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행복과 희망

신발 바꿔 신자

하마사 2014. 10. 16. 10:00
김행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김행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늦은 밤, 택시를 탔다. 큰길에서 집이 멀진 않았지만 "골목으로 들어가 달라"고 했다. 그런데 택시기사가 큰길가에 차를 세우더니 신경질을 냈다. "정말 너무하시네. 그 정도도 못 걸어요? 가마를 탔나? 에잇!" 순간 얼굴이 화끈! 계산하려고 쥐고 있던 교통카드 대신 급히 만원을 건넸다. 거스름돈도 받지 않고 도망치듯 내렸다.

집에 들어오자 화가 뻗치기 시작했다. 애먼 딸만 붙잡고 "택시 타는 이유가 뭔데? 노선버스도 아니고. 어휴, 휴대폰으로 번호판 찍을걸. 고발하면 '찍' 소리 못하고 당할 게 블랙박스에 다 녹음이 되어 있을 텐데!" 절통한 심정으로 잠자리에 들었지만 가슴은 벌렁벌렁, 눈은 말똥말똥, 잠자긴 다 틀렸다!

침대에 누운 채 휴대폰으로 페이스북을 접속해 타임라인을 훑었다. 그러다 순간 시선이 멈췄다. 미국 아이오와주에 사는 스티븐 슐츠 부부의 페이스북 포스팅이 인용된 글이다. 이들 부부는 결혼 6주년을 맞아 외식을 했다. 그러나 물 한 잔에 20분, 식사는 40분을 기다리는 끔찍한 서비스를 받았다. 그런데도 웨이터에게 식대 66.65달러보다 더 많은 100달러를 팁으로 줬다. 영수증엔 "우리도 당신과 같은 입장이었다(We've both been in your shoes)"라는 응원 글까지 남기고. 왜? "문제는 절대 인원 부족이었다. 그 웨이터는 열두 테이블과 바까지 책임지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었다. 느린 서비스로 인해 팁은 점점 줄었을 텐데, 팁 100달러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을 것"이라며 "불친절한 서비스에 화가 날 때, 전체 상황에 대해 (우리 모두) 한 번 더 생각해 보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一事一言] 신발 바꿔 신자
'당신과 같은 입장'은 영어로 'be in your shoes'다. 즉 신발 바꿔 신어보자는 얘기다. 5분도 걷기 힘들 게다. 택시기사는 교통정체에, 빠듯한 수입에, 열악한 근무조건에, 진상 손님에, 사고 위험까지 온갖 상황에 내몰린다. 짜증 나는 순간이 왜 없겠는가? 방금 전도 그랬으리라. 돌이켜 보면 수십 년 동안 급할 때마다, 특히 늦은 시간에, 참 많은 도움 받고 살았다. 이제 불 끄고 자련다.
김행 |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조선일보 일사일언, 2014/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