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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필사

하마사 2014. 7. 15. 10:39

두루마리 휴지에… 4개 국어로… 세상에 딱 하나뿐인 성경책들

한국 교회 성경필사본 전시회
318명이 평균 3년 반동안 적은 것… 작품과 함께 선보인 간증도 감동적

 

 

세상에 단 한 개씩밖에 없는 귀한 성경 300여점이 세상 나들이에 나섰다. 31일까지 서울 목동 CBS기독교방송 사옥 7층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교회 성경필사본 전시회'다.


CBS가 지난 4월 공고를 냈더니 전국에서 318명이 직접 손글씨로 쓴 성경을 보내왔다. 성경 필사는 한국 개신교의 독특한 전통. 개신교계에서는 성경 신·구약 66권 전체를 필사(筆寫)하는 데 평균 3년 반이 걸리는 것으로 본다. 필사에만 전념할 경우엔 1년 만에 끝내기도 한다. 대단한 공력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그래 봐야 공책에 쓴 뻔한 것이겠지…'라는 선입견이 남아있다면 전시장에 가볼 일이다. 선입견이 싹 달아나는 것을 실감할 것이다.

	평균 3년 반씩 붓이나 볼펜 수백 자루를 소진하면서 일일이 손으로 쓴 성경 필사본 전시회장의 모습
평균 3년 반씩 붓이나 볼펜 수백 자루를 소진하면서 일일이 손으로 쓴 성경 필사본 전시회장의 모습. /CBS제공
전시장 초입엔 가로 85㎝, 세로 125㎝, 무게 78㎏짜리 초대형 필사본으로 1992년 기네스북에도 오른 하태수 광명서울교회 목사의 작품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권용선 선린감리교회 권사가 5년간 화선지 1426장, 붓 43자루, 먹 16개, 먹물 23L를 사용해 쓴 작품도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이어 올해 만 96세인 최정희 성광교회 권사와 95세인 김정희 참빛교회 권사가 공책에 필사한 성경, 고영진 부산동부감리교회 명예권사가 한글과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4개 국어로 쓴 성경, 인쇄된 성경과 쪽수를 똑같이 맞춰 붓글씨로 쓴 안시보 연동교회 은퇴서리집사의 성경 등을 선보이고 있다.

이색 필사본들도 수두룩하다. 노희방 수색교회 안수집사의 성경은 두루마리 형태. 중산층으로 살아오다 노후 대비용으로 건물을 짓던 중 IMF를 만나 고난의 나날을 보내면서 팩스 용지에 쓰기 시작해 2000시간, 붓펜 300자루가 들어간 작품이다. 한때 영어(囹圄)의 몸이 돼 교도소에서 두루마리 휴지 앞뒷면에 검은색과 빨간색 볼펜으로 쓴 이재붕 가락동부교회 집사의 사연과 작품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최일환 포항성결교회 안수집사는 목판에 깨알 같은 글씨로 성경구절을 썼고, 올해 만 90세인 김기옥 동부광성교회 권사가 3년간 쓴 필사본은 점차 글씨체가 변해가는 모습도 보여준다.


	두루마리 휴지 앞뒷면에 깨알같은 글씨로 성경을 적은 이재붕 집사의 작품 /CBS제공
두루마리 휴지 앞뒷면에 깨알같은 글씨로 성경을 적은 이재붕 집사의 작품 /CBS제공
그 밖에도 김광림 국회의원의 모친, '밥퍼' 최일도 목사의 모친 등이 정성껏 한 자씩 적은 성경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할머니는 아빠의 신실한 신앙생활을 위해 기도하며 한글 성경을 필사했고, 아빠는 미국 유학 가 외로워하는 딸을 위해 영어성경을 필사해 대(代)를 잇는 경우도 있다. 서울 종교교회, 안산 명성교회 등에선 전 교인이 나눠서 필사한 작품을 출품했다.

작품과 함께 선보이는 간증 내용도 감동적이다. 병이 치유되고, 고민하던 일이 잘 해결됐다는 내용부터 한글을 모르고 장년이 된 상태에서 성경을 옮겨 쓰면서 한글을 터득한 사연들이 그렇다.

한마디로 350개의 '인생극장'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전시장 말미엔 서예가들이 성경 가훈(家訓)을 무료로 써주는 행사도 열린다. CBS 관계자는 "올해 창사 60주년을 맞아 뜻있는 행사를 기획하다 필사본 전시를 열게 됐다"며 "전시를 계기로 CBS 전 직원도 성경을 필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관람은 무료. (02)2650-7931~3

 

-조선일보, 201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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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선각자 유길준의 유품을 많이 갖고 있는 미국 세일럼 피보디박물관에서 19세기 조선 부채를 본 적이 있다. 평범한 쥘부채인데 겉에 한시(漢詩)와 사람 이름이 적혀 있었다. '대조선 이수정(大朝鮮 李樹庭). 1882년 수신사 박영효를 따라 일본에 갔다가 남아서 개신교 신자가 된 사람이다. 1885년 부활절 새벽에 두 명의 파란 눈 선교사가 인천항을 밟았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이 땅에 복음을 전하러 온 최초의 선교사들이었다. 두 사람의 손에는 한글로 된 '마가복음'이 들려 있었다. 이수정이 일본서 번역한 성경이었다.

▶개신교 역사에서 한국은 선교사가 오기 전에 이미 자국어(自國語) 성경을 갖춘 희귀한 나라다. 그만큼 초기부터 교회와 성경의 관계는 끈끈했다. 한국인 기독교 신자들에게 성경은 신앙생활의 중심이었다. 성경을 읽고 외우고 성경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는 한국 신자들을 보고 외국 선교사들은 '성경의 연인(Bible Lover)'이라고 부르곤 했다.

[만물상] 성경 필사
▶지극한 성경 사랑은 성경 보급과 필사(筆寫) 열기로도 나타났다. 1911년 신약과 구약을 합한 '성경전서' 발간 이후 지금까지 나온 성경이 4200만 부에 이른다. 신약·구약 성경을 직접 손으로 베껴 썼거나 쓰고 있는 기독교 신자의 수도 45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쓰기 전에 한 번 읽고, 마디마디 끊어가며 읽고, 쓰면서 읽고, 쓰고 나서 확인하며 읽고…" 한 번의 필사는 성경을 4~5번 읽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지난 주말 서울 목동 CBS기독교방송사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교회 성경 필사본 전시회'는 관람객 열기로 뜨거웠다. 전국에서 318명이 보내온 필사본들은 제각각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성경들이다. 한글 성경은 보통 구약 140만 자, 신약 44만 자 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어떤 이는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봐야 할 만큼 깨알 같은 글씨로 이 많은 글자를 썼다. 어떤 이는 또박또박 한글 붓글씨로 5년을 들여 완성했다.

▶죄를 짓고 감옥에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군대 간 아들의 안녕을 빌며, 사업이 잘돼서, 사업이 망해서, 몸이 아파서…. 필사의 동기도 가지가지다. 그러나 인간사의 희로애락만으론 성경 필사의 초인적인 정성과 몰입을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려시대 한 자 새기고 삼배(三拜)하고, 또 한 자 새기고 삼배하며 나무판 8만여 장에 5200만 자의 불경을 새겼던 선조들의 위대한 공력이 떠오른다. 절대자를 향한 믿음을 찾아 때론 방황하며 자신을 던지는 인간의 모습은 옷깃을 여미게 하는 무엇이 있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4/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