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생활자금을 계산하기란 쉽지 않다. 워낙 많은 가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적게는 3억~6억 원에서 많게는 10억 원에 달하는 노후자금이 계산되어 나온다. 결론부터 말해 금융기관 FP(재무설계사)들이 주장하는 수 억 원의 은퇴자금 규모는 상당히 과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또한 완전히 무시할만한 내용도 아니다. 그러면 합리적인 은퇴자금 계산법은 어떤 것일까? 아래처럼 월 200만 원 정도 생활비를 쓰는 노후생활을 한다는 전제 아래, 몇 가지 가정을 해보자.
* 월 생활비: 200만원(2인 가족 기준)
* 은퇴생활기간: 30년(부부 공동 생활기간 20년 + 남편사별 후 부인 홀로 생활기간 10년)
* 투자수익률은 연 4%로, 물가상승률은 연 2%로 가정
* 취미여가 활동비 등 기타 목돈이 들어가는 생활비는 고려하지 않음
이러한 가정 하에 30년간의 은퇴생활비를 계산해 보면, 무려 5억 원에 달하는 거액이 산출된다. 만약 물가상승률을 좀 더 높게 잡으면 필요한 노후자금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또 월 생활비를 300만원으로 가정하고 위와 같은 방식으로 계산해보면, 필요한 노후자금은 7억6천만 원 정도 나오게 된다. 그래서 노후에 3억~5억 원이 필요하다든가, 심지어 7억~8억 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월 생활비 200만 원 수준의 검소한 은퇴생활을 하는데도 5억 원대의 거액이 필요하다면, 자식 키우고 결혼시키는 데 여유자금을 다 써버린 중산층들은 기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계산에는 다행히 빠뜨린 재산 항목이 하나 있다. 바로 연금자산이다. FP들이 말하는 노후자금액에는 공적연금(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개인연금, 주택연금 같은 대책들이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억 원의 큰 금액이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현역생활을 하는 동안, 앞에서 언급한 연금자산을 꾸준히 확보해둔 사람이라면 그렇게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좀 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노후자금을 계산해보자. 조선일보 독자들은 대부분 국민연금에 들어 있고, 또 작은 집이라도 자가주택을 보유하고 계실 것이다. 이것들을 잘 이용하면, 필요한 노후자금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에 가입하여 20~25년간 보험료를 납입하면 61~65세 이후에 매월 100~120만원 전후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에 더하여서, 중산층과 서민층에 속하는 분들은 오는 7월부터 월 15만~20만원의 기초연금을 추가로 받게 될 것이다. 부부가 함께 기초연금을 받는다면 혜택은 더욱 클 것이다. 만약 공무원연금(또는 사학연금과 군인연금)에 가입하여 20~25년 정도 불입한 분들이라면, 은퇴 후 200만~250만 원 정도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공무원 연금(또는 사학연금과 군인연금)을 받는 사람은 기초연금을 받을 수 없다.
공적연금의 최대 장점은 죽을 때까지 연금이 나오고, 물가가 오르면 그에 맞춰 지급액이 매년 상향 조정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오래 살게 될수록 공적연금의 가치는 엄청나게 커진다. 만약 연간 100만~200만 원 정도의 공적연금을 확보해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2억5천만 원~5억 원의 엄청난 은퇴자산을 확보해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은퇴기간 중엔 먹고사는 생활비만 필요한 게 아니다. 배우자와 해외여행을 즐기고, 자기계발을 할 때도 돈이 들어간다. 또 나이 들어서 치매에 걸리면 요양병원에 입원해야 하고, 그러려면 상당한 금액의 의료비와 간병비가 들어간다. 그런데 우리나라 은퇴자들은 노후설계를 할 때 대부분 먹고사는 생활비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신의 인생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자기계발 자금’이나, 암과 같은 중병에 걸렸을 때 지출하는 ‘의료비’는 거의 준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는 노후준비를 제대로 했다고 볼 수 없다. 매월 생활비로 쓸 수 있는 연금자산 이외에도, 긴급 상황에 대비하여 상당한 규모의 저축액을 확보해두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선진국 은퇴자들의 노후대비 방식을 살펴보면, 연금자산 이외에 2개 항목의 목돈을 알차게 준비해 두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은퇴 축하금’이라 불리는 항목으로, 은퇴 후 새로운 삶의 비전을 수립하고, 새로운 생활터전을 마련하는 데 들어가는 목돈이다. 은퇴축하금은 ①은퇴축하 여행경비(은퇴 직후 배우자와 축하여행을 갈 때 쓰는 비용) ②자기계발비(대학을 다니거나 자격증 공부를 할 때 쓰는 비용) ③취미여가 활동비(체력단련과 여가활동에 쓰는 비용) 등에 지출하는 돈을 말한다. 은퇴 축하금을 미리 준비해두지 못한 사람들은 평생 무료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노년기에 집중적으로 들어가는 의료비 항목이다. 노년 의료비는 크게 ①중증질환 치료비(각종 암과 뇌질환, 심장질환 치료비) ②건강검진비(매년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할 때 쓰는 비용) ③장기요양비(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이용할 때 지출하는 비용)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질병통계를 보면, 60대 중반까지는 병원비가 별로 들지 않지만, 70대를 넘어서면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여러 가지 만성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희귀암 등 중증질환에 걸리면 수 천 만원에서 억대의 돈이 들어갈 수도 있다.
또 나이가 80대 중반을 넘어서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고령자들은 사망하기 전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 정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이용하게 된다. 질병관리본부 분석에 따르면, 요양원은 보험 적용을 받더라도 본인 부담 비용이 월 50만~70만원, 요양병원은 월 80만~250만원에 달한다. 자신의 수발 부담을 가족들에게 떠넘기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간병비용도 준비해 놓아야 한다.
-조선일보, 20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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