 데리(Charles Derry) 교수는 할리우드가 만든 공포에는 세 가지 범주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심리적(psychological) 공포’로써 히치콕의 영화 ‘싸이코’처럼 정신병자나 인간의 왜곡된 심리가 일으키는 두려움이 스크린을 장악하는 영화들이다. 둘째는 ‘엑소시스트’나 ‘드라큘라’등의 영화에 나타난 ‘악마적(demonic) 공포’로써 사탄이나 악마, 귀신 등의 초자연적인 존재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인간의 과욕이 재앙으로 끝나고 마는 ‘묵시록적(apocalyptic) 공포’가 셋째에 해당한다. 성경의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종말의 때에 나타날 무서운 전조처럼 인간의 죄와 탐욕이 일으키는 파국을 그려내고 있다.

‘쥬라기 월드’는 ‘묵시록적 공포’를 일부 빌려다 쓴 영화다. 공포의 중심에는 인간이 창조주의 위치에서 과학기술을 통해 자연을 마음껏 통제하려는 헛된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쥬라기 월드의 사육사 오웬(크리스 프랫)은 잔혹하고 교활한 공룡 랩터를 길들여서 전쟁터에 투입하려는 군사경영기획자 모턴(빈센트 도노프리오)의 야욕에 반색하며 이렇게 말한다.

“살아있는 공룡은 생명체로써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상대입니다.”

영화에서 오웬은 살고, 모턴은 공룡에게 죽임을 당한다. 인간이 성경적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통제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 지향적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연을 마음대로 통제하는 지배자 아니라 잘 가꾸고 지키는 청지기 역할을 부여하셨다(창 1:28). 바른 관계란 이용하고 부려먹는 것이 아니라 교제하고 어울리며 함께하는 기쁨을 공유하는 것이다. 우리를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로 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는(요 15:15) 인간을 통제하기보다 인간과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관계지향적인 하나님의 모습이 담겨있다.

강진구(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교수, 영화평론가)

 

 

-국민일보, 2015/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