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26일 간통죄에 대해 재판관 9명 중 7명의 찬성 의견으로 위헌(違憲)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간통죄는 이날 폐지됐다. 1953년 형법에 간통죄가 도입된 이후 62년 만이다. 위헌 결정으로 간통죄에 마지막 합헌 결정이 선고된 다음 날인 2008년 10월 31일 이후 간통 혐의로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은 수사와 재판이 중지되고, 유죄가 확정된 사람은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지 형벌을 통해 강제할 문제가 아니다"며 "간통죄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개인의 사생활에 국가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라 위헌"이라고 했다. 헌재는 "혼인 제도와 가족생활의 보장, 건전한 성(性) 풍속과 성도덕 보호, 공공질서 유지 등의 간통죄로 보호되는 공익(公益)보다 개인의 사적(私的) 영역에 대한 국가 간섭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가 더 크다"고 했다.
간통죄는 애초 일부일처(一夫一妻) 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결혼 제도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성생활은 본질적으로 사생활에 속하고 간통 행위는 범죄라기보다 부부간 정조(貞操)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결혼 계약(契約)에 대한 위반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그러면서 간통 행위를 국가가 형벌로 다스릴 게 아니라 당사자끼리 민사상 손해배상 재판을 통해 해결하는 게 적절하다는 주장이 갈수록 커졌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작년 성인 남녀 2000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63.4%가 간통죄를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대답했다.
이런 시대 흐름에 따라 간통죄 처벌도 약화됐다. 2013년 간통죄 고소 사건 3015건 가운데 기소된 것은 782건이고 이 중 구속은 4건에 불과하다. 전체의 40%인 1200여 건은 대부분 수사나 재판 도중 당사자들의 고소 취소로 종결됐다. 기소된 사건 중에서도 실형(實刑)이 선고되는 경우는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집행유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은 간통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고 간통죄를 적용해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사례가 거의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간통죄를 두고 있는 나라는 대만과 이슬람 국가 정도이다.
그래도 간통죄가 성도덕의 문란을 억제하는 효과는 있었다. 간통죄가 폐지되면 배우자의 부정(不貞) 행위로 파탄 나는 가정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 이런 부작용을 막으려면 외도한 배우자는 지금보다 위자료 액수를 대폭 늘려 금전적 대가를 무겁게 치르게 해야 한다. 아이 양육권과 면접·교섭권을 제한하는 불이익을 줄 필요도 있다.
우리 사회는 그러지 않아도 이혼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핵가족화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부부 사이도 과거와는 달리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관계로 바뀌었다. 그러나 간통죄 폐지로 국가가 부부 관계에 개입하는 데 한계가 설정된 만큼 이제 배우자의 일탈 행위는 민사소송이나 부부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만 한다. 부부는 개인이 행복감과 정서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원천인 가족(家族)을 이루는 가장 기초적 관계다. 가족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분위기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다.
-조선일보 사설, 2015/2/27
'가정 > 가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인율 역대 최저, "초혼연령 높아지고 황혼이혼늘고"…"경기 침체 탓" (0) | 2015.04.25 |
---|---|
자식을 불행하게 만드는 방법 (0) | 2015.03.17 |
낳은 情보다 기른 情 (0) | 2015.02.26 |
"아빠랑 살래" 애들이 달라졌어요 (0) | 2015.02.08 |
아빠의 시간을 살 수 있을까요? (0) | 2014.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